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곡의 대표작으로 스토리텔링한 음유시인 정태춘의 40년 음악인생 풍부한 아카이빙과 생생한 공연실황 담은 웰메이드 음악 다큐멘터리 시대의 사유와 세대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뜨거운 울림의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서정성과 사회성을 모두 아우르는 음악으로 한국적 포크의 전설이 된 정태춘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음악 다큐멘터리다.
1978년 ‘시인의 마을’, ‘촛불’로 데뷔한 정태춘은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시적인 노랫말과 서정적인 음율로 ‘MBC 10대 가수상 신인상’을 받는 등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촉망받는 싱어송라이터였다. 하지만 이후 표현의 자유를 위해 가요 사전심의 철폐운동에 앞장서며 불의에 저항하는 등, 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길목마다 시대정신이 깃든 노래들로 시대와 호흡했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28곡의 대표작과 함께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정태춘의 음악과 삶을 보여주며 기성세대에는 반가움, 청년세대에는 신선함을 선사한다. 한국적 포크부터 랩이 어우러진 역동적인 락 넘버까지 시대별 대표곡들과 세대별 팬들의 특별한 사연을 통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정태춘 음악의 현재성을 목도할 수 있다. 또한 정태춘의 음악적 동지이자 인생의 동반자 박은옥의 보이지 않는 기여도 놓치지 않았다. 박은옥은 섬세한 보컬리스트로서 정태춘의 음악을 시작부터 도약, 성장 그리고 완성까지 함께하며 시대를 건너온 벗이다. 이들의 아름다운 동행이 빚어내는 하모니는 깊은 감동을 안긴다.
연출을 맡은 고영재 감독은 1995년부터 영화를 공부하던 중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엮는 남다른 재주를 깨닫고 제작자의 꿈을 키운 내추럴 본 독립영화인이다. 영화 제작을 위해서는 모든 분야를 꿰뚫어야 한다는 판단으로 뒤늦게 영화를 전공해 편집과 사운드 믹싱, 녹음 등을 익혔다. 2007년 ‘공동체상영’이라는 배급방식을 접목해 극장 개봉한 <우리 학교>를 통해 그해 최고의 독립영화 흥행기록을 세우며 제작자 및 프로듀서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2009년 개봉한 <워낭소리> 역시 제작과 프로듀싱으로 참여해 293만 명의 관객을 동원, 독립영화 최대 흥행작으로 등극하며 탁월한 감각과 제작역량을 입증했다. 이어 12만 관객을 동원한 <똥파리>(2009)의 마케팅 투자, 연이어 <혜화,동>(2011)의 투자를 결정하며 투자자로서의 면모 또한 입증한 바 있다. 최근까지도 <보드랍게>(2022) 등을 배급하는 등 그간 30여 편의 독립예술영화를 제작/투자/배급해왔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고영재 감독의 20여년 간 축적된 제작, 프로듀싱 역량을 총동원하는 연출 데뷔작이며, 길 위의 자유인으로 만난 뮤지션 정태춘에 대한 뜨거운 헌사의 작품이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정태춘과 박은옥의 데뷔 당시부터 주요 방송 보도, 가요 사전심의 철폐운동, 소극장 공연 투어 ‘얘기노래마당’ 등 미공개 아카이브 영상을 풍부하게 활용해 시대의 질감을 오롯이 전한다. 정태춘과 박은옥의 데뷔 40주년 기념해 28곳에서 열린 전국 투어 콘서트 실황을 4K로 촬영해 음악적 밀도와 영화적 완성도가 더해져 웰메이드 음악 다큐멘터리로서 관객들을 만난다.
시대의 음유시인 정태춘의 뜨거운 귀환을 알리는 웰메이드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5월 18일 극장에서 관객들의 환대와 함께 돌아온다.
