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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무비스트에 들어가면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질문이 올라와 있다. 그 질문의 골자는 “현재 18세 미안 학생이다. 그런데 <친절한 금자씨>를 꼭 보고 싶다. 어떻게 하면 볼 수 있을까? 그래도 나이 때문에 결국 못 본다면, <친절한 금자씨>에 관련한 책이라도 보고 싶다. 언제쯤 출간되나?”였다. 나이제한 즉, ‘관람등급’은 엄청난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친절한금자씨’에 대한 대중의 욕구마저도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18세 관람등급’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야심작은 전국누계관객수 360만 명을 넘어서면서 영화의 등급이 흥행에 큰 족쇄가 아님을 증명하였다.
등급마저도 불친절했던 ‘금자씨’의 친절한 성공은 한국영화 관객층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것일까? 상반기 두 편의 블록버스터 <역도산>과 <남극일기>가 관객 1000만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재앙으로 초라하게 막을 내리면서 한국영화의 위기론은 수면으로 부상했다. 이런 불길한 조짐이 극장가를 드리울 때, “너나 잘하세요”하면서 나타난 작가주의 ‘웰 메이드’영화 <친절한 금자씨>는 최악의 조건에서 닻을 올린 화려한 유람선과 그 불안한 모양세가 비슷해 보였다. 두어 번은 걸러지는 관객층, 금자의 복수와 구원이 과잉된 비주얼 앞에서 난해함으로 치닫는데도 불구하고 360만이라는 (성인)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은 성과는 놀라움을 떠나서 경악하게 할 만한 대성공이 아닐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웰컴 투 대박골>과 <박수칠 때 떠나라>의 연이은 쾌속흥행질주는 ‘금자씨’의 성공으로 인한 반동효과로 해석되어진다.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한국영화는 이 분위기를 발판삼아 추석연휴 빅3인 영화인 <외출>, <형사>, <가문의 위기>가 대박바통을 이어받으려 하고 있다. 침체되어 있던 상반기 한국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경쟁하듯 연일 흥행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이 때,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뒤늦은 상반기 한국영화 결산은 올 한해 남은 기간 동안 우리 영화의 수치적 결과를 예상 가능하게 하는 지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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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블록버스터 <역도산>(제작:싸이더스픽쳐스, 투자배급:CJ 엔터테인먼트)은 끝끝내 일본인의 우상으로 살다간 제일동포 1세대인 ‘역도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기드라마다. 한 개인의 삶이 격동의 한국근대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이야기로 환원됨을 보여준 순제작비만 85억 원이 투입된 한국형 블록버스터로서 액션과 물량공세로 몰아붙이는 헐리웃 영화와는 지향하는 노선 자체가 틀린 작품이다. 그러나 <역도산>은 관객 천만시대의 후광을 등에 업지 못하고 전국관객 150만 이라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성적으로 서둘러 간판을 내려야 했다. 배우 ‘설경구’의 연기투혼, 뭉클한 기분을 감돌게 만드는 사실적인 경기모습들은 무의식중에 체화 된,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피해의식을 시원하게 해소해주는 대리만족감을 줬다. 드라마틱한 주인공의 삶에서 오는 감동, 액션이 아닌 거대한 몸뚱이가 주는 통쾌함은 기본 관객 500만에서부터 카운트를 매겨야한다는 근거 있는 기대감을 고취시켰다. 때문에 예상 외의 참혹한 실패 앞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탄탄한 드라마, 뜨거운 감동, 영화의 (물질적) 크기까지 뭐하나 빠짐없이 완벽했던 <역도산>의 실패 원인은 어디에 있던 것일까? ‘슬픈 블록버스터’라는 영화의 메인카피가 재앙의 씨가 된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식의 추측이 괜스레 설득력을 얻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역도산> 흥행참패의 충격이 영화 관계자들의 뇌리에서 조금씩 사라져갈 때, 또 다시 지역성을 벗어난 한편의 블록버스터가 등장했다. 이름하여 ‘심리’ 블록버스터 <남극일기>(제작:싸이더스픽쳐스, 배급:쇼박스)가 그 주인공이다. 연출을 맡은 임필성 감독은 본인의 덩치만큼이나 광활한 장소 ‘남극’(실제 촬영 장소는 뉴질랜드)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앞세워 인간 치부 깊숙한 심리를 눈 덮인 대지 위에 스펙터클하게 펼쳐보였다. 주연배우들의 호연, ‘남극’이라는 참신한 소재, 그리고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공통적으로 가로지르는 이념문제의 탈피 등은 <남극일기>가 만듦새에 관계없이 영화의 가치를 우선 쳐주게 만든다. 그러나 공포와 심리 사이에서 방점을 찍지 못하는 내러티브상의 치명적 결함과 함께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로 내세웠던 설원의 모습이 눈에 심심함을 야기하며 영화는, 개봉 첫 주 스코어 50만을 기록한 이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라는 말을 증명이라 하듯, 티켓판매 지수가 땅 속까지 곤두박질치는 초유의 비극을 야기하고 말았다. 대박흥행은 <남극일기>에게 정말로 도달불능점이었을까?
