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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침체에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쇠락한 홍콩 영화 산업을 다시금 소생시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떠받들여지는, 양조위 유덕화의 <무간도>는 그 의미를 살떨릴 정도로 잘 묘파해 오래전 홍콩 느와르에 달리 말해 형님무비 또는 갑빠무비에 열광했던 이들의 가슴을 후벼파며 심금을 적잖이 울렸다.
그 후 1년 후 바로 지금 여기에 <무간도>의 수장인 유위강 맥조휘 감독은 영화의 속편격인 <무간도 II 혼돈의 시대>를 불끈 쥐고 또 다시 돌아왔다. 대신, 영화는 종래의 시리즈물 속편과는 판이하게 다른 시간적 흐름을 역행하는 내러티브를 취한 채 우리 앞에 떡허니 당도했다.
삼합회의 조직원인 명민한 유건명(유덕화)은 경찰 내부에 스파이로 잠입해 전도유망한 짭새로, 혈기방장한 짭새인 진영인(양조위)은 삼합회에 들어가 보스인 한침의 심복으로, 속절없이 뒤바뀐 삶을 어거지로 살아가야만 했던 두 사내의 내면을 <무간도>는 담아냈다. 그리고 남의 삶을 통째로 뒤집어 쓴 채 지친 육신만을 세상에 기댄 이들의 젊은 날로, 왜 그들이 그러한 버거운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는지, <무간도 II 혼돈의 시대>는 담배 연기 자욱한 선술집에서 사연 많은 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이야기하듯 나지막히 읊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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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합회가 어떠한 순간들을 통과하며 중간 보스인 한침이 맨 위 보스로 등극하는지, 그 와중에 끊임없이 삼합회를 소탕하기 위해 암흑가의 그들 못지 않게 민중의 지팡이스럽지 못한 행동을 일삼는 경찰의 밀실의 야합을 <무간도 II 혼돈의 시대>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탁과 배신과 음모가 날뛰는 질서 속에 편입돼 또는 될 수밖에 없었던 진영인과 유건명의 전도된 운명의 서곡은 이러한 거대한 기운 속에서 잠식되며 서서히 시작됨을 영화는 조용히 하지만 묵직하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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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영화는 원편에 비해 전혀 꿀리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캐릭터를 등장시키지만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탄탄한 드라마를 구축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역인 중견배우들의 숨막히는 호연도 한몫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특히, 와해의 위기에 처한 조직을 재편하고자 작심하고 냉철한 모습의 인상을 흩뿌린 삼합회의 보스 예영효, 즉 오진우의 안면 근육의 미세한 흔들림은 보는 이를 통째로 압도한다. 동시에 밖으로는 냉혈한인 그가 인간적 비애로 충만한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채 가족을 끌어안는 장면에서는 더 없이 <대부>스런 분위기를 자아낼 만큼 발군이다.
물론, <무간도 II 혼돈의 시대>는 원편과 마찬가지로 홍콩 느와르의 문법의 절반을 해체하며 그 명맥을 이어나간다. 형님 무비를 완성하는 데 있어 화룡점정이자 절대 도우미라 할 수 있는 드높은 기개와 트렌치 코트 자락을 휘날리는 영웅과 총이 부채인 듯 화려하게 허공을 향해 수놓듯 휘저으며 안무된 액션 장면이 거세돼 있다는 말이다. 무간도 시리즈의 군상들은 춘향이가 과거길에 나서는 이도령의 발목을 잡고 목놓아 울 듯 의와 협에 매달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살길에 급급해 일을 행하는 자들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지옥 같은 속세에 기거하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혹은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세인들이며 또 그러기에 미워할 수 없고 등 돌릴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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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당해 영화 <무간도 II 혼돈의 시대>는 당신의 잔대가리가 아닌 상식에서 배우겠다는 CF카피처럼 영화의 기본에 충실함은 물론이고 그 기본을 발판삼아 또 다른 진화된 모습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수작이다.
그래서 고백하건대 이 영화를 정말이지 지지한다. 이러한 별스러운 의지의 표명이 스스로 민망하면서도 드러내는 것은, 그렇지 않고서는 모두(冒頭)에서 전언했던 무간도의 의미처럼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갈 데까지 가 무지 심난할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