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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극장가에는 그 어느 때보다 이변이 많았다. 캐릭터와 사건이 사소하며 후반부에 으레 끼어들게 마련인 눈물을 자아내는 감동도 보이지 않는, 즉 소위 흥행공식과는 거리가 있는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상반기를 강타한 것으로 시작해 <살인의 추억>은 500만이 넘는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여 많은 이들을 반갑게 했다. <미녀 삼총사: 맥시멈 스피드>나 <헐크> 같은 외산 블록버스터들이 이빨 빠진 호랑이 마냥 맥을 못 춘 한 해기도 하다. 한편 사극은 흥행이 어렵다는 불문율을 깨고 열풍에 가까운 관객몰이를 한 '퓨전사극'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와 <황산벌>은 어떤가?
물론 궁극적인 법칙은 한 가지다. 관객은 한국영화라서가 아니라, 블록버스터라서가 아니라, 혹은 무슨 쌈짓돈이라도 돌아와서가 아니라 단지 재미있는 영화를 찾아 극장으로 몰려든다. 그러나 단순히 재미있다, 없다 만으로 성글게 판단할 수 없는 다단한 요소들 또한 존재함은 주지의 사실. 흔히 언급되는 배급력이나 타이밍, 마케팅 등은 대표적인 변수일 것이다. "책은 일단 나오고 나면 그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해나가야 한다." 이건 포스트모던소설의 명작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를 쓴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명언이지만, <우아하고 감상적인....>이 서점의 스포츠 코너로 분류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듯 한 영화가 대중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박히기까지도 수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난해하다고 고개를 주억거려도 역시 인간의 일인지라, 영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의 영역에 속하는 일들만은 아닐 것이다. 그 영화가 고배를 마신 이유는. 올해 아쉽게 흥행부진을 면치 못했던 8편의 영화를 통해 무비스트가 그 인과관계를 짚어본다.
감독 장준환/출연 신하균, 백윤식, 황정민
why did fail?
반응 하나. 여자친구 데리고 보러 갔다가 싸웠다. 잔인하다고 토하려 하더라. 반응 둘. 어둡고 음습한 데다 어이없다. 반응 셋. 속았다 속았다 속았다 속았다...
그리고 제작사 측의 반응 "쉽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단적으로 말해 60만 명은 들 줄 알았는데 결과는 0하나 빠진 6만 명. 이게 <지구를 지켜라>의 참담한 흥행(실패의) 전설이다. 적잖은 수의 사람들은 패인을 방향 잘못 잡은 마케팅에서 찾곤 하는데, 위에 소개한 세 번째 반응―이면서 <지구....>를 미워하는 사람들의 가장 지배적인 반응―은 이 같은 논증에 상당한 설득력을 제공한다. 막말로 깜찍한 표정의 신하균을 클로즈업한 레몬연둣빛 포스터에서 영화가 내재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음모를 미리 읽어낼 만한 투시력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영화의 카피인 "범우주적 코믹 납치극"이 절대로 틀린 말이 아닌 것처럼(다만 동전의 다른 한 면을 슬쩍 감춰뒀을 따름이지, 오히려 영화를 상당히 적확하게 요약한 문장이기도 하다) <지구를 지켜라>에 많은 관객들이 호응할 수 없었던 것은 마케팅 이전의 문제다. 도발도, 우울함도, 코믹함도 몽땅 평균 이상을 넘어선 이 생경한 영화를 관객들이 오래 입은 옷마냥 살갑게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애초부터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때때로 옹호자들마저 지적하는 의욕과잉의 문제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너무 일찍 나온 영화." 다소 삐딱한 입장에서 본다면 어쩌면 바로 그게 <지구를 지켜라>에 합당한 작위일 수도 있다.
counter punch
또 다른 반응 하나. 이 영화 안 만났으면 전 생전 화만 내면서 살았을 거에요. 또 다른 반응 둘. 올 한 해 나를 가장 많이 울려버린 영화. 또 다른 반응 셋. 감독은 천재다!
윗 글에 이어, 그러나 <지구를 지켜라>는 올해의 발견이다. 그건 영화의 지지자든 비판자(혹은 혐오자)든 한 마음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일 것이다. <지구를 지켜라>는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그런 영화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의 범주에 드는 영화.
