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근처의 아담한 야회결혼식장. 분명, 본 기자 <너는 내 운명>의 제작보고회 소식을 취재하라는 어명을 받고 잘생긴(?) 무비스트 카메라기자 두 분과 출동했는데, 난데없이 남의 결혼식장 하객 노릇을 해야만 했다. 변변한 옷도 못 차려입고 하다못해 축의금도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뜻하지 않은 하객 노릇은 달갑지 않은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오늘, 그 날의 모든 「사건취재파일」을 낱낱이 공개하겠다.
순박한 노총각 ‘석중’의 동네 후배라면서 자신을 소개한 류승수는 오늘 결혼식은 많은 아픔을 딛고 석중과 은하가 맺어지는 날이니만큼 하객의 진심어린 축하가 필요하다고 애교스럽게 호소했다.
야외 파티 분위기를 살린 음악이 순식간에 결혼식 축제 분위기를 돋우는 음악으로 바뀌자 여기저기 음료와 다과를 즐기던 기자들이 일동 긴장한다. 아니나 다를까? 진작부터 카메라 기자들은 신랑신부가 입장하는 길목에서부터 이 잡듯이 카메라 후라쉬를 터트릴 전투자세에 돌입해 있었다.
사실 우리의 꽃(?)미남 무비스트 촬영기자 두 양반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유유작작하게 음료수를 즐기고 있던 중, 부랴부랴 그 부류에 합류했지만 좋은 자리 다 뺏기고 육중한 다른 카메라 기자들의 가공할 만한 흉기로 둔갑한 카메라에 몸 피하기도 힘든 신세를 연출해, 본 기자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세 신랑신부 입장통로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히 하객을 가장한 취재진으로 콩시루 모양세의 장사진을 이뤄 진풍경을 연출했다. 드디어 팔짱을 끼고 다정스레 입장하는 신랑 ‘석중’(황정민)과 신부 ‘은하’(전도연).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워 보이는 컨셉의 양복을 입은 황정민과 수수한 드레스에 꽃 화관을 쓴 전도연은 잠자리 떼의 맹공격을 피하면서 하늘하늘 나풀나풀 거리면서 야외식장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기자들의 카메라는 일제히 번쩍번쩍 불똥을 튀기면 과열 취재경쟁에 돌입했다.
아~~ 이거 베리 리얼한 시츄에이션 아니야? 극중에서 부부사이로 나온다지만 ‘석중’ 역을 맡은 황정민은 진짜 새신랑 같은 능글능글한 웃음으로 손까지 흔들면서 등장하고, ‘은하’로 분한 전도연은 얼굴까지 붉히면서 하객을 가장한 기자들의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보는 게 아닌가 말이다.
대박특종감이다!! 일순 떡 먹기를 그만둔 본 기자, 황정민과 전도연 간의 러브러브 모드에 강한 의구심이 뭉글뭉글 피어나 필기도구를 꺼내들고 본격 취재에 돌입했다.
남들이 모두 <너는 내 운명> 측에서 준비한 결혼식 이벤트 취재에 열을 올릴 때, 두 배우의 얼굴에 드러난 미묘한 숨은 속내를 캐내리라~. 잔머리의 대가인 본 기자의 머릿속에는 특종을 잡은 위풍당당한 모습이 그려지면서 그 옆에서 이런 말과 함께 아첨을 떠는 회사 팀장의 비굴한 얼굴이 말풍선을 따라 완벽한 시놉시스에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역시, 최경희 기자는 우리 무비스트의 대들보야. 앞으로도 당신만 믿겠어” 상상만 해도 정말 으쓱으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상상의 나래를 접고 현실로 돌아와 보니, ‘오~ 마이 갓!’ 난리가 났다. 신랑신부를 서로 잘 찍어주겠다고 카메라 기자들이 자리선점을 위한 치열한 몸 부딪힘을 연출하면서 걸걸한 육두문자 식의 전쟁통을 방불케 했다. 그때까지 어어쁘게 웃고만 있던 전도연은 두려움에 몸을 떨고 그걸 본 신랑 황정민은 이렇게 하면 결혼식 안하겠다면서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회를 맡은 류승수가 “결혼식이 장례식으로 변하겠다”면서 기자들의 싸움을 말렸고 자리배치 또한 직접 나서서 가지런하게 정리정돈 했다.
대충 정리된 상황에서 결혼식은 다시 거행됐지만 8월의 싱그러움을 머금었던 결혼식 화단은 이미 짓밟혀 처참하게 초토화된 후였다. 그러나 그 난리통에도 본 기자는 전도연을 걱정하는 황정민의 멋진 매너가 예사롭지 않게 보여 취재에 박차를 가했다. 어찌어찌해서 신랑신부는 주례도 없는 화단 위에서 결혼서약서를 낭독하는 순서에 접어들었다.
황정민: 당신은 저의 운명입니다.
전도연: 전은하로서도 행복하고, 전도연으로서도 행복하다.
오호~ 이 둘의 낭만적인 고백들, 장난이 아닌데... 점점 추측이 구체적인 증거들로 타당성을 얻어가고 있을 때쯤, 우리의 도연 누님께서 눈물 한 방울로 본 기자의 억측에 구체성을 더해주기까지 했다. ‘좋아좋아! 그래 분명 뭔가가 있는 거야’
남들이 도연 누님의 눈물로 인한 숙연한 결혼식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한몫 보탤 때, 필자는 취재노트에 오늘의 특종 헤드카피를 가열차게 써내려가고 있었다.