<역도산>과 <남극일기>의 공통점은 차승재 대표가 이끄는 “싸이더스”社의 2004년 후반과 2005년 초반의 야심작들이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관객동원 1000만 이상을 끌어올리면서 한국영화는 축제분위기에 들떠있었고 영화의 물질적 크기와 내용의 방대함을 대중이 이제는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설사 그게 거품이더라도, 형성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들이 쏟아졌다. <실미도>와 <태극기..>의 성공요인은 관객이 울음을 참지 못할 때까지 책임지겠다는 감동작전이 영화의 거대한 물량공세와 정확히 맞아 떨어진 경우였다. 즉, 한국근대사의 이데올로기 문제를 일차원적인 접근에서 풀어낸 영화의 내용이 관객의 동일화 현상을 용이하게 이루어냈다.
그러나 <역도산>과 <남극일기>는 이념적인 문제를 살짝 비껴갔을 뿐 아니라, 한국이라는 지역성마저 과감하게 벗어나, ‘인간’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 인물에 다가가는 방식 또한 작가주의의 상징적 기술인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한 개인의 삶 혹은 내면의 모습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결국 블록버스터의 ‘미덕’인 화려함마저도 상실하고 말았다. 결국, 관객이 원하는 감정이 복받치는 듯한, 감동(동일시)을 두 영화 모두 스스로 지양하거나 얻지 못했다. 더불어 관객천만시대라는 문구 그 자체가 ‘신기루’이자, 동시에 한국에서 영화는 5명의 한명 꼴로 즐길 만한 시장성을 획득하지 못했음이 판명됐다.
사실, 두 영화는 엄밀히 따져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니다. 인간의 삶과 심리를 큰 돈 들여서 좀 더 볼거리 있게 그려낸 작품성(작가주의 시선)과 상업성을 겸비한 ‘웰-메이드’(well-made) 작품들이다.
툭 깨놓고 얘기하자면, 재미도 있으면서 작품성도 놓치고 싶지 않은 감독들의 욕심과 제작사의 야망이 맞물린 상태에서 투자/배급을 담당한 CJ엔터테인먼트(이하 CJ)와 쇼박스가 가세해, 영화가 ‘웰-메이드’에서 ‘블록버스터’로 순식간에 둔갑한 경우다. 두 영화의 또 하나의 공통점인 대기업과의 협력관계는 이렇듯 당 영화의 성격을 간과하고 크기로 승부수를 띄우는 쪽으로 기울게 된 결정적 계기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영화계에서 양대산맥으로 군림하고 있는 두 투자/배급社의 개입 차원에서 영화의 실패원인을 분석할 수만은 없다. 80억 원 이상 돈을 투자해 영화를 만들려고 작정했으면 감독 또는 제작사 스스로 영화의 정체성을 규정지어야 한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관객 500만 이상을 목표로 하는 영화는 ‘상업성’에 올인 할 필요가 있다. 고정적이지 못한 관객 수의 확보는 시장의 불안정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감독의 작가주의 태도를 버리라는 뜻은 아니지만 소재에서 오는 난해함(인간의 내면을 탐구한 영화의 주제)을 관객의 몫으로 돌리기에는 영화의 크기가 커도 너무 컸다. 100억짜리 영화를 고민하면서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이 별로 없다는 게 현실이자 대세임을, 천만시대가 일반인의 눈높이를 업그레이드한 지표가 아님을 생활에서 몸소 느껴야 했다.