우리말과 문화의 맛과 멋을 살린 토속적인 노랫말과 서정적인 음율 한국적 포크를 완성의 경지로 끌어올린 음악적 성취 스스로 장르가 된 뮤지션 정태춘의 음악을 밀도 높게 만나다
정태춘의 대표작 28곡으로 그의 음악인생을 스토리텔링한 웰메이드 음악 다큐멘터리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40년간 구축된 정태춘의 음악세계를 폭 넓고 깊게 만날 수 있다. 서정성과 토속성으로 대표되는 특성으로 한국적 포크음악을 완성의 경지로 끌어올린 디스코그래피와 독보적 음색의 보컬리스트 박은옥과의 음악적 하모니가 입체적으로 담겨 있어 음악 팬들과 영화 팬들 모두에게 필람영화로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정태춘은 1집 [시인의 마을](1978)에서 보여준 한국적인 서정성과 토속성을 통해 예술성과 상업성을 모두 입증하며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스타덤에 오른다. [시인의 마을]은 특히 문학적 서정성이 돋보이는 곡과 한국적 토속성이 짙은 곡, 혹은 두 요소가 공존하는 노래들이 마치 앨범의 표제처럼 마을을 이루듯 조화롭게 포진되었다. 1집의 대성공 이후 정태춘은 자신만의 음악적 행보를 위해 불교적 정서를 한껏 녹여낸 2집 [사랑과 인생과 영원의 시](1980)와 국악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접목한 3집 [새벽길](1982)을 연이어 발표한다. 이 앨범들은 비록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더욱 깊어진 토속성과 서정성을 통해 한국적 포크 뮤지션으로서 보다 확실히 자리매김하는 바탕이 된다. 정태춘과 박은옥 부부의 이름으로 함께 발표한 4집 [떠나가는 배](1984)는 다시금 상업적인 성공과 함께 작가주의적인 언더그라운드 포크 뮤지션의 위상을 확고히 하게 한 앨범이다. 5집 [북한강에서](1985)에서도 우리나라 고유의 지역을 모티프로 삼는 것과 해금 등 전통악기를 혼합하는 방식으로 더 넓고 깊어진 음악세계를 선보였다.
정태춘과 박은옥이 독립 음반 레이블 ‘삶의 문화’를 설립하고 독자적으로 발표한 첫 앨범인 6집 [무진 새노래](1988)는 ‘새노래’라는 단어처럼 그들의 음악이 기존에 갖고 있던 서정성과 함께 의미의 측면에서는 사회참여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본격적으로 선언한 앨범이다. 이는 수록곡 ‘얘기2’의 ‘주변의 모든 것에 눈 뜨던 시절, 진실을 알고자 난 헤매였네’라는 구절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가요 검열을 피해 비합법 음반으로 발표했던 7집 [아, 대한민국…](1990)은 사회의 불의에 저항한 시대정신이 뜨겁게 담겨 있는 작품이다. 특히, 앨범 제목은 국가 예찬적 성격이 담긴 가수 정수라의 메가 히트곡 ‘아! 대한민국’의 제목을 탄식조의 뉘앙스로 비튼 것으로 한국 사회의 모순을 신랄하게 고발하는 성격이 드러난다. 8집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1집 [시인의 마을], 7집 [아, 대한민국…]과 함께 대한민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된 바 있다. 이후 정태춘과 박은옥은 2012년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와 2019년 데뷔 40주년 기념앨범 [사람들 2019]를 발표하기까지 언제나 세상의 소외된 주변부를 향하는 음악적 시선을 작품 속에 담았다. 이렇듯 짙은 사회참여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음악은 정태춘의 산문성과 섬세한 보컬리스트 박은옥의 운문성이 조화를 이루며 한국 대중 음악사에 자신들만의 위치, 장르라고 불릴만한 독자적인 성취를 이뤘다.
한국적 포크를 완성의 경지로 끌어올리고, 시대정신을 오롯하게 실천하며 스스로 장르가 된 뮤지션 정태춘의 음악을 밀도 높게 만날 수 있는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5월 18일 스크린 위에 그 정수를 펼쳐낸다.
