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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나는 목소리(2023, Voices of Silenced)
제작사 : 영화사 하르빈, 아리랑의 노래 제작위원회 / 배급사 : (주)시네마 달, 푸른영상

되살아나는 목소리 : 메인 예고편




민중의 역사와 진실을 기록한 거장 ‘박수남’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존재의 부조리를 물으며
재일조선인 2세 정체성에 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
국가주의 밖으로 배제된 존재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다!


재일조선인 2세 다큐멘터리스트이자 작가인 박수남은 1935년 일본에서 태어나 황민화 교육을 받아 천황을 신으로 믿었던 황국소녀였다. 그는 다섯 살에 한복을 입은 어머니가 돌을 맞고 욕설을 듣는 것을 목격하는 끔찍한 상황을 겪었다. 재일조선인을 향한 증오의 눈빛을 참지 못했던 그는 이후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으로부터 도망쳤지만, 해방 이후 조선학교에서 조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민족의 혼을 되찾아갔다.

그가 1958년 고마쓰가와 사건의 재일조선인 2세 사형수 이진우와 깊은 유대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이러한 유년 시절이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이진우의 구명 탄원 운동에 참여하며, 조선인으로 깨어나 인간성을 회복해야 죄를 자각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진우는 박수남과의 교류를 통해 사형수라는 극한에 몸담으며 조선인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을 찾아내었다.

이진우의 사형 집행 이후, 이듬해 출간된 두 사람의 왕복 서한집 『죄와 죽음과 사랑과』(1963)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특히 자신의 정체성에 갈등하고 차별에 시달리는 젊은 재일조선인 2세, 재일중국인 2세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소속 기자로 일하던 박수남은 고마쓰가와 사건의 관여 금지 명령을 받아 조직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박수남은 홀로 재일조선인 1세의 역사를 알기 위해 지쿠호 탄광촌과 히로시마, 오사카를 찾아가 취재 기사를 발행했다. 이는 이진우를 재일조선인으로서 인정하지 않고 국가주의 밖으로 배제한 체제와 분단으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을 회복하는 투쟁의 시작이기도 했다.

이처럼 줄곧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온 박수남의 여정은,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많은 동포의 삶을 만나온 박수남이 스스로 존재의 부조리를 물을 때, 그곳에는 똑같이 인생을 역사에 농락당하고 심지어 존재를 말살당한 동포들의 삶이 있었다.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그의 여정은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를 통해 오는 11월 13일 전국 극장에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1985년부터 촬영해 온 16mm 필름 속,
열화되어 가던 10만 피트 분량의 기록들
펜에서, 카메라로 이어지는 박수남의 삶
2024년,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역사를 마주하다!


재일조선인 2세 다큐멘터리스트이자 작가인 박수남과 그의 딸 재일조선인 3세 박마의가 함께 복원하는 오래된 필름 속 무한한 저항과 투쟁의 기록인 다큐멘터리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과거의 책임’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어떠한 일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1964년, 박수남은 재일조선인 1세를 직접 취재하기 시작하였고, 이듬해에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가 사는 빈민촌에 거주하면서 한일 협정 배상 문제로 한일 양국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인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녹음기에 담아 기록하기 시작했다. 차별을 두려워하는 그들의 침묵은 깊었고, 그들이 세상을 떠나는 가운데 말할 수 없는 침묵을 영상으로 표현하기 위해 펜에서 카메라로 방식을 바꾸어 첫 번째 작품 <또 하나의 히로시마 ? 아리랑의 노래>(1986)를 제작했다. 이후 작품에서도 피해자들의 진실과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한 노력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되살아나는 목소리>에서 박수남은 평생 중요하게 생각했던 조선인 원폭 피해자의 실상과 오늘날 과제에 다시 초점을 맞춘다. 일본은 식민지 역사를 1965년 한일 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으며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며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를 기각하였다. 그러나 의료까지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온 한국 거주 원폭 피해자들, 그들의 1990년대 복원 영상과 현재를 이어서 박수남은 박마의와 함께 다시 나가사키 군함도로 향하여 한국의 강제 징용 피해자와 일본 시민들의 재판 투쟁 취재를 나섰다.

이처럼, 일본 정부가 역사에 대한 왜곡을 강행하며 관련 작품마저도 검열하는 상황에서도 “아름답고 용감한 동맹이 되어 투쟁”으로 연결되는 두 감독의 작업은 3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빛을 보지 못한 영상과 음성들을 꺼내어 침묵의 시간을 감내했던 역사 속 피해자의 목소리를 꾸준히 담아냈다.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피해자들의 흔들리지 않는 증언으로 역사의 진실을 증명해 내는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많은 관객의 열렬한 찬사를 받고 있다.

두 여성 다큐멘터리스트를 향한 뜨거운 호응과 찬사
박수남이 묻고 전 세계 영화인들이 답하다!
베를린국제영화제, 프랑스장루슈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국내 전국 극장으로 이어지는 눈부신 여정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임과 동시에 다큐멘터리 대상인 ‘비프메세나상’을 수상한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연이어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주어지는 독불장군상을 수상,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를린국제영화제와 프랑스 장루슈국제영화제 등 유수의 국제영화제들에 초청되어 전 세계적으로 박수남의 다섯 번째 필모그래피를 알리기 시작했다.

