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2022 시네마 시간여행
영화 ‘오마주’는 한국 1세대 여성영화감독의 작품 필름을 복원하게 된 중년 여성감독의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시네마 여행을 그린다. 1962년과 2022년을 잇는 아트판타지버스터로 일상과 환상을 오가는 위트 있고 판타스틱한 여정을 담았다. 신수원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아 프랑스어로 ‘존경, 경의’를 뜻하는 제목처럼 선배 영화인들의 ‘삶과 영화’에 대한 박수와 찬사를 전하고 꿈과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 따뜻한 기운을 선사한다.
신뢰의 연기자인 이정은 배우가 첫 단독 주연을 맡아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의 색다른 연기로, 과거에도 현재에도 삶과 예술을 사랑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보여준다. 이정은 배우의 남편 역으로 나오는 권해효 배우는 실감나는 현실 생활 연기로 감탄을 자아낸다. 최근 ‘라켓소년단’과 ‘무브 투 헤븐’에 이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소년’까지 2022년 기대주로 떠오르는 탕준상 배우가 이들의 아들로 등장해 활력을 불어넣는다. 관록의 이주실 배우와 신수원 감독과 ‘마돈나’, ‘젊은이의 양지’를 함께한 김호정 배우가 특별 출연하여 완성도를 높였다.
도쿄국제영화제, 트라이베카영화제, 호주시드니영화제, 영국글래스고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워싱턴한국영화제 초청과 함께 피렌체한국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신수원 감독의 러브레터
10대 청소년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교육현실과 경쟁사회를 꼬집은 ‘명왕성’, 성차별이 만연한 부도덕한 한국사회를 비판한 ‘마돈나’. 타인의 욕망으로 삶이 파괴된 사람들을 위로한 ‘유리정원’, 어른들의 세계에 뛰어든 이 시대 청춘들을 어루만진 ‘젊은이의 양지’. 신수원 감독은 그간 가장 현실적인 소재로 확고한 주제의식과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하고 뚜렷한 개성을 갖춘 여성 캐릭터들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한국의 대표 여성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받아 대한민국 여성감독 최초로 칸영화제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모두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장편영화 데뷔작 ‘레인보우’로 도쿄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상을 수상한 뒤, 단편영화 ‘순환선’으로 칸영화제 카날플뤼스상을 수상했다. ‘명왕성’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수정곰상, 피렌체한국영화제 심사위원상, 시네마디지털서울 무비꼴라쥬상 등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 및 수상의 쾌거를 이뤘다. 영화 ‘마돈나’로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을 받으며 세계가 인정한 감독으로서 그 위상을 공고히 했다.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유리정원’은 판타스포르토국제영화제 국제판타지 각본상을 수상했다.
신수원 감독은 박남옥, 홍은원 감독과 같은, 여성영화인이 불모지였던 시절에 활동했던 한국영화의 1세대 여성감독을 작품 소재로 꿈을 향해 도전해왔던 용감한 선배 여성영화인들에 대해 영화로서 오마주하고 러브레터를 보낸다. 영화의 기획 의도에 대해 “홍은원 감독님과 관계된 분들을 만나다가 기개가 대단하고 특유의 정신력을 가진 진짜 여장부 같은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같은 분을 만난 적이 있다”는 일화를 들었다.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일기를 다시 들춰보니 그분이 내게 ‘감독으로 계속 살아남으라’는 말을 해주셨다. 우리가 모르는 여성감독들이 존재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그렇게 모험적으로 살아온 분들의 기운을 ‘오마주’에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신수원 감독의 말처럼 ‘오마주’는 비단 여성영화인뿐만 아니라 영화인과 예술인, 그리고 세상의 모든 꿈꾸는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의 러브레터가 될 것이다.
이정은 배우의 첫 번째 도전
‘오마주’는 이정은 배우의 첫 단독 주연작이다. 이정은 배우가 연기한 주인공 지완은 신수원 감독 자신의 자전적인 정서가 반영된 인물이기에 신수원 감독은 특히 캐스팅에 애착을 가졌다. 신수원 감독은 이정은 배우가 ‘미성년’에서 부둣가를 휘젓고 다니던 모습과 ‘기생충’에서 빗 속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고 모든 것을 내던지고 연기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오마주’ 같은 이야기에 중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이끌어갈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해 캐스팅을 원했다.
이정은 배우는 ‘오마주’의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자기 일에 몰두하고 싶은 중년 여성으로서 공감하고 또 매력을 느껴 출연을 결심했다. 연극 연출을 했던 경험을 녹여 인물의 세세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오마주’는 일상의 자잘한 디테일들이 살아 있고 소소한 삶의 감각들을 말하는 영화라 개인적인 취향과도 닿아 있다”며 “특별한 사건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가야 해서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고 밝혔다. 이정은 배우는 ‘오마주’를 통해 “그들이 걸어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분들도 나도 마찬가지고, 내 삶에 빗대자면 아버지도 생각났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에 전쟁을 겪고 살아오신 아버지와 정치적 부분에서 갈등도 많았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부분에선 충돌하고. 하지만 그런 아버지에게 어느 날 우울증이 찾아오자 내가 막걸리를 사드리며 그랬다. ‘열심히 잘 사셨다’고”. 이어 “영화든 연극이든 예술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매일 열심히 투쟁하지만 과정에 대한 찬사는 없고 오로지 결과물만 있는 일이라 가끔 안타깝다. ‘오마주’는 과정에 대한, 서로를 향한 박수가 아닐까”라고 전한다.