“영화가 맺어준 인연! 전도연 황정민,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음.... 좀 더 쌈박한 헤드카피로 고쳐야 하나?’ 고민을 거듭하고 있던 중, 누군가 옆에서 이런 말을 한다. “황정민 결혼했지?” 아니 이게 뭔 소리더냐? 황정민이 결혼했다고 누구하고? 도연누님하고 저기 위에서 지금 한창 러브러브 모드를 은근슬쩍 저렇게 공개하고 있는 이 마당에 왠 뚱딴지같은 소리.
절대 그럴 일 없다는 생각에 그들의 얘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 쯤, 사회자 류승수가 말한다.
“석중과 은하는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결혼식다운 예식을 못 치룬 관계로 오늘 이렇게 기자님들 앞에서 영화에서 못 다한 아쉬움을 달랩니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절대 아니야!’를 속으로 외치면서 이 모든 상황을 극구 부정해 보려고 하지만, 이어진 도연 누님의 말은 청천벽력과 같은 현실을 일깨워주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말았다
“전은하 역할에 너무 몰입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네요(전도연 특유의 웃음소리와 함께).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실제로도 제가 무의식중에 결혼에 대한 애틋한 생각이 있었나 봐요”
저건 연기일거야. 전도연이 누구냐? 한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 아니겠어, 이런 생각이 언뜻 스치자 다시 한 번 투지가 불사 올랐다. 생활신조가 남들이 yes라고 할 때, no를 외칠 수 있는 무대뽀 정신이기 때문에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쯤 됐으면 본 기자, 말도 안되는 그 추측을 접었어야 했다. 그놈의 대도 않는 똥고집 때문에 여러 번 피 봤으면서도 불구하고 정신 못 차린 이 주책바가지 성격이 문제였다. 하여튼 그 당시에는 이런 깨달음을 애써 무시하며 모든 상황을 뒤집을 결정적 증거를 얻고자 기자간담회 장소로 누구보다 먼저, 눈썹 휘날리도록, 가장 빨리 자리 이동했다.
전도연과 황정민이 뭐라고 말하는지 너무너무 궁금해 맨 앞자리를 선점했지만 아까 먹다 싫증난 ‘떡’이 생각나 슬그머니 맨 뒤로 자리를 옮긴 뒤 두 접시의 떡을 앞에 펼쳐놓고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 그 떡을 다시 맛보고 싶은 맘만 간절할 뿐이다)
기자간담회 장소에는 영화사 봄의 미모의 대표 ‘오정완’과 <죽어도 좋아>를 연출하고 <너는 내 운명>의 메가폰을 잡은 ‘박진표’ 감독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전도연과 황정민이 왕림해 기자들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을 이어나갔다.
오정완 대표는 “영화사의 색깔에 맞지 않는 너무 색다른 영화가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가 있었는데 우리 영화사의 색깔이 그 색다름이다”라는 말로 영화에 대한 자신감을 우회적으로 돌려 답했다.
그러나 본 기자의 관심은 에이즈에 걸린 여인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영농 후계자의 진심보다 전도연과 황정민의 숨은 속내에 있었다. 지칠지 모르는 투지감에 휩싸여 모든 것을 일순 바꿔버리는 결정적 증거를 찾아 한 마리 고독한 하이에나처럼 헤매던 중, 황정민은 일말의 동정 없이 기자의 그 요상한 러브모드 상상에 아니, 착각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저는 석중이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실제로도 지금 그런 사랑을 하는 삶을 살고 있고요”
기자의 착각이 여지없이 깨지는 순간이 오고야 만 것이다.‘황정민’의 솔직한 대답은 본 기자의 개인적 입장에서 받아들이자면 그 실제 사랑의 대상이 우리의 도연 누님만은 확실히 아님을 밝힌 것이다.
‘특종 잡는 기자’라는 무지갯빛 희망사항이 미처 다 날라 가기도 전에, ‘전도연’은 다방레지 역을 맡은 자신의 역할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모든 걸 확실하게(본 기자의 개인적 입장에서 볼 때) 정리해 버렸다.
“우리 영화는 판타지적인 사랑이야기를 하고 있다. 관객이 보고 싶고 꿈꾸는 사랑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한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다방레지로 등장하기 때문에 스쿠터 타는 연습을 했고, 동시에 정말 예쁜 은하를 표현하기 위해 연기에 남다른 노력을 가했다. 실은 내가 나온 영화중에 가장 이쁘게 나온 영화가 될 것 같다(호호)”
부푼 꿈을 두 번 죽이는 황정민과 전도연의 연타 공격에 정신 못 차릴 때, 잘생긴(?) 무비스트 카메라기자 양반이, 이제 그만 회사로 돌아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제정신으로 간신히 컴백할 수 있게 되었다.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떡이 한 가득 채워져 있던 접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빈 접시 두개가 덩그러니 탁자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떡은 정말 어디로 사라진 걸까? 여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네...
이렇듯 대박 특종기사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면서 <너는 내 운명>의 제작보고회를 겸한 결혼식 현장 취재를 마감해야 했다. ‘이 남자의 진심이 당신을 울립니다’ 왜 하필 이런 카피를 내세워가지고 기자를 착각의 늪으로 빠지게 했는지, 주최측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p.s) 저주 받은 똥배가 전보다 살짝 더 튀어나온 본 기자, 지금까지 ‘떡’의 행방을 추적중이다. 혹시, 떡의 행방을 아시는 분, 기사 하단에 제보의 리플 달아주시라. 그리고 어찌됐든 석중과 은하의 결혼에 축하 글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다. 도연누님과 정민오빠가 무비스트 회원들이 남긴 글을 보고 무척 기뻐한다는 정확한 정보가 들어온 상태다. 그러니 마구마구 리플 좀 달아주세요~
취재: 최경희 기자
사진: 이한욱 PD
영상: 권영탕 PD
▶ 기자를 착각에 늪에 빠뜨린 결정적 ‘증거’ 사진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