한 제작사의 거대 야심은 두 거대 투자/배급사를 만나 엄청난 물량공세식의 홍보마케팅을 펼쳤다. 제작단계부터 언론을 통해 노출된 영화의 규모는 많은 이의 궁금증을 야기하거나 호기심을 유도하는 선에서 공개됐다. 점차 그 강도와 노출의 범위를 확장하면서 마케팅 즉, 광고들은 <역도산>, <남극일기>로 볼거리 짱짱한 블록버스터로 이미지를 굳혀나갔다. 예를 들자면, <역도산>같은 경우에는 역도산의 파란만장한 삶과 야망이 한국과 일본을 관통하는 스펙터클로 치환됐고, ‘남극’이 주는 고립감은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힘으로 <남극일기>에 묘사됐다.
두 영화가 마케팅 비용으로 영화의 제작비, 적어도 3분지1 이상에 해당하는 돈을 쏟아 부으면서 손익분기점은 자연스럽게 상승했기에 흥행의 커트라인도 덩달아 높아졌다. 영화는 만들 수 있으나 보는 영화는 따로 있듯, 현 영화계에서 영화의 마케팅은 그 ‘보는’ 영화를 관객 대신 선별해주는 정화조를 자청한다.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가 있든 없든 간에 마케팅은 영화를 볼 만하게 포장해주는 개봉 직전의 마지막 세공단계임이 분명하다.
“싸이더스”의 숙원이었던 두 편의 영화가 줄줄이 흥행에 참패하자, 영화의 화려한 포장을 담당했던 마케팅이 실패의 책임을 지는 분위기가 암암리에 형성됐다. 영화의 덩치만큼이나 엄청난 돈을 들여 홍보를 햇것만,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올렸다면 영화가 관객에게 다가가는 방식인 마케팅의 잘못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웰-메이드 영화를 블록버스터로 포장한 것은 좀 더 많은 대중의 관심을 끌어보자는 전략의 한 방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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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광고는 대박감인데 극장에 걸린 해당 영화가 쪽박인 경우는 이 영화들 이외에도 많지 않았던가? 대기업 쇼박스와 CJ가 매달린 작품인 만큼 영화와 상관없이 마케팅부터 ‘대박’을 쳤어야하는 게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극장가의 한산함과는 별개로 말이다.
정체성을 확립 못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두 편이 흥행에 실패하자 전 연령층을 상대로 하는 대대적인 홍보활동에 회의적인 반응이 잇따랐다. 갈피를 못 잡은 것은 아니나, 관객천만시대의 후유증은 단숨에 해결하기 힘든 압박감으로 작용했으리라. 그럴 때마다 영화의 좁은 시장성이 그 원인으로 지목됐지만 이것 또한 새로운 문제제기가 아닌, 문제점의 답습에 그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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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 실패가 한국영화의 불황으로 굳어지고 있을 때, 국민 여동생 문근영이 주연한 <댄서의 순정>(제작:(주)컬쳐캡미디어, 배급:쇼이스트)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테리 추리극 <혈의 누>(제작:좋은영화 배급:씨네마서비스)가 그 화제성에는 못 미치지만 300만 관객을 모으면서 조용한 성공을 이루어냈다.
<남극일기>가 실패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을 때, 영화의 질과는 관계없이 '문근영‘만을 내세워 관객 250만 이상을 불러들인 <댄서의 순정>은 스타마케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입증하면서 침체되어가는 한국영화에 일시적 자구책을 세워줬다. <혈의 누> 또한 18세등급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주연을 맡은 배우 ’차승원‘에 대한 대중의 절대적 신뢰감에 힘입어 300만 이상의 사람들을 극장가에 끌어들였다. 거기다 미스테리 서사구조의 치밀함과 강렬한 이미지들은 시대극의 통속성을 탈피하면서, 젊은 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럭셔리한 분위기를 살려줘 영화의 성공에 기여했다.