'확 깨는' 상상력도 상상력이지만, 이 기기묘묘한 데뷔작의 진정한 놀라움은 그 파워에 있다. 위에 소개한 반응 두 번째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 모르긴 해도 <지구를 지켜라>를 '올해 나를 가장 많이 울려버린 영화'로 꼽을 사람 아마 적지 않을 것이다. 한편 동시에 영화는 2003년 가장 웃겼던 영화의 리스트에도 빈번히 오를 수 있다("이 책 안 만났으면 화만 내면서 살았을 거에요"를 상기해 보라). 이미 지적했듯 도발도, 우울함도, 코믹함도 몽땅 평균이상을 해버렸다는 점은 지배적인 흥행상의 패인이기도 하지만, <지구를 지켜라>가 이룩해낸 빛나는 업적이기도 하다. 그런 견지에서 보건대 함부로 내뱉었던 "너무 일찍 나온 영화"라는 말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건 <지구....> 팬을 자처하는 관객의 씁쓸한 읊조림대로 그저 외계인의 음모인가? 한편 모스크바 영화제와 부천을 비롯, <지구를 지켜라>는 각종 영화제의 가장 빛나는 자리에 서서 상처투성이 영광을 치하 받았다.
감독 박찬옥/ 주연 박해일, 문성근, 배종옥
why did fail?
로테르담 영화제 경쟁부문 최고상에 해당하는 타이거상을 대번에 거머쥔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은 로테르담과 부산, 두 번의 영화제를 거치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고의 데뷔작"이라는 칭송에도 불구, 흥행에 있어서 만은 안타깝도록 부진한 모습(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7위)을 보이고 말았다. 글을 시작하기 앞서 <지구를 지켜라>의 경우처럼 미리 샘플메시지를 소개하지 않은 이유는 <질투는 나의 힘>을 지지하고 미워하는 이유들이 그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헐겁게나마 추려본다면 우선 배우들. 연기력과 앙상블에 있어서는 나무랄 데 없으되, 관객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이른바 스타파워에 있어서는 부족했다는 얘기다. 한편 신기한 건 그와 정확히 대척점에 놓여있는 이런 종류의 비난들도 심심찮게 발견된다는 것. "베스트극장(이건 드라마 장르의 영화를 깎아 내릴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비유다) 찍기엔 배우들이 아깝다"는 거다. "바람도 못피고 마누라한테도 잘 못하는 거보다야 바람 피면서 잘 하는 게 낫지." 영화 속 편집장(문성근)의 말에 분노하며 거품을 무는 게 외려 남자들 쪽이었던 점을 상기하자. <질투는 나의 힘>은 곳곳에 의외롭고 또 흥미로운 점들이 가득 포진하고 있는 영화다. 제목을 따온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 싯구처럼 "구름 아래를 개처럼 쏘다니는" 회색인간들의 모습을 신랄한 유머 섞어 담아낸 이 영화에 관객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몰랐다.
counter punch
애인을 같은 남자에게 두 번이나 뺏긴 남자 원상(박해일)이 문제의 숙적 편집장을 바라보는 눈빛은 미움인지 동경인지 당최 읽어내기 힘들다. 명료하지 않아 더 생생한 리얼리티는 <질투는 나의 힘>의 가장 큰 무기. 여자 홍상수라는 수식어가 심심찮게 따라다닌(그러나 어쩌면 이 말을 억울하게 받아들여야 할) 박찬옥 감독은 캐릭터와 그들이 발딛고 있는 공간의 실체를 영화 속을 흐르는 공기 안에, 인물의 표정과 대화 안에 고스란히 잡아낸다. 영웅 맥베스를 파멸로 몰고 간 질투가 역설적으로 영화 속 원상에게는 오히려 힘이 되듯, <질투는 나의 힘>은 보는 사람에 따라, 관점에 따라 각기 전혀 다른 것들을 읽어낼 수 있는 영화. 특히 두 남자의 치졸한 공모를 신랄하게 담아내는 이 매력덩어리 영화는 여성관객들에게 더 큰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 있다. 거기 더해, 배우 배종옥과 박해일의 발견. 물론 문성근의 징글징글, 유들유들한 연기도 매력만점.
감독 라스 폰 트리에/배우 니콜 키드먼, 폴 베타니, 로렌 바콜
why did fail?
반응 하나. 라스 폰 트리에 교수님의 거만한 강의. 인간은 본디 추악하다는 거, 그거 누가 모르나? 반응 둘. 실험적이라고 다 걸작은 아니다. 반응 셋. 경고-인내 필히 요구. 지루하다 지루하다 지루하다...
당초 출품이 예정됐던 유명감독의 기대작들이 '결석'한 올해 칸은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그런 가운데 올해 칸 최고의 화제작이자 문제작이 바로 이 <도그빌>. 스타 배우 니콜 키드먼과 칸이 사랑하는 감독 라스 폰 트리에의 주목할 만한 만남만으로도 기대를 잡아 모으기 충분했음은 물론이다.
