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춤(2000, Le Roi danse)
배급사 :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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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에 관해... 바로크 음악을 재현한 철저한 고증!
[왕의 춤]에서 음악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한번도 들어보지도, 연주된 적도 없었던 미발표작을 다수 삽입함으로써 영화를 통해 새로운 음악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영화 사운드트랙의 특징은 오페라 뿐만 아니라 발레음악 까지 륄리의 작품을 샅샅이 뒤져냈다는 점이다. 그가 작곡한 음악은 한번도 출판된 적이 없으며 당시에 손으로 쓴 수사본으로만 남아있기 때문에 이를 해독해서 악보에 옮긴 후 연주해야만 했다. 이 같은 리서치 작업이 끝나자 연주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지휘자인 라인하르트 괴벨과 고음악(古音樂) 악기를 사용하는 원전연주 전문가들에게 연주를 맡겨 최대한 원작에 충실하되 음악 자체의 힘과 생동감은 살려내야 했다. 오랫동안 고음악을 연주해 온 음악가만이 그 음악에 생명력과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륄리가 진정한 작곡가로 데뷔하게 된 것은 “밤의 발레”였다. 이 작품은 당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음악으로 영화에서는 15살의 루이 14세가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하는 왕의 춤을 추는 대목에서 들을 수 있다. 이 곡 또한 미공개작으로 17세기 이후 처음으로 이 영화에서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작품은 “쾌락의 발레 Ballet des Plaisirs”, “발레 드 크세르크세스 Ballet de Xerxès”, “발레 달시디안느 Ballet d’Alcidiane” 등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발레에서 발췌한 장면들이며 대부분 1655년에서 1660년 사이에 작곡된 것들이다. 이 작품들은 왕의 이미지에 따라 점점 더 웅장해져가는 발레와 작곡가의 발전상을 엿보게 한다. 여기서 가장 놀라운 점은 국왕이라는 인물이 발전, 변모해가는 모습을 음악이 그대로 흉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것은 희극작가 몰리에르와 음악가 륄리가 함께 만들어낸 코미디 발레로 “부르주아 귀족”에서 구경할 수 있다. 이 영화 속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음악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하고 친숙했던 아리아, “스페인의 광기 Folies d’Espagne” 이다. 당시의 작곡가들은 이 선율을 바탕으로 변주곡을 작곡했고 무한대로 변형시켜 나갔다. 륄리도 이 대열에서 빠지지 않았으며 그의 변주곡은 특히 힘에 넘치는 것이다. 영화 내내 반복해서 들리는 “스페인의 광기”가 영화의 엔딩까지 장식한다.
[왕의 춤]에서 엿볼 수 있는 륄리, 몰리에르의 작품
_ [테 데움/ Te Deum] 1687년 륄리를 죽음으로 몰고 간 그의 마지막 작품. 뛰어난 무용수이자, 왕실 악단의 지휘자였던 륄리는 이 작품 공연 중 발을 다쳐 부상을 입음.
_ [밤의 발레 / Ballet de la Nuit] 1653년 바로크주의의 백미. 17세기를 통틀어 가장 놀라운 스펙타클이라 불리워지는 작품 중 하나. 발레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으며 당시 15세였던 루이 14세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시도된 작품. 루이 14세는 이 작품에서 놀라운 의상을 입고 6가지나 되는 배역을 소화해냈으며 그중에는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상징적인 역할도 있었다. 밤의 발레는 처음 륄리가 참여한 작품으로 루이 14세의의 눈에 들어 왕실 작곡가로 임명 되었다. _ [강제결혼 / Mariage Force] 1664년 루이 14세의 권유로 몰리에르와 륄리가 서로 협력해서 만든 작품. 연극과 안무, 음악과 연극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코미디 발레 _ [타르튀프 / Tartuff] 1664년 몰리에르의 대표작. 당시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귀족과 성직자들을 풍자한 작품. 특히, 출세와 권력의 발판을 삼기 위해 엄격한 신앙심과 도덕성에 결탁한 위선적인 성직자들을 신랄하게 비판. 루이의 지원하에 만들어졌지만 성직자와 귀족, 섭정모후 안느의 압력에 의해 공연이 금지되고 륄리와 몰리에르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_ [훌륭한 연인들 / Les Amants Magnifiqnes] 1670년 왕이 아폴로 역으로 춤을 춘 것은 확실하나 갑자기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른 무용수에게 춤을 추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론 그의 춤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최고의 기량을 가진 직업 무용수들이 왕립 발레단을 통해 배출 되면서 루이는 무용가로서의 한계를 느낀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극 중에서 루이는 온 몸에 황금칠을 하고 태양왕으로서의 위엄을 드러냈다.
_ [부르주아 귀족 / Bourgeois Gentilhomme] 1670년 (국내에서는 ‘서민귀족’으로 알려져 있음)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터어키 사자의 오만을 풍자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쥬르댕 부인을 중심으로 새로이 발흥하는 서민층, 부르주아의 계급적 특성을 드러내고 귀족을 풍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간의 정념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당시 프랑스 궁정의 금욕주의를 비웃고 있다. 음악과 무용이 섞인 코믹한 희극으로 극중에서 륄리는 자신의 음악이 몰리에르의 희극에서 시종처럼 다루어지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한다.
_ [상상병 환자 / Le Malade Imaginaire] 1673년 몰리에르의 마지막 작품. 이 작품의 공연 후 몰리에르는 극중 인물처럼 죽음을 맞는다.
_ [카드뮈스와 에르미온/ Cadmus et Hermioue] 1673년 프랑스 오페라의 시초이자, 륄리의 오페라 처녀작. 아리아를 중심으로 이태리 오페라와는 달리 안무와 스펙타클이 강조된 프랑스식 오페라를 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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