물론, 그 전에 스타 없이도 350만 명의 사람들이 찾은 기획영화 <마파도>(제작:코리아엔터테인먼트, 배급:CJ엔터테인먼트)는 제작 초기단계부터 통일감 있게 진행된 영화마케팅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스타 보다는 영화의 설정과 웃음코드 그리고 캐릭터를 중점적으로 노출한 마케팅의 진검승부가 제대로 빛을 발한 경우다.
세 영화. 각각의 관객 최종스코어 300만은 천만이라는 숫자에 비해 턱없이 작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비수기의 장기화를 막는 히든카드 역할은 톡톡히 해냄으로써 대중들로부터 한국영화가 지속적인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줬다. <마파도>, <댄서의 순정>, <혈의 누>는 사실, 처음엔 2인자의 위치에서 출발한 작품들이다. 이들에 대한 대접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블록버스터를 향해 달려가는 몇몇의 영화들 다음으로 흥행을 기대해 봄직한 차선후보쯤으로 거론된 정도였다. 승리자의 정복감에 미리부터 도취됐던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개봉과 동시에 패배자의 쓰라림을 안고 삼류극장 쪽으로 빠르게 물러나자, 이들의 성공은 그제야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세 영화의 성공은 모두 다 인정하는 그 ‘대박’은 아니지만 영화의 성향과 규모적인 차이 때문에 언론에 노출되는 영역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약점을 처음부터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각별하게 다가온다. 세 편 모두 하나의 컨셉을 선택, 그걸 주축으로 한 마케팅을 펼쳤다.
<댄서의 순정>은 이병헌, 이미연 주연의 <중독>으로 화제를 모은 박영훈 감독의 차기작인데, 그런 부분은 영화의 홍보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영화의 성격 자체가 워낙에 달라, 감독의 전작을 대중에게 널리 알려서 이득 되는 점이 별로 없을 거라는 게, 당사자가 아닌데도 통밥으로 계산이 나오긴 한다. 그저 국민여동생 ‘문근영’의 평소 이미지에 맞춰 밝고 귀여운 로맨틱 영화로 사정없이 포장, 전형적인 스타마케팅 영화로서 짭짤한 수익을 올린 것이다. <혈의 누>는 그동안 코믹배우로서 입지를 다진 차승원의 연기변신이 언론을 이용한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된 케이스다.
우리를 웃기고 울리던 그의 아저씨 풍 코미디에 관객이 질려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배우로서의 성실함과 신뢰감은 정극 도전에 대한 관객의 기대심리를 상승시켰다. 또한 관람등급 18세 이상을 받으면서 잔혹한 영화 속 장면들이 차승원의 연기변신과 어떻게 앙상블을 이룰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막가파 할머니들이 젊은 총각들의 배꼽아래를 쥐고 흔들었던 <마파도>는 영화의 상황과 설정을 보고 관객들이 공감하도록 분위기를 형성하는 게 마케팅의 미션이었다. 효율적인 마케팅 시스템 하에서 영화 그 자체를 주도면밀하게 단계적으로 부각한 게 성공의 주요인이다.
<마파도>, <댄서의 순정> <혈의 누> 등, 각 영화의 제작사나 투자/배급사의 마케팅 방향을 비교해보면 이들은 천만을 바라보기보다 영화의 최대장점이 어느 연령층에게 혹은 어떤 특정인에게 소위 먹힐거이냐을 사전에 면밀히 분석해 그걸 토대로 홍보활동을 펼쳤음을 알 수 있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한국형블록버스터의 마케팅과는 확연한 차이점이 보이는 대목이다.