찬반 양론이 극명하긴 국내나 해외나 마찬가지. 국내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10위에 오른 <도그빌>은 지지자와 비판자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만한 영화였다. 우선 3시간의 러닝타임의 '압박'. 게다가 주차장 같은 공터에 금 몇 개 그어놓고 여기가 사과꽃 내음 가득한 시골 마을이라고 우기는 영화에 관객들이 호감을 느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숨돌릴 틈 없이 이어지는 한 여성에 대한 잔인한 유린과 유혈 낭자한 복수. 그런 요소들이 합쳐져 자아낸 '비호감'은 관객들이 <도그빌>을 꺼리게 한 가장 단적인 이유다. 그런가 하면 어떤 관객들은 인간의 추악함을 장엄히 설파하는 라스 폰 트리에 앞에 "거만하긴. 우리도 알아!"라고 이구동성 외쳐대기도.
counter punch
또다른 반응 하나. 폰 트리에에게 '감정을 지배하는 독재자'의 칭호를 선사하자. 이 영화,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다. 또다른 반응 둘. 별은 이런 영화에 주라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반응 셋. 니콜 키드먼 누나 너무 예쁘다.
그러나, 다른 건 몰라도 <도그빌>이 재미없다는 주장에만큼은 동의하기 힘들다.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사건을 연극의 형식을 빌려 담아내 얼핏 지루하겠다는 선입견을 갖게 만드는 이 영화는 실은 외려 관객의 감정을 그냥 놓아두는 법이 없어 곤혹스러울 정도. 심플함을 넘어서 썰렁한 세트는 쉴새없이 이어지는 경악할 사건들 앞에서 어느새 진짜 '개같은 마을' 도그빌로 탈바꿈하며, 그 시점부터 극단순화된 공간은 오히려 관객을 인물과 사건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낸다. 한편 미국 삼부작 중 한 편으로 알려진 <도그빌>이 정작 미국의 실체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향해서는 "권력을 쥔 자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라는 영화의 주제가 미국에 대한 근본적인 경고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는 대응도 가능하다. 칼자루 쥔 자는 결국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므로. 어쨌든 감정을 지배하는 독재자, 영악한 그 감독 폰 트리에여. (그리고 한 남성팬의 탄식처럼, 키드먼 누나는 정말 천사처럼 예쁘다.)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배우 아담 샌들러, 에밀리 왓슨
why did fail?
반응 하나. 장르의 달갑지 않은 혼성교배=<펀치 드렁크 러브> 반응 둘. "당신 눈알을 빼내 씹고 빨아먹고 싶을 만큼 당신을 사랑해."라니 오버요. 반응 셋. ".........."
<부기 나이트>와 <매그놀리아> 두 편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아마 젊은 감독 중 최고의 야심가임에 분명할 폴 토마스 앤더슨이 로맨틱 코미디를 내놨다. 그것도 가장 어울리지 않는 짝패 아담 샌들러와 함께. 평론가는 열광, 관객은 외면―이건 그간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가 내비쳐온 공통적인 특징이지만, 관객들은 가장 대중적인 '쉬운 장르' 로맨틱 코미디에서까지 그 위화감을 떨쳐버리지 못했다(국내에서는 박스오피스 10위로 데뷔). 마음속에 폭탄을 간직한 남자 배리의 쉴새없이 치닫는 여정을 목도하며, 그리고 급기야는 "해머로 당신 얼굴을 뭉개고 싶다"는 초유의 애정고백에 이르렀을 때 관객은 현기증을 느꼈다.
counter punch
또 다른 반응 하나. 뭐가 달라도 다른 토마스 폴 앤더슨 표 멜로. 또 다른 반응 둘. 기대 이상. 아찔하게 귀엽고 사랑스럽다. 또 다른 반응 셋. 일단 그 안에 젖어들기만 하면 평생 남을 영화.
그렇지만, 로맨틱 코미디도 테크니션이 만들면 다르다. 가장 단순하게 보더라도 의심의 여지없이 로맨틱하고(<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의 잭 니콜슨의 대사 "당신은 나를 좀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었소"를 굳이 인용할 것도 없이 한 방 맞은 듯 아찔한(punch-drunk) 사랑은 소심한 남자 배리에게 다른 세상을 발견하게 한다. 이보다 더 로맨틱한 상황이 있을까?) 한편 아담 샌들러, 선한 눈과 살짝 튀어나온 토끼 이로 친근하게 웃는 모습 뒤에 억눌린 분노와 적대감이 숨어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해 준 것도 <펀치 드렁크 러브>다. 아니 이렇게 당연한 사실을 왜 몰랐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러나 이 남자에 한해서는 결코 밖으로 나오는 법이 없었던 분노가 몸 안에 견고한 층을 이루며 켜켜이 쌓여갔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에는 거죽을 뚫고 나와 몸 전체를 삼켜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아멜리에>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에밀리 왓슨의 이계에서 온 듯한 묘한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