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영화 중 추천을 해줄 만한 시리즈물이 뭐 없겠냐고 불특정 다수에게 묻는 다면, 아마도 상당수의 사람(남자)들은 <애마부인>이나 <처제의 일기> 등 주로 에로물을 언급할 가능성이 크다. 그간 충무로가 양산해낸 시리즈물이 그만큼 관객들의 마음을 쥐어흔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많은 것을 우리에게 던져주며 시사해준 바 있는 <여고괴담> 시리즈가 수년이 지났음에도 잊혀지지 않고 끊임없이 호명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때문에 어찌할 도리 없이 그 뒤를 밟아 태어나게 되는 속편은 숙명적으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그 대단한 그 무엇을 거머쥔 대상이 하나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둘이라면 이건 거의 말 다한 거다. 여고괴담의 세 번째 이야기인 <여우계단>은 이처럼 심리적 압박을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 없는 태생적 조건을 부여 받고 탄생한 영화다.
‘예술여고’와 ‘여우계단’이라는 모티브를 설정해 전작들과 차별성을 둔 영화는, 비교되어짐에 따라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여학생들의 질투와 욕망과 열등감을 저주 안으로 불러 들여 버무린 다음 공포로 형상화시켜 내보낸다. 감당하기 힘든 끔찍한 저주 안으로 그네들의 유리 조각과 같은 예민한 심리를 끌어 들이고자 <여우계단>은 <여고괴담2>에서 보여준 소녀들의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전반부에 심어놓는다. 그리고 그 감수성 어린 흐름이 광포한 용암으로 돌변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참상을 보여주고자 <여우계단>은 또 자신의 할머니 격인 원편 <여고괴담>의 핏빛 가득한 공포를 좀비처럼 되살려 후반부에 배치시킨다.
전반부의 심리적 공포가 탄탄하게 구축되지 못한 것은 캐릭터를 평면적으로 그리고 너무 뻔하게 그렸기에 그렇다. 특히, 살이 많아 따돌림을 당하는 혜주(조안)의 묘사는 좀 어딘가 모자란 친구이거나 사이코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소희(박한별)와 진성(송지효)의 관계 역시, 왜 그렇게도 소희가 진성에게 일방적으로 착하게 구는지 납득이 잘 안 가게끔 영화는 그리고 있다. <여우령>, <링>, <캐리>가 떠오르는 장면이 곳곳에 준비돼 있는 후반부의 물리적 공포는, 결정적으로 긴장감을 서서히 조였다 푸는 별다른 완급조절 없이 공포의 주체가 사라졌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나타났다만을 반복함으로써 공포의 기운을 스스로 떨어뜨린다.
그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 군이 존재했던 전작들에 비해 이번 영화는 주인공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지 않는다. 주인공인 소녀들 역시 이상하게도 실제로 어려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첫, 두 번째의 소녀들에 비하자면 너무도 어린애들 같다.
남다른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예술 여고라는 점과 공통된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미신 행위의 일종인 여우계단이라는 그럴듯한 설정을 가져와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여우계단>은 아쉽게도 전작의 언니들의 빼어남을 넘어서지 못한다. 물론, 그 후광에 가린 억울한 면도 있겠지만 말이다. 여튼, 한국사회에서는 정말이지 어른들의 말마따나 셋째가 세인들로부터 두루두루 총애를 받기는 참 힘든 모양이다. 그 사랑을 듬뿍 받아 노래까지 있는 ‘최진사댁 셋째 따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