도박판에서 적은 베팅을 하면 설사 돈을 잃더라도 큰 손해가 없는 것과 같은 논리로 보면 된다. 운 좋으면 적은 돈으로 대박 맞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러나 이들 영화의 성공이 후에 개봉하는 다른 한국영화들의 동반 흥행을-기대작이던 <달콤한 인생>, <주먹이 운다>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함- 유도하지 못한 점에선 2005년 6월까지 한국영화시장은 여전히 침체의 늪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올 초에 500만 관객의 우리말 받아쓰기 실력을 헷갈리게 했던, <말아톤>의 대박만이 올 한해 유일무이한 성공작으로 기록되는 거 아니냐? 하는 성급한 우려가 이즘에서 조심스럽게 붉어져 나왔다. 이 위기사항을 극복할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사실,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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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서 밝혔듯이 조금 늦게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친절한 금자씨>(제작:모호픽쳐스, 투자/배급:CJ엔터테인먼트)를 관람 못한 상당수의 청소년 관객들이 아쉬움을 달래며 ‘금자씨’의 DVD출시 일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베니스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면서 또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은 <친절한 금자씨>는 한국영화의 빅카드로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어왔다.
영화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제작 전부터 많은 화제를 일으켰는데 시놉시스 공개이외에는 일체 비밀에 붙여진 영화의 제목만 기사의 헤드라인을 장식해도 기사로써 가치를 인정받았다. 호들갑스러운 언론과 일반인의 관심 속에서 <친절한 금자씨>는 암울한 분위기를 시종일관 유지하던 한국영화계의 ‘핵폭탄’이 될 거라 모두들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영화는 예정대로 7월29일 전국스크린 370개 이상을 장악하면 만천하에 공개됐다. 쇼킹한 반전은 없지만 <올드보이>로 세계적 성공을 거둔 ‘국민감독’ 박찬욱과 ‘장금이 신드롬’의 주인공인 이영애의 의기투합만으로도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발산했다.
모처럼 만에 극장가는 ‘금자씨’ 때문에 활짝 웃게 된 것이다. 9월 현재까지 금자씨의 활약상은 눈부시다. 전국누계 관객수가 370만을 넘었고, 현재 해외 영화제등 각종 해외마켓 루트를 통해 세계로 쫙쫙 뻗어나가고 있다. (숫자 370만에 대한 의문은 글 후반부에 나온다. 기둘려 주시라!)
‘금자씨’가 움직이자 한국 영화시장은 여름방학 시즌과 맞물려 전과는 다른 증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가 공개됐음에도 대중들의 관심은 커져만 갔다. ‘복수’시리즈의 최종판이라는 메리트와 딱히 정의내리기 힘든 금자씨 캐릭터의 특이함은 음식으로 따지자면 물리지 않는 신기한 맛이었던 게다.
‘금자씨’의 개봉 이후, <웰컴 투 동막골>(제작:필름있수다, 투자/배급:쇼박스)이 일주일 늦게 개봉했다. 6.25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 ‘동막골’의 파워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그 파급력이 실로 예상외의 엄청난 후폭풍으로 돌아올지 누구도 예언하지 못했을 정도다.
신인감독의 입봉작에 강혜정 정재영 신하균 등이 출연하지만 관객동원력을 뚜렷하게 입증한 배우는 없는 상태였다. 영화가 시쳇말로 ‘꽝’이 아님을 개봉 전에 증명한 유일한 증거자료는 ‘장진’감독의 동명연극을 영화화 했다는 것뿐이었다.
연극<웰컴 투 동막골>은 영화로 따지자면 초대박 작품이다. 개봉 첫주 영화를 본 관객수가 150만 명에 육박하면서 일찌감치 ‘대박’영화로 자리를 선점한 ‘동막골’은 전국 스크린점유율이 30%를 웃돌며 450개의 스크린을 통해 관객의 발길을 묶어버렸다.
미야자키 하야오 식의 무릉도원으로 그려진 ‘동막골’과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선함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겐 낯설면서도 잃어버린 순수에의 동경을 일깨웠다. 어수룩해 보일 정도로 순진한 동막골 주민들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성애를 자극했다.