1978년 데뷔부터 지금까지 생생하게 전해지는 시대의 공기 밀도 높은 다큐멘터리를 완성한 다채로운 아카이브 자료 정태춘이 치열하게 통과했던 시대와 음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다
우리 시대의 음유시인 정태춘의 뜨거운 귀환을 알리는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정태춘과 박은옥의 1978년 데뷔부터 남아있는 방대한 아카이브 자료를 활용해 당대의 공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MBC 10대 가수상 시상식, 부부가 함께 출연한 토크쇼, TV토론 등 방송 영상자료부터 가요 사전심의 철폐운동을 비롯한 수많은 사회참여적 활동의 현장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들까지 영화적 밀도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고영재 감독은 작품 제작을 준비하면서 사진자료, 공연자료, 글자료, 영상자료(VHS, DVCAM), 음성자료(카세트테이프) 등 정태춘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모으고 분류하는 데만 6개월가량의 시간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정태춘의 꼼꼼한 성격 덕분에 기초 아카이브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고, 특히 영화 속에 삽입된 TV출연 장면 중에서는 실제 방송국도 보관하지 않은 희귀 자료도 포함되어 있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부족한 자료는 각 방송국 모니터링실을 지속적으로 방문하면서 탐색했고, 자료를 갖고 있을 만한 주변 지인들을 통해 영상, 사진자료를 계속 업데이트했을 만큼 아카이빙 자체가 작품의 가장 탄탄한 토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정태춘박은옥 40주년 프로젝트가 시작될 무렵에는 SNS를 통해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하는 등 숨은 자료들까지 세상에 끄집어 내며 그야말로 아카이빙의 완성도를 높였다. 앨범의 경우 정태춘과 박은옥도 자신들의 전체 앨범을 소장하고 있지 않아서, 소장자들을 따로 찾아 촬영하기도 했다.
정태춘과 박은옥의 전국 순회 소극장 콘서트 '얘기노래마당' 실황은 오직 사운드만 카세트테이프로 보관 중이었던 터라, 일일이 모든 자료를 카세트 플레이어를 통해 듣는 데만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하지만 그 지난한 과정을 통해 녹음된 '한밤중의 한시간'을 발굴했고, 영화 본편에 사진자료와 함께 삽입할 수 있었다. 1970년대와 80년대 우리나라의 방송 제작 환경에서는 아카이브의 개념이 분명하지 않을뿐더러 방송 테이프의 높은 가격이 부담스러워 한 번 사용하고 보관하기보다 그 위에 다른 영상을 덮어씌워 재녹화하는 방식으로 제작비를 절감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당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밀도 높게 완성되기에는 제약 조건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비록 외국 뮤지션의 음악영화에 비해서는 영상자료가 다소 부족하지만 정태춘의 꼼꼼함, 제작진의 아카이빙과 분석에 들인 노력, 주변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협력 덕분에 방송 및 공연 영상과 사진자료 등이 풍부하게 구축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정태춘이 치열하게 통과한 각 시대의 주요 사건들을 아카이브 자료와 노래를 통해 전하며 음악과 시대를 연결해낸다.
정태춘의 40년 음악인생을 방대한 아카이빙을 통해 밀도 있게 구축한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5월 18일 관객들을 시대의 공기 속으로 초대한다.
데뷔 후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싱어송라이터 정태춘 표현의 자유를 위해 저항하고 행동하며 문화의 변화를 이끈 삶 영원한 동지이자 영혼의 동반자 박은옥의 아름다운 동행이 빚어낸 하모니
시대와 자유를 노래한 음유시인 정태춘의 40년 음악인생의 집대성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정태춘의 데뷔 당시부터 정태춘, 박은옥의 데뷔 40주년 기념 프로젝트 전국 투어 콘서트를 진행한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과 삶을 총망라했다. ‘시인의 마을’, ‘촛불’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대중가수가 80년대 청계피복노조 후원을 시작으로 전교조합법화 지지 공연, ‘가요 사전검열 철폐운동’ 등 어떻게 시대를 호흡하며, 시대의 거리에 나섰는지 그 여정을 만날 수 있다. 또한 그의 시대정신이 깃든 음악의 여정을 함께한 영원한 동반자 박은옥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오롯이 담아 감동을 안긴다.
