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첫 경험처럼, 천 가지 느낌을 전달하는 영화 세계가 느꼈습니다! 당신이 느낄 차례입니다!
1. 전 세계 영화계에 ‘첫 경험’을 안겨준 두 소녀
여자의, 여자에 의한, 여자가 느끼는 ‘性’에 대한 전 세계 영화계의 스페셜리스트 까뜨린느 브레야 감독.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브로드웨이 연극계에서 여성들의 성기인 버자이너를 ‘언급’한 것만으로도 센세이션의 정상에 올랐었다면, 까뜨린느 브레야 감독은 여성의 성기에 카메라를 들이대기를 서슴지 않았으며(<로망스>) ‘성’과 ‘사랑’에 대해 꾸준하게 문제제기를 하면서 발표하는 작품마다 화제를 모아왔다. 국내에서는 첫 번째 제한상영관 상영작이었던 <로망스>를 비롯해 <지옥의 해부> <팻 걸>이 줄줄이 등급 심의에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팻 걸>에서 브레야 감독은 순수(?)해진다. 성을 알고, 성이 일상이 된 성인 여성들에서 벗어나 이제 막 성을 시작하려하는, 성에 대해서는 백지상태와 같은 소녀들에게로 시선을 낮추는 것. 브레야 감독의 이러한 ‘순수회귀’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녀가 테마로 멈춤없이 추구하고 있는 ‘여성들의 성’에 대한 스타트 라인인 동시에 어쩌면 관객 모두에게 있어 ‘성의 스타트 라인’이 될 ‘첫 경험’을 이야기함으로써 모두를 다시 ‘초심’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국내 등급심의에서는 재심을 통해 18세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
시사회장에서 공개되자마자 <팻 걸>이 일으킨 반응은 놀라웠다. ‘까뜨린느 브레야 감독의 작품중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린 평론가들을 비롯, 칸 영화제에서는 그해 최고의 프랑스 영화로 선정되어 칸의 개최국 자존심을 대표했고 베를린 영화제, 로테르담 영화제, 시카고 영화제 최고상까지 전 세계 콧대 높은 영화제들에게 찬사의 ’첫 경험‘을 이뤄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센세이션은 관객들에게서 나타났다. 영화 상영 후 관객들의 반응은 너무나 다양했다. 어떤 이는 영화 내내 깔깔대며 웃다가 마지막에는 울음을 터뜨렸고, 어떤 이는 영화 내내 눈살을 찌푸리다가 마지막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 이는 영화 내내 호흡이 가빠지더니 라스트 씬이 끝난 뒤에는 기절 일보 직전에 간 사람조차 있었다. 왜 이토록 다양한 반응들이 나오는 걸까? 그것도 그토록 많은 문화권에서 남녀노소 몰입하고 울리고 웃기고 놀라게 하며 마음을 빼앗아 버린 영화. 두 소녀의 첫 경험이 도대체 어떻길래?
2. 사랑과 성, 환상과 현실, 그리고 경험 전과 경험 후... 모두를 대신해 벽을 넘나드는 소녀들. 당신은 그들 중 누구입니까?
까뜨린느 브레야 감독이 전작들에서 보여준 선정성과 도발은 <팻 걸>에서는 놀랄 만큼 잔잔하게 잦아들어 있다. 중반부 이전까지 영화의 시선은 따뜻하기까지 하다. 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고대하던 바캉스를 떠난 소녀들의 심장박동처럼 콩닥콩닥 거리는 스크린의 울림이 관객들 모두를 10대의 두근거림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팻 걸>이 이제까지의 10대 영화들과 갖는 가장 큰 차별화는 그 10대 소녀들을 뭉뚱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성중심의 마쵸 영화에서 흔히 블론드의 백치 미녀와 흑발의 강인한 여전사로 대비되곤 하던 여주인공들을 섬세하게 샅샅이 훑어내며 그녀들의 심리와 육체의 변화를 탐구해낸 브레야 감독답게 소녀들의 마음과 몸의 떨림들이 그녀들의 캐릭터에 맞춰 올올이 스크린에 살아난다. 실제 매력적인 언니와 함께 자라면서 부러움과 열등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감독 자신의 경험이 투영되어, 더욱 공감가는 묘사들이 가능했다고!