다시 말해, 그들과 함께 결코 이 세상에선 살 수 없음을, 그들은 동막골에서만 살면서 지저분하게 돌아가는 세상 일을 몰랐으면 하는 바람. 이것들이 모여 영화와 관객의 동일시가 모성애로 구체화되면서 극에 몰입도도 높아졌다. ‘동막골’이 세상과는 격리된 체 어딘가에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파괴될 것인가? 는 아름다운 화면과 훈훈한 에피소드들로 극을 이어나가는 영화의 다른 축에서 긴장감을 살려줬다.
이렇듯 감정이 쉼 없이 피드백 됨에 따라, 영화는 다음 차례로 대박이라는 당연한 순서를 밟기만 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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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차이로 개봉한 단 두 편의 영화 스크린 점유율을 합하면 전국 스크린 장악율은 60%를 훌쩍 넘어버린다. 즉, 7월 말부터 8월달까지 극장에서 (관객입장에서) 만나기 쉬운 영화라 해봐야 <친절한 금자씨>와 <웰컴 투 동막골> 외에는 없었다. 거의 단합내지는 독과점 현상으로까지 읽힌다. 두 영화가 대대적인 물량공세를 펼칠 수 있던 배경에는 역시나 한국 영화시장의 최강자인 투자/배급사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웰컴 투 동막골>은 KTF의 투자지원을 받아 “쇼박스”가 투자/배급을 전담했다. 제작비 80억 원, 손가락만 가지고 계산해도 <남극일기>의 제작비와 똑같은 금액이다. 여기서 플러스 되는 금액은 마케팅 비용이다. 영화를 광고함에 있어 ‘동막골’의 컨셉은 12세 관람등급에 걸맞은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대국민 영화를 지향했고 그에 따른 홍보활동을 펼쳤다. “네티즌이 감동한 영화”, “올해 최고의 영화”라는 수식어가 영화의 광고카피로 따라다녔고. 영화가 주는 전체적인 ‘감동’이 구라가 아닌, 진실임을 ‘보증’하는 문구들로 가득 메워졌다. 전국20만이라는 한국영화사상 초유의 대규모 시사회를 통해 취합한 관객의 의견은 유용한 마케팅 자료로 활용됐다. 영화에 별반 관심 없는 사람들이 보더라도 <웰컴 투 동막골>의 광고들은 믿음이 가게 만들어졌다. 이런 물세 틈 없이 진행된 영화의 마케팅은 관객천만시대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몸부림으로까지 느껴질 정도다.
확실히 ‘동막골’은 관객천만을 바라보고 만들어진 자신감 넘치는 ‘웰-메이드’ 기획영화다. 또한 그 자신감이 허장성세만도 아니었다. 현재 <웰컴 투 동막골>의 전국누계관객수는 현재 700만 고지를 넘어섰다. <말아톤>이 유일무이한 대박영화로 기록되는 비참한 결과는 다행히도 피하게 된 것이다.
<웰컴 투 동막골>은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대박’감이 분명하다. 신인답지 않은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 배우들의 캐릭터 융화력, 그리고 아름다운 화면 속에서 적절하게 웃기고 울리는 이야기들은 전체적으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동막골’의 보여준 외적인 결과치 즉, 평면적 수치들은 한번쯤 재고해 볼만 맹점을 지니고 있다. 공식적으로 열린 10만 시사회, 비공식으로 열린 10만에 가까운 추가 시사회들이 개봉 첫 주 관객스코어에 포함됐다. 반칙이라고 섣불리 단정 짓기에 앞서, 개봉 전 열리는 모든 영화의 시사회들은 개봉 첫 주 관객수에 포함되는 게 관행임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근대 뭐가 문제냐고? 숫자가 문제여서 그렇다. <친절한 금자씨>의 개봉 첫 주 스코어가 140만을 넘었는데 <웰컴 투 동막골>이 한 주 만에 그 기록을 갱신(<친절한 금자씨> 146만, <웰컴투동막골> 148만)했다는 소식이 대대적으로 언론의 입을 빌려 공개됐다. 두 영화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경쟁 영화이기도 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라이벌 관계인 두 투자/배급사의 보이지 않는 완력싸움과 자존심이 걸린 작품들이었다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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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친절한 금자씨>의 마케팅 컨셉은 신비주의였기에 일반인을 대상 시사회마저도 전야제 딱 한번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즉, 개봉 스코어에 포함되는 시사회 관객수가 극히 미미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자씨’와 3만명 차이로 이긴 ‘동막골’의 첫 주 관객수는 신빙성이 떨어지게 된다.