중학교 현악반에서 바이올린을 배우며 음악을 접하고, 이후 기타로 곡을 만들기 시작한 정태춘은 1978년 1집 [시인의 마을]로 데뷔해, 1979년 MBC 10대 가수상 신인상과 TBC 방송가요대상 작사부문상(‘촛불’)을 수상한 걸출한 신인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가수가 되겠다는 포부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데뷔와 동시에 거머쥔 상업적 성공을 이어가는 커리어에는 일체 관심이 없었다. 오직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고, 세상은 군사정권이 통제하는 엄혹한 시대였기에 그의 촉수는 시대의 불의로 향했다. 사회 전반에 걸친 통제는 문화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싱어송라이터 정태춘은 예정된 탄탄대로 대신 데뷔 앨범부터 문제의식을 갖게 된 표현의 자유를 위해 투쟁의 길을 선택한다. 실제로 정태춘의 데뷔곡 ‘시인의 마을’은 무려 2-30군데의 수정 지시가 있었으며, 사실상 본래의 가사와 전혀 다른 가사로 음반을 낼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검열에 대항하기 위해 정태춘은 80년대에 전국 순회 소극장 공연 ‘얘기노래마당’을 진행했으며 90년대에 들어서는 정부와 선명한 대립각을 세우며 용감히 투쟁했다. 1990년 7집 [아, 대한민국….]의 발표 과정에서 정태춘과 박은옥은 공개 기자회견을 통해 검열 거부 선언하고, 비합법 음반으로서 유통·판매를 택했다. 이후 1993년에 역시 비합법 음반으로 발표한 8집 [92년 장마, 종로에서]로 인해 정태춘은 법률 위반으로 정부로부터 고소를 당한다. 군부독재의 서슬 퍼런 검열에 맞선 정태춘의 지속적인 투쟁으로 인해 여론은 무르익었다. 그리고 마침내 1995년 가요 사전심의제를 완전 폐지하는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 1996년 개정된 법률안이 시행되었다. 같은 해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과 함께 가요 사전심의 제도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창작자들은 자유를 찾았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정태춘의 음악적 여정과 투쟁에 대한 영원한 동반자 박은옥의 기여를 놓치지 않았다. 상업적 성공을 거부하고 독보적인 음악과 공연문화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생긴 생계의 어려움을 함께 이겨냈고, 표현의 자유를 얻기 위한 정태춘의 외로운 투쟁에도 늘 곁에 있었다. 정태춘과 박은옥이 서로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대목, 콘서트에서 함께 부르는 노래 등 이들이 빚어내는 음악 안팎의 하모니는 깊은 감동을 안긴다.
정태춘의 음악적 여정과 자유를 위한 투쟁, 그리고 박은옥과의 아름다운 동행을 담은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5월 18일 스크린에서 그 뜨거운 여정을 관객과 함께할 예정이다.
환란의 20세기에 타협하지 않고 온몸으로 맞섰던 음악적 정신 투쟁의 현장에서 언제나 함께 자리했던 길 위의 뮤지션 시대를 노래하며 민중과 함께했던 탁월한 사회운동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시대의 불의에 저항한 길 위의 뮤지션 정태춘의 음악인생을 담은 <아치의 노래, 정태춘>에는 환란의 시대에 형형하게 빛났던 정태춘의 이념, 나아가 신념을 만날 수 있다. 정태춘의 뜨거웠던 길 위의 투쟁은 이제 멈췄지만 영화를 통해 전해지는 그의 생애 속 시대정신은 지금도 모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정태춘은 청계피복노조에서 비밀리에 열렸던 일일찻집에 참여해 초청공연을 하는 과정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노동운동 진영에 지원 공연을 다니게 된다. 이렇게 사회운동에 눈을 뜬 과정을 정태춘은 영화 속 인터뷰에서 ‘나한테 준비되어 있었던 길’로 표현했다. 87년 6월의 역사적인 시민혁명 이후 열리게 된 많은 대형집회에서 대중적인 스타가수 정태춘은 스스럼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길 위에서 정태춘은 상업적 성공을 안겨준 익숙한 노래가 아닌 민요연구회에서 만든 미발매 민중가요를 노래하며 현장의 투쟁에 함께했다. 낯선 사람과 낯선 환경을 마주하는 것을 편히 여기지 못하는 성정에도 불구하고 정태춘은 ‘가봐야지’라는 한 마디와 함께 투쟁에 참여하는 일을 의미 있는 일로 여기고 가야하는 길로 갈등 없이 뛰어들었다.