<팻 걸>의 주인공인 엘레나와 아나이스. 언니 엘레나는 아름답다. 그녀는 사랑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첫경험을 동경한다. 어서 빨리 성숙하고 싶어 몸달은 소녀.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아직 너무나 연약하다. 그에 반해 동생 아나이스는 놀랄만큼 현실적이다. 그녀는 아름답지 못 한 자신의 외모 탓인지 사랑의 허망함을 일찍 깨달았고 덕분에 ‘첫 경험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하고 싶다.’는 충격적 결심까지 하게 된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활개치고 있는 2004년, 현실로 눈을 돌려보면 결혼, 출산, 육아를 거부하는 여성들이 늘어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꿈과 현실 속에서 극과 극을 치닫는 오늘 여성들의 캐릭터를 <팻 걸>의 소녀들이 대표한다. 낭만소녀 엘레나, 대담소녀 아나이스. 당신은 어느 쪽의 손을 들고 싶나요?
3. 야한 영화? 아름다운 영화? 슬픈 영화?? ...! 순수한 오프닝, 섬세한 전개, 아름다운 베드씬, 그리고 충격 이상의 라스트씬!
팻 걸은 다양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소녀처럼, 그리고 첫 경험처럼. 당신의 첫 경험은 어떠했는지? 달콤했을 수도...혹은 코믹했을 수도...혹은 충격적일 수도 있다. 어쩌면 슬펐을 지도 모른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들을 그러모은 듯 복잡미묘한 감정의 결정체 ‘첫 경험’. 모든 인간은 일생동안 수없는 섹스를 하겠지만 그 첫 번째 문턱을 넘는 순간은 생애 모든 섹스들을 압도할 만큼의 설레임과 두근거림으로 기억된다. 생애 가장 좋았던 사람과의 섹스, 생애 가장 슬펐던 섹스는 늘 가변적으로 변할 수 있지만 첫 경험만큼은 누구도 잊지 못한다. 다시 오지 못할 경험이기에...
<팻 걸>은 이 첫 경험을 마치 고전 회화를 연상시키듯 아름답게, 마치 연약한 소녀들을 어루만지듯 조심스럽게 펼쳐놓는다. 그처럼 정적이고, 고전적인 스타일과 화면들이 담아내는 대담함이 조화를 이루면서 관객들은 <팻 걸>의 스크린 속으로 몰입한다. 무려 20분에 달하는 엘레나의 첫 경험 내내 관객은 숨조차 쉴 수 없다. 이제까지 영화들의 어떤 베드씬도 이뤄내지 못 한 관객과의 합일이 이 장면에서 성취된다.
그러나 이처럼 담담한 듯, 섬세하고 미세한 <팻 걸>의 카메라는 라스트에서 엄청난 도발을 감행한다. 이성에 대한 환상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일격! 이후 까뜨린느 브레야는 세 명의 여자 중 단 한 명 ‘팻 걸’만을 이 영화의 아이콘으로 선택한다. 일상에 지쳐 사랑의 떨림을 잊은 엘레나와 아나이스의 엄마, 사랑의 환상에 좌우되며 내적 자아의 성숙을 멈춰버린 아나이스의 언니 엘레나. 그녀들은 현실로부터 무참히 삭제된다. 그리고 그 순간 찾아온 이보다 더 충격적일 수 없는 아나이스의 첫 경험. 그것은 그녀가 원했던 대로 ‘단 1%의 사랑도 개입할 수 없는’ 바로 그 상황이다. 관객들은 그 충격을 목격한다. 그것은 2004년 저녁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험난한 현실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이후, ‘팻 걸’ 아나이스가 그 현실을 인정하고 극복하며, 딛고 일어서 성숙하는 순간이다. 관객 모두에게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충격을 각인시키고, 그 충격을 열고나올 힘을 주는 영화 <팻 걸>. 우리의 ‘첫 경험’이 어떤 것이었든 간에 우리는 그 이후 성숙했다. 그리고 세상을 이겨나갈 힘을 얻었다. <팻 걸>은 바로 그 힘을 우리에게 재현시켜준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그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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