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그리워하는 노시인의 마지막 러브레터라고나 할까. 박범신 작가의 동명 원작을 영화로 옮긴 <은교>는 젊음을 갈구하는 노인의 일장춘몽을 그린 작품이다. 이적요의 볼품없는 몸뚱이와 힘없는 성기가 생기를 잃어버린 그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런 그에게 은교는 한 줄기 빛이요, 행복이자, 삶의 쾌락이다. 이적요는 싱그럽다 못해 관능미 넘치는 소녀를 탐한다. 오직 글로서만. 자신의 달콤한 꿈이 깨질까 두려워 좀처럼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는 이적요의 순정은 그 울림이 크다.
하지만 삼각관계를 다루는데 있어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이적요와 서지우의 관계는 탈고가 덜 된 원고를 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는다. 서지우가 왜 이들을 질투하는지에 대한 동기 부여가 부족하다. 스승의 대한 존경과 재능에 대한 갈망만으로 질투와 미움이 생겨났다는 것은 다소 억지스럽다. 김무열의 연기가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해일 또한 70대 노인 역을 무난히 연기하는 편이지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 마냥 감정 전달에 미흡함을 노출한다. 두 배우 사이에서 빛나는 건 신예 김고은. 순수한 소녀였다가 섹슈얼한 여성으로 돌변, 거기다 따뜻한 엄마의 품까지 느끼게 한다. 그의 연기는 <사랑니>의 정유미 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남긴다.
분명 <은교>는 원작만큼 짜임새 있는 관계도를 형성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랑을 얻지 못해 좌절하는 인간 군상을 치밀하게 그린 정지우 감독의 연출력은 힘이 있다. 젊음을 향한 이적요의 한없는 동경, 그로 인해 발화되는 욕망의 꿈틀거림 그리고 현실이란 벽에 부딪혀 눈물을 머금는 순간까지 세세하게 담아낸다. 느리지만 촘촘하게 쌓여가는 이 감정들은 파국으로 치달으며 극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비록 <은교>가 <해피엔드> <사랑니>의 완성도를 뛰어넘지 못하지만, 정지우 감독의 장점을 고스란히 이어가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2012년 4월 25일 수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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