신나는 크리스마스, 털목도리, 털장갑, 구세군, 붕어빵, 송년, 해돋이, 솜사탕같이 떨어지는 눈송이 등등. 입 안에서 착착 감기는 기분좋은 어휘들도 많거니와 보고싶은 사람들도 부쩍 늘어나는 낭만의 계절 겨울에 무비스트가 아주 특별한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2003년 12월부터 2004년 2월까지 국내에 개봉되는 영화들을 한국, 할리우드, 유럽, 일본으로 나누어 여러분들의 한 눈에 쏘옥 담아드립니다.

할리우드
뭐부터 먹어줄까. 진수성찬 앞에서 망설이는 것 이상으로 즐겁고 괴로운 고민이 제각기 매력적인 위용들을 자랑하는 영화 중 한 편을 선택하는 일일 게다. 이번 겨울 극장가를 찾아오는 할리우드 영화들의 면면은 그런 고민을 던져주기 충분해 보인다. 우선 12월 17일, 그저 개봉이라기보다는 모종의 역사적 이벤트처럼 찾아오는 <반지의 제왕 3: 왕의 귀환>을 필두로 가장 미국적인 배우 톰 크루즈를 사무라이로 탈바꿈 시켜버린 <라스트 사무라이>, 필립 K. 딕을 만나 좀 더 복잡해진 오우삼을 만날 수 있는 <페이첵>등이 대표주자들. 올해야말로 <반지의 제왕>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을 기대할 만 하다는 풍문들이 속속 들려오는 가운데 블록버스터를 굳이 작품성의 대척점에 놓는 일은 함량과 흥행성 겸비한 올 겨울 영화들 앞에서 무용해질 것 같다. 또 한 가지 특색은 <킬 빌>을 통해 이미 확인한 바 있는 일본 문화에 대한 열광.

한편 주목할 만한 감독들의 색다른 신작들도 대기 중이다. 배우 이상의 열렬한 팬층을 거느린 감독으로 팀 버튼을 빼놓을 수 없다. 아버지의 과거를 탐사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빅 피쉬>. 외양만으로는 도무지 팀 버튼스럽지 않은 그 영화의 실체가 관객들을 호기심 가득한 기다림의 세계로 밀어 넣는다. <증오>의 마티외 카소비츠가 할 베리, 페넬로페 크루즈와 함께 만든 광기와 공포에 관한 보고서 <고티카>도 있다. 또 P.J. 호건(<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 그려내는 원작에 충실해 더 새로운 영화 <피터 팬>은 어떤가? 마이크 뉴웰(<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모나리자 스마일>은 줄리아 로버츠, 커스틴 던스트, 줄리아 스타일즈라는 매력적인 여배우들의 우아하고 강력한 화학작용으로 매력적일 영화.

▶반지의 제왕 3: 왕의 귀환
감독 피터 잭슨/출연 일라이저 우드, 비고 모르텐슨, 이안 맥켈런, 올란도 블룸/수입 태원엔터테인먼트/배급 CJ 엔터테인먼트/개봉예정일 12월 17일

절대반지가 가져다주는 고통에 비할까. 그간 3편이 1, 2편에 비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고 공공연히 강조해온 피터 잭슨은 얄밉게도 중간계에 매혹된 사람들의 (기다림의) 고통을 한층 가중시켰다. 톨킨의 원작과는 같으면서도 다른 제 3의 창작물로서 이미 빛나는 위용을 확립한 반지 시리즈의 대단원 <반지의 제왕 3: 왕의 귀환>에는 반지에 굴복해 골룸이 되기 전 스미골의 모습이 등장하며, 거대한 거미괴물 셸롭이 프로도를 위험에 빠뜨린다.
<...두 개의 탑>으로는 부족했다는 걸까. 길이 상으로도 전체 러닝타임의 1/3을 차지할 만큼 백미 중 백미라는 펠렌노르 평원 전투의 규모는 헬름협곡 전투의 무려 20배 이상이다. 강력해진 건 스케일만이 아니어서, 선과 악의 단순 구분을 뛰어 넘는 존재의 고뇌는 한층 치열해졌다. 아라곤이 사루만을 물리치는 순간, 그리고 고결하던 프로도의 내면이 반지의 유혹적 권능에 갉아먹히는 순간, 순간들. 신발끈을 단단히 조이고 여행할 차비를 하라. 왕이 돌아온다!

Don't miss!-물론 기술적인 부분에 치우쳐있긴 하지만, 그 보수적인 아카데미로부터 이미 6개의 트로피를 가져온 반지시리즈다. 내년 오스카는 바야흐로 작품상을 거머쥘 때라는 주장(혹은 기대)들이 만만찮다.