박수남의 네 번째 작품 <침묵>(2016)의 일본 개봉 당시에는 우익 단체의 격렬한 항의가 있기도 했으며, 일본 정부는 조선인 강제 노역이 이뤄졌던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고, 위안부 피해와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며 역사 교과서에도 관련 내용을 삭제하는 등 그의 영화와 관련된 일본 내 어려움을 겪었다. 올해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스페셜 부문에서 <되살아나는 목소리>가 상영되었을 당시에는 일본대사관이 영화제에 개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럼에도 베를린에서는 박수남의 동반자, 박마의에 대해 “세심한 보살핌, 사랑, 그리고 유머 감각을 공유하며 파시즘과 군국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 어머니의 중요한 유산을 전하는 세대를 초월하는 과제를 맡는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사랑과 투쟁의 몸짓인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우리에게 필요하고 소중한, 그렇지만 숨겨져 있던 영화 작업과 감독의 눈부신 세계를 펼쳐 보인다”라고 격찬하며 ‘살아있는 유산상’을 안겼다.

디아스포라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 국내는 물론이고 레드로터스아시안영화제, 대만국제여성영화제, 리스본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에서 뜨거운 호응과 찬사를 얻었으며, 무주산골영화제에서는 대상인 ‘뉴비전상’과 ‘관객상’으로 2관왕을 하며, 심사위원인 <너와 나> 조현철 감독과 <D.P>의 한준희 감독, <기생충> 제작자인 곽신애 대표로부터 “휘어지지도 꺾이지도 않는 다큐멘터리로서의 성취를 만들어 낸 작품”이라고 찬사를 받아 많은 이들의 화제를 모았다.

이처럼,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동시대 영화감독과 관객 모두에게 인정받은 많은 이들에게 올해의 전대미문 다큐멘터리로 자리매김하며 11월 13일 전국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나 깊은 울림을 전할 예정이다.

끝나지 않는 여정의 시작,
1958년 차별이 낳은 비극의 ‘고마쓰가와(小松川)’ 사건
재일조선인 2세 이진우와의 만남


1950년대 일본에 거주하던 60여만 명의 재일조선인들은 민족 차별로 인해 제대로 된 취직을 하지 못하고 빈곤에 허덕였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상낙원’으로 선전된 북한으로 가야 한다는 귀국 사업이 시작되려면 1958년, 비극의 ‘고마쓰가와 사건’이 일어났다.

1958년 8월, 도쿄 에도가와구 고마쓰가와 정시제 고등학교의 옥상에서 여자 고등학생이 살해되었다. 범인은 범행 후 경찰이나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자백했고, 체포된 사람은 고마쓰가와 정시제 고등학교에 다니던 1학년, 재일조선인 2세 이진우였다. 당시 사건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체포된 후 그는 미궁에 빠져 있던 또 다른 20대 여성의 살해 사건에 대한 범인이라는 사실을 자백했다.

1940년, 이진우는 식민지 시기 일본으로 건너간 아버지와 청각장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945년, 미군에 의한 도쿄 대공습으로 모든 것을 잃고 해방 후에도 그의 가족은 극빈의 생활에 빠져 있었다. 그는 절망적인 빈곤과 차별 속에서 조선인인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자 ‘가네코 시즈오(金子?宇)’라는 일본 이름을 사용하며 일본인의 탈을 쓰고 살아갔다. 세계문학을 독파할 정도의 독서가이자 우수한 성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했으나,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대기업 채용을 거부당한 그는 장래에 절망하여 자살을 도모하기도 했다.

1959년 재판부는 소년법 적용도, 세세한 정신감정도 없이 이진우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 판결에 대해 작가 오오카 쇼헤이, 요시카와 에이지 등 일본의 지식인들이 그의 구명 탄원을 자처하며 감형 운동에 나섰고 ‘이진우를 돕는 모임’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이진우는 체포된 지 4년 후인 1962년 11월 16일, 이례적인 속도로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나이 22살이었다.

이 사건은 이진우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일본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조선인을 비롯해, 아시아 민족이라는 공동체와 이를 향한 차별이 담긴 사회적인 문제이다. 고마쓰가와 사건은 재일조선인 3세 박마의를 포함해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세와 3세, 그리고 후세들이 오늘날에도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사형수로 선고된 이후 조선인 정체성을 되찾은 이진우의 삶과 죽음은 재일조선인과 일본 사회, 나아가 한반도의 역사적 현실을 우리 눈앞에 보여주고 있다.

1960년대에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에 의해 박수남의 책 『죄와 죽음과 사랑과』를 소재로 만든 영화 <교수형>이 제작되었고,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외치는 소리』 등 고마쓰가와 사건을 바탕으로 많은 예술, 문학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이후 박수남은 1979년 재판기록과 그간 모든 이진우와의 서한을 모아 『이진우전(全) 서한집』을 출간했고 작가 아키야마 슌은 “이 서한집은 그리스 비극과 유사한 현대적 삶의 비극을 한 조각에 새긴 것”이라며 극찬했다. 두 권의 서한집 은 많은 일본 독자의 응원과 지지를 받았고, 이는 현재까지 박수남 감독의 영화 제작과 상영 활동을 뒷받침해 주는 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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