여기서 또 하나 간과된 게 있다면 바로 두 영화의 등급 차이다.
<웰컴 투 동막골>은 보는 기준에 따라 전체 관람가일 수도 있는 ‘12세이상 관람등급’을 받았고, <친절한 금자씨>는 18세 이상만 봐야 하는 상업영화로서는 최고등급인 ‘18세이상 관람등급’을 받은 상태다. 관람등급에 제작사, 투자/배급사가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좁은 한국영화시장에서 그나마 없는 관객을 또 연령대별로 쪼개야 한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뭘 하든 비교되는 두 영화지만 개봉 첫 주 성적들은 비교대상에서 제외되었어야 하는 게 마땅했다. 영화를 보는 대상들이 다르기에 하는 말이다.
8월 후반에 들어서자 두 영화의 스코어는 확연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당연한 결과다. 아무리 극장수를 중간에 <친절한 금자씨>가 늘렸다 치더라도 관람등급은 보고 싶어도 영화를 못 보는 관객들을 양산한다. 그리고 입소문을 제대로 탄 ‘동막골’은 극장을 이용, 일 년에 고작 한두 편의 영화를 볼까말까하는 잠재 관객까지 극장가로 불러들였다. 거기다 KTF 이동통신사를 사용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몇 백만 관객돌파 기념 무료 영화상영회” 행사를 개최, 하루에 천 명씩 뽑는 이벤트가 진행되기도 했다. 아침 조조관람은 무조건 무료인 행사도 동시에 진행돼 영화의 입소문은 입소문대로 맹위를 떨쳤고, 개봉 후에도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무료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무료로 봤던, 조조관람을 했든 관람객 수는 여전히 ‘동막골’의 누계관람객 수에 포함되기에 두 영화의 편차는 나날이 커져만 갔다.
여기서 잠깐, 이 글의 저의가 대기업 “쇼박스”가 자신들이 성공시킨 <말아톤>의 성공요인을 스스로 면밀히 분석해 그 데이터를 근거로 ‘동막골’ 마케팅을 펼쳐, 다시 한 번 극장가를 평정한 것을 부정하겠다는 데에 있지 않음을, 분명하게 밝혀둔다. 단지 평정했다는 근거가 경쟁영화인 <친절한 금자씨>와의 은근슬쩍 이루어진 비교에 의해 부각된 게 문제일 뿐. 전후사정 다 빼고 숫자만 가지고 이슈 만들기를 좋아하는, 같은 장단에 놀아난, 언론 또한 그 책임대상에서 예외이지는 않다.
초원이가 극장가를 끝까지 달릴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에 ‘진심’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동막골’에도 분명 같은 ‘진심’이 담겨있다. 그걸 제발 숫자놀이로 퇴색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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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금자씨>는 박찬욱 감독이 창립한 “모호필름”의 첫 창립 작품이다. 3편의 영화까지 ‘CJ엔터테인먼트’에게 투자를 받기로 계약을 체결한 후의 첫 영화이기도 하다. 제작비 42억 원으로 만들어진 <친절한 금자씨>는 현재까지 관객수입만 따져서 3배에 가까운 수익을 올린 상태다. 근대 ‘금자씨’의 성공은 다른 차원에서 해석해 볼만 흥미로운 단서들을 갖고 있다. 정말 영화 자체만 가지고 이런 수익을 올릴 수 있었을까?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는 전작을 능가하는 과잉된 비주얼과 단박에 이해하기 힘든 난해함이 공생하는 영화다. 작품 주제가 복수와 구원인 만큼, 한 장면에 응축된 의미들 또한 다양하게 해석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거기다 18세등급 영화이기에 스타 감독 박찬욱과 톱스타 이영애라는 메리트를 빼면 관객에게 어필할 상업성 또한 검증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 <친절한 금자씨>가 최고의 뉴스거리임에 분명한데 포 빼고 차 빼고 나면 이슈-파이터한 정도에서 만족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들었을 것이다. ‘동막골’도 마찬가지지만 ‘금자씨’ 또한 CJ엔터테인먼트의 자제 극장망이 없었다면 현재의 성공은 불가능했다. “쇼박스”는 메가박스, 'CJ'는 CGV라는 극장망을 가지고 동시에 투자와 배급을 진행하는 대기업들이다.