그렇게 정태춘은 청계피복노조 일일찻집,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합법화 투쟁, 고문 및 정치폭력 희생자를 위한 모금공연,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 등 시대별 사건별로 힘 없는 민중들과 노래로 함께하는 목소리가 되어주었다. 특히 가요 사전심의 철폐운동을 함께했던 노무현 변호사가 대통령이 되고, 천정배 변호사가 법무부장관이 된 참여정권에서의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은 정태춘에게 있어 서정의 근원이었던 고향 마을에 대한 뜨거운 헌신이자, 수백여 명의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한 실천적 행동이었다. 정태춘은 누구보다 뜨겁게 길 위에서 시대의 불의에 저항했지만 혁명의 시대는 저물고 한국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도래한 현실을 한탄했다. 정태춘은 크게 절망하고 노래 대신 시나 붓글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의 이념은 과거에 비해 무뎌지기보다 오히려 더 예리하다. 영화의 말미에서 정태춘이 밝힌, 지금의 그가 꿈꾸는 미래사회는 문명이 고도화된 산업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과거의 원시공동체다. 인간이 발명한 ‘금융’이라는 발명품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잔인하게 약자를 짓밟고, 잉여 생산물로 인한 과잉 소비가 초래한 빈부격차와 환경오염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미래를 거부하고 문명화되지 않는 사람들의 세계를 여행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은 ‘이 시대의 이상주의자’들에게 새로운 상상력에 대한 영감을 자극한다.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정태춘의 사회운동가적 면모까지 오롯하게 담아낸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5월 18일 극장에서 그의 여전히 형형한 이념과 뜨거운 신념을 목도할 수 있다.
세대별 팬들의 다양한 사연으로 소환되는 정태춘의 노래 모두의 마음 속에서 여전히 생생하게 불리고 이어가고 있는 현재성 기성세대에는 반가움, 청년세대에는 신선함을 선사하다
시대의 사유와 세대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전 세대를 위로하는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에는 정태춘의 노래로 마음이 이어진 세대별 다양한 팬들의 사연이 담겨 있어 보다 풍부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정태춘의 음악이 기성세대에게는 반가움, 청년세대에게는 신선함을 선사하며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이어온 특유의 현재성을 내밀하게 포착한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에 청년세대를 대표하는 팬으로 등장하는 청소년 인권 활동가 이수경 씨는 2016년 겨울, 촛불을 들고 민의에 반하는 권력에 뜨겁게 맞섰던 광화문 광장에서 정태춘의 음악을 처음 만났다. 정태춘이 당시 집회 현장에서 부른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듣고,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라는 가사가 故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노래라고 추측했을 정도로 정태춘을 전혀 모르는 세대였지만, 이후 그의 더 많은 노래를 찾아 들으며 팬이 되었다고 밝힌다. 정태춘을 “계속 사유하고 싶은 것 같다”는 말 또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활동을 이어온 그의 삶의 방향성은 물론 정태춘이라는 세계가 갖는 현재성을 느끼게 해준다.
2019년에 열린 국제수영연맹(FINA)주관 전 세계 수영인들의 축제 ‘광주 세계마스터즈 대회’에 유나미 선수는 정태춘의 노래 ‘5·18’과 함께 참가했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한국 아티스틱 수영의 전설로 남은 전 국가대표 유나미 선수는 우연히 노래 ‘5·18’을 듣고서 광주에서 열리는 대회 참가를 결심했다. 보통 대회의 참가를 먼저 결정한 후 곡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곡 ‘5·18’ 때문에 대회의 참여를 결심하게 될 정도로 노래가 전하는 강렬한 울림을 느꼈던 것. 유나미 선수는 광주에서 5·18의 상처를 치유의 예술로 승화해서 해당 대회 아티스틱 솔로 프리 부문 금메달을 수상했다.
루게릭병(근위축성측색경화증)을 앓고 있는 50대 김미현 씨는 정태춘의 오랜 팬으로서 영화 속에서 팬들의 마음을 대표한다. 10대 때 ‘봉숭아’를 들으면서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을 떠올리고, 20대 때는 ‘북한강에서’를 들으며 가슴 쿵 하는 떨림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50대가 되어 그의 음악과 목소리가 더 깊이 와닿게 된 그는 정태춘과 박은옥의 40주년 전국 투어 콘서트 중 춘천에서 열린 콘서트에 관객으로 참석한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원주에서 춘천까지 콘서트를 보러 왔고, 정태춘은 오랜 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봄’이라는 붓글을 선물하며 팬의 다시 올 봄날을 기원했다. 올해 2022년 초, 제작진은 영화 개봉에 앞서 김미현 씨 한 사람을 위한 특별한 시사회를 열어 뜻깊은 마음을 이었다는 후문이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5월 18일 개봉해, 정태춘을 기억하는 팬들의 반가운 마음과 정태춘의 음악에서 여전히 유효한 현재성을 목도하고 청년세대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줄 예정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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