‘여판사’ X ‘레인보우’ X ’오마주’
영화감독 지완은 거듭되는 투자 실패에 갱년기까지 맞아 슬럼프에 빠져 있다 아르바이트로 홍은원 감독의 영화를 복원하다 기묘한 모험을 하게 되면서 결국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위로하는 힘을 얻는다.
중년의 여성감독이 '여판사'를 복원하는 액자식 구성과 시간여행이 흥미를 자아내는 ‘오마주’는 한국영화 역사상 두 번째 여성감독인 홍은원에 관한 이야기이며 한국의 모든 여성 영화감독에 관한 이야기이다. 신수원 감독은 자전적인 이야기에 데뷔작 ‘레인보우’의 감각과 감수성을 되살리고 코미디와 판타지적인 느낌을 더했다. 신수원 감독은 2011년 MBC 창사 50주년 특별기획 다큐 '타임'에서 카메라를 든 여자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꿈을 좇는 여자들의 삶을 따라가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성의 삶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여자만세'를 촬영했다. 당시 홍은원 감독의 딸, 홍은원 감독의 친구이자 한국 최초의 여성영화인이며 최초의 여성 편집기사인 김영희 기사와 인터뷰했던 경험을 시나리오에 녹였다. 신수원 감독은 “’여자만세’는 2011년 ‘레인보우’를 찍은 뒤 만들었다. 당시 ‘내가 두 번째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홍은원 감독님의 사라진 필름, 따님과의 만남, 남겨진 문서 등을 확인하다 발견한 게 홍은원 감독님이 세 번째 영화 이후에 영화를 찍지 못하셨다는 것이었다. 박남옥 감독님도 첫 번째 영화 촬영 후 출판사에 취직하신 걸로 알고 있다. 여성감독들의 단절에 은근히 두려움이 생기더라”라고 설명했다. 신수원 감독은 2010년 데뷔 이후 극영화, 다큐멘터리, 단편을 포함해 2년 정도 간격으로 꾸준히 작업을 지속해왔다. ‘젊은이의 양지’를 끝낼 무렵 피로감을 느꼈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새 작업에서 데뷔작을 돌아보면서 그때의 감각, 감수성을 되살려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마주’는 자신의 지난 영화들과 달리 코미디와 판타지 기운을 가미했다. “홍은원 감독이 3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프린트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실제 '여판사' 편집을 한 김영희 기사도 한국영화 100편을 편집했지만 외롭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여성영화인들이 찬란했던 시절과 영화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이어 “언젠가 그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다가 '젊은이의 양지' 후반기에 심적으로 지쳤을 때 문득 '오마주' 아이템이 생각나 시나리오가 편하게 써졌고 특히 '여판사' 필름이 발견된 게 힘이 됐다”고 밝혔다. “고인이 되신 홍은원 감독을 ‘오마주’ 속 세상에 다시 드러내는 것이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큐멘터리 취재 차 홍은원 감독의 자취를 밟은 신수원 감독은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는 “1960년대 활동 했던 여성감독의 방, 책상 앞에 앉았던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날의 경험은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를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됐다”라고 덧붙였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거장 홍은원 감독
한국영화 두 번째 여성감독인 홍은원은 1940년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건너가 신경음악단 성악부에 입단해 솔로 싱어에서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활약했고 해방 후 서울의 중앙방송국(현 KBS) 합창단 멤버로 활동했다. 1946년 최인규 감독의 권유로 ‘죄없는 죄인’의 연출부로 합류하여 스크립터 일을 시작하고, 1959년 신경균 감독의 ‘유정무정’의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여 최초의 여성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다. 1962년 당시 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여판사의 자살을 소재로 한 ‘여판사’의 연출을 맡아 “탄탄한 짜임새와 세심한 여성심리의 묘사가 돋보인다”는 호평을 받았다.
신수원 감독은 ’여판사’가 1960년대 작품임에도 굉장히 세련된 작품이라고 평한다. 특히 홍은원 감독의 첫 장편임에도 인물 동선, 대화 장면 등이 다른 한국 거장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투자만 제대로 받았더라면 김기영, 이만희 감독 못지 않은 여성 거장이 60년대에 탄생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홍은원 감독이 인물을 다루는 데 있어 권선징악이 없고 전형적인 악인도 없는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했다. 다른 영화들에 비해 훨씬 섬세해 한 인물이 나쁘게 그려진다 해도 그와 반대되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는 접근법이 뭉클함이라는 감성으로 관객에게 다가오는 것이 바로 연출의 힘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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