If movist-무비스트 모 기자처럼 원작의 팬이라면 아쉬워질 부분. 방대한 원작을 3시간 좀 넘는 영화 안에 압축해 넣다 보니 빠진 부분도 적지 않다. 샤이어 전투 부분은 촬영 전에 누락됐고, 편집 과정에서 사루만(크리스토퍼 리)이 출연한 장면이 통째로 사라졌으며, 몇몇 인물에 관련된 묘사는 어느 정도 평이해지는 것이 불가피 했다는 얘기. 미션 임파서블을 파서블로 바꾸는 데 따르는 진통이었음은 물론이다.

▶라스트 사무라이
감독 에드워드 즈윅/출연 톰 크루즈, 와타나베 겐, 빌리 코놀리, 고유키/수입, 배급 워너/개봉예정일 1월 9일

할리우드가 어느 만큼 일본 문화에 매혹됐냐고? 증거자료로 제시하기에 <킬 빌>보다 더 적합할 영화가 <라스트 사무라이>다. <킬 빌>을 수놓은 일본문화의 콜라주들에 매혹과 유머가 뒤섞여 있었다면 <라스트 사무라이>가 보여주는 사무라이로 상징되는 일본전통에 대한 관심은 흥미라기보다는 경외에 가깝다. 그리하여 가장 미국적인 배우, 혹은 미국 최고의 스타로 꼽히는 톰 크루즈는 고국을 버리고 사무라이 검을 휘두르게 되었던 것. 감독 에드워드 즈윅(<가을의 전설, 커리지 온더 파이어>)이 <7인의 사무라이>에 반해 감독의 길에 들어섰다거나 촬영 내내 톰 크루즈가 매일 [무사도]를 읽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비롯, 감독과 배우는 사무라이 정신에 대한 지극한 예찬을 숨기지 않는다.
영화의 배경은 1877년. 남북전쟁의 영웅 네이든 알그렌 대위(톰 크루즈)는 종전 후 퇴색한 명분과 혐오스런 현실에 직면하며 고통을 겪는다. 한편 개화파와 보수파의 대립이 한창이던 일본은 신식군대를 조련하기 위해 알그렌을 일본으로 초빙한다. 그러나 그는 전투 중 사무라이 집단의 포로가 되고, 우두머리인 카츠모토(와타나베 겐)와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Don't miss!-1. 동양을 바라보는 할리우드의 매우 긍정적인 시각 2. 헌신, 의무, 명예로운 소멸로 요약되는 사무라이 정신에 경도된 톰 크루즈가 검을 잡았다. 3. 전미 비평가협회가 선정한 2003년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서 <미스틱 리버>를 이어 2위를 차지. 오스카 작품상의 유력 후보이기도 하다.

If movist-무사도, 하나를 위한 전부라... 그 동전의 양면 같은 위험성을 한국인만큼 잘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

▶페이첵
감독 오우삼/출연 벤 에플렉, 우마 서먼/수입, 배급 CJ 엔터테인먼트/개봉예정일 1월 16일

천재적인 공학자 마이클 제닝스는 일급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기업의 기밀유지를 위해 기억을 소거하곤 한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지난 2년간의 기억이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마이클. 그런데 그에게 전달된 것은 약속한 거금 대신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담겨있는 봉투와 모든 보수를 포기한다는 내용의 동의서다. 조직의 추격은 숨통을 조여오고 이제 그는 흩어진 기억의 퍼즐을 온전히 맞춰내야만 한다. 살기 위해서는 기억하라!

Don't miss!-액션마스터 오우삼과 헐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 필립 K. 딕의 만남이 일으킬 화학작용에 대한 호기심. <킬 빌>로 주가를 높인 우마 서먼과 벤 에플렉 등 배우의 이름도 꽤 묵직하다.

If movist-<페이첵>의 마이클 제닝스 식으로 하자면 기억하라! <기글리>와 <윈드토커>를 비롯, 벤 에플렉과 오우삼에게는 오욕의 순간도 있다. 한편 필립 K. 딕 특유의 망상과 불안으로 얼룩진 병적인 세계가 오우삼과 만나면?