쇼박스가 ‘동막골’의 벤치마킹을 <말아톤>으로 했다면, CJ는 강혜정, 박해일 주연의 <연애의 목적>(제작:싸이더스 픽쳐스, 투자/배급:CJ엔터테인먼크)으로 18세관람등급 영화의 시장성을 검증했을 것이다. 위에서 상반기 히트작이던 <연애의 목적>을 다루지 않은데도 여기에 있다. 배급과 마케팅이 어떤 식으로 협력해야만 18세등급짜리 영화를 성공시킬지 에 대한 노하우가 한 커플의 귀엽고 외설스러운 연애행각을 통해 쌓였을 것이다.
‘금자씨’의 흥행성적은 무턱대고 많은 수에 극장에 걸어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18세이상 관람등급 영화가 뽑아낼 수 있는 최고점의 수익을 위해, 수익분기점을 최적의 상태로 고려해 만든 노력의 결과다.
이렇듯, 관계자들의 내심은 어떨지 모르지만 ‘금자씨’는 복수도 성공하고 흥행에도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올렸다. 그런데 이 흥행성적이 ‘쾌거’라고 대접 받지 못한 이유는 <웰컴 투 동막골>의 거침없는 초대박행진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낮게 보이는 숫자들 때문이다. CJ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의 경쟁은 본인이 영화 쪽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일반인들의 관심 밖 일이다. 그러니 자신들의 성공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가장 손쉬운 방법은 어쩔 수 없이 지겹도록 듣고 또 듣는,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순위와 또는, 전국누계관객수 얼마? 다.
상황이 이러니, 자존심 높은 ‘금자씨’의 속은 타들어 갔을 것이다. 결국, 임시방편으로 내놓은 자구책이 <친절한 금자씨> 두 번 보기 운동이다. 한번 보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다는 게 어느 정도 드러난 상황이었기에 한 번 더 본다는 것은 영화를 내 것으로 잘근잘근 씹어 먹기 좋은 방법이긴 하다. 하여튼 ‘금자씨’의 욕심과 자존심은 당할 자가 아무도 없다는 건, 여기서 인정! 그게 잘 성사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현재 추석연휴를 맞아서 극장가는 연일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욘사마의 <외출>, 강동원의 <형사>, 그리고 다시 돌아온 조폭영화 <가문의 위기>가 치열하게 승자를 가리는 중이다. 혈전을 방불케 하는 한국영화의 흥행전쟁은 오랜 침체기를 빠져나와 간만에 보는 현상인 만큼 반갑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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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에 히트작이 없던 건 아니지만 블록버스터라고 간판 내건 영화마다 실패를 거듭하고, 영화는 그럭저럭 성공했으나 다른 영화들의 동방흥행을 이끌지 못해 맥이 끊기던 영화계에서 현재의 분위기를 만들어준 건, <친절한 금자씨>와 <웰컴 투 동막골>의 공이 크다. 특히, <친절한 금자씨>는 여러 가지 악조건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기획과 마케팅을 잘 활용해 영화의 흥행을 이끌어내 그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자신만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동막골’이 대박의 길로 빠르게 진입하도록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후에 개봉한 <박수칠 때 떠나라>를 포함한 현재 상영작까지 동방 흥행을 이끌어냈다.
2005년 후반까지 가야 정확하게 판가름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한국영화산업의 침체를 벗어나게 해준 작품은 단연코, <친절한 금자씨>로 봐야 한다. 그 놈의 숫자놀이에 민감한 사람들이 설사 인정 못한다할지라도 속을 꽉 채운 내실 있는 성공은 아직까진 ‘금자씨’인걸. 우짜라고? 그러니 “너나 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