일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며 <비밀>의 뒤를 이어 올해는 <주온> 1, 2편과 <고양이의 보은>, <냉정과 열정사이> 등이 꾸준히 관객의 발길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다. 일본 영화에 대한 사실 그닥 크다고는 볼 수 없었던 관객들의 관심은 점차 높아지는 추세. 특히 이번 겨울에는 <자토이치>나 <배틀 로얄 2>, <춤추는 대수사선 2: 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하라!> 등 굵직한 영화들이 줄줄이 대기중이다. 한편 주로 부천영화제를 통해 전복의 미학을 사랑하는 관객들의 눈길을 빼앗아간 <지옥 갑자원>이나 <버수스> 같은 영화들은 쉽게 맛보기 힘든 별미들. 만화적 상상력에 경도된 이들이라면 두 영화 잊지 말고 체크해둘 일이다.

▶춤추는 대수사선 2: 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하라
감독 모토히로 카즈유키/출연 오다 유지, 야나기카 토시로, 후카츠 에리/수입 (주)제이넷 이미지/ 배급 오 시네마/ 개봉예정일 12월 12일

일본에서 관객 동원 2천만 명을 기록하며 역대 실사영화 중 최고의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한 <춤추는 대수사선 2: 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하라>가 한국에도 상륙했다. 열혈 경찰 아오시마의 활약상을 다시 한 번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 우선 매력포인트. 경시청 부국장 납치사건을 해결한지도 어느덧 5년이 지났다. 평온하던 완간서에 다시 찾아든 살인사건. 기이한 사건들이 맞물리며 하나 둘 희생양은 늘어나고,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사건 속에서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미궁이 된다. 한편 경찰서 내의 미묘한 알력은 혼란을 가중시키는 요인.

Don't miss!-일본 블록버스터의 명실상부한 대표주자 <춤추는 대수사선>이 돌아온다. 전편의 대사 "춥다"에 포복절도한 관객들 우선 헤쳐 모이길.

If movist-스릴, 주인공들이 벌이는 요란 법석, 그리고 때로 허무한 웃음이라는 얼핏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요소들의 결합은 <...대수사선>의 특징. 생뚱맞거나 혹은 화려하거나.

▶자토이치
감독 기타노 다케시/출연 비트 다케시/수입 스폰지/배급 인터비스, 스폰지 공동/개봉예정일 1월 30일

감독상을 수상한 베니스 영화제를 위시해(하기야 기타노 다케시는 늘 부인의 여지없는 베니스의 스타였다) 토론토 영화제, 그리고 프리미어 섹션에 초청된 2004 선댄스 영화제까지 영화제의 사랑을 유독 담뿍 받은 작품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자토이치>는 살벌한 활극과 웃음이 어우러지는 기타노 다케시 최대의 오락영화. 어이하여 역사극에 노란 머리에 파란 칼라렌즈를 착용한 무사가 등장하느냐고 묻는다면, 영화 <자토이치> 자체가 바로 그런 식이라고 답하면 될까? 유서 깊은 TV 시리즈 <자토이치>와 사무라이 영화의 전형에서 탈피한 '다른 영화'.

Don't miss!-오락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는 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능력과 시선을 잡아끄는 배우 비트 다케시의 카리스마.

If movist- 뮤지컬을 방불케 하는 막판 탭댄스 파티, 몸치라도 뛰쳐나가 춤추고 싶어진다. 단단히 대비하시길.

▶배틀 로얄 2: 진혼가
감독 후카사쿠 긴지, 후카사쿠 겐타/출연 후지와라 타츠야, 비트 다케시/수입 동아수출공사/개봉예정일 2월

살고 싶으면 죽여라! 공포의 신세기교육개혁법 BR이 돌아왔다. 전편의 생존자 나나하라 슈야는 몇 년 후 반 BR법 조직 와일드세븐의 리더가 되어있다. 한편 국가는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새로이 중학교 3학년생 42명을 대상으로 신세기테러대책특별법, 통칭 BR 2를 가동시킨다. 새로 만들어진 룰은 세 가지. "1. 외딴 섬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테러리스트 나나하라를 발견해 죽이면 승리, 2. 제한시간은 3일, 3. 2인 1조 태그매치." 거기에 수도 폭파의 주범으로 알려진 나나하라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사람들도 한 몫 가세했다. 그리고 섬에 착륙하자마자 유혈낭자한 전쟁의 막이 열린다. 올해 초 후카사쿠 긴지 감독이 지병인 췌장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후, 아들 겐타 감독이 바톤을 이었다.

Don't miss!-후카사쿠 긴지 열혈팬 쿠엔틴 타란티노는 <배틀 로얄>을 최고의 명작으로 꼽았다.

If movist-죽느냐 죽이느냐. 영화 전체를 가로지르는 명제만큼 <배틀 로얄>을 향한 반응도 극단적이었다. 열광하느냐, 증오하느냐. 그렇다면 2편은?

다음 페이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