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단 하나의 다큐멘터리
인류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 모두는 사랑을 갈구하고 찾아 헤맨다. 때문에 ‘사랑’이라는 주제는 수많은 예술작품과 영화에서 다루어져 온 가장 보편적인 이야깃거리가 되어왔다. 이성에 갓 눈을 뜬 아이부터 혈기왕성한 청년, 권태로운 일상과 사랑에 조금은 지쳐버린 주부, 마음 한 켠으로 불어드는 공허한 바람을 어찌하지 못하는 중년의 남자, 그리고 세월의 힘을 넘어서 노년의 사랑을 이어가는 노인들까지… 우리 모두가 매일 겪고 있으며 삶의 마지막 날까지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존재 ‘사랑’이기에, 한 편으론 진부하게 느껴지면서도 늘 새롭고도 특별한 이야기들을 가득 탄생시키는 주제인 것이다.
2010년 9월, 이런 ‘사랑’을 농밀하고도 신선하게 그려낸 특별한 다큐멘터리 한 편이 찾아왔다. 미국에서 유명 코미디언이자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샬린 이(Charlyne Yi)와 배우 마이클 세라(Michael Cera) 주연의 “페이퍼 하트”는 진실한 사랑을 찾기 위해 전미를 횡단하는 샬린의 아름다운 여정을 담아내고 있다. 사랑을 믿지도 않고 할 수도 없을거라 생각하는 샬린을 위해 다큐멘터리 촬영팀이 꾸려지고, LA에서 뉴욕까지 수많은 도시를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를 만나본다.
이 영화는 크게 두 개의 줄기로 나뉜다. 첫번째는 샬린의 러브스토리이다. 사랑에 관해 비관적인 샬린은 다큐멘터리 촬영을 시작하고, 그 와중에 참석한 한 파티에서 영화배우 마이클 세라를 만난다. 예상치 못하게 마이클은 샬린에게 관심을 보이며 둘은 데이트를 시작하고,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는 중이었기에 이 둘의 데이트 또한 오롯이 카메라에 담기게 된다. 처음에는 촬영에 동의한 샬린과 마이클 커플이지만, 사적인 시간에까지 함께 하며 둘의 사이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촬영팀이 점점 부담스러워진다. 두 사람의 사랑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사랑에 대한 샬린의 생각은 바뀔 수 있을까?
또 샬린과 마이클 커플은 이 영화의 음악도 직접 담당하였는데, 영화 속 울려 퍼지는 그들의 음악에는 사랑에 대한 이 커플의 애절함과 아름다움이 묻어 나온다. 두 커플의 사랑이 진실하기에 영화 속의 음악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두번째는 다양한 사람들의 리얼 인터뷰이다. “페이퍼 하트”는 미국 전역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과 커플들이 들려주는 사랑에 관한 리얼 스토리들을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 완벽한 사랑을 이어나가는 커플도 있고, 오랫동안 부부로 살았지만 결국 진실한 사랑을 찾지 못한 사람도 있다.
내쉬빌에 사는 이혼남 마이크 모드랙은 43세에 젊은 여자와 결혼했지만, 이혼했다. 그는 말한다. “난 평생을 보고 결혼서약을 했는데, 그녀에겐 아니었던 게죠.” 그는 자신의 사랑에 대해 돌이켜 보았던 한 에피소드를 얘기한다. 곰사냥을 하러 알래스카에 갔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는데, 그때 눈앞에 펼쳐진 물속은 파랗고 평온했다. 이제 죽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에, 눈앞에 당시의 부인인 새라의 모습이 보였다. 마이크는 자신에게 진실한 사랑은 20년 전에 만난 다른 여자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죽음을 눈 앞에 둔 순간 보인 것은 부인이었던 것을 보면 아마도 그에게 인생에 한번뿐이었던 진실한 사랑은 부인인 새라였던 것 같다고 말한다.
아마릴로에서 만난 판사 돈 에머슨과 변호사 샐리 에머슨 부부의 이야기는, 만남부터 흥미진진하다. 같은 법원에서 근무하던 샐리에게 관심이 있었던 돈은 그녀의 상사에게 데이트를 주선해 달라고 부탁하고, 샐리의 상사는 돈과의 데이트에 나가지 않으면 그녀를 해고하겠다고 장난반 협박을 했다. 그렇게 둘은 강제로! 첫 데이트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샐리가 돈을 인생의 동반자로 깨닫게 된 것 역시 바로 그날 밤이었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첫 데이트의 밤, 샐리는 큰 맘 먹고 새로 구입한 구찌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차는 몇 블록이나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었고, 새 신발이 젖는 것을 두려워하는 샐리를 본 돈은 자신의 지프를 끌고 와서 계단 위에까지 차를 올려놓는다. 덕분에 샐리는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그녀의 차까지 갈 수 있었고, 이렇게 자신을 배려해주는 사람이라면 평생 사랑하며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커플은 현재 법원에서 이혼을 조정하며 살고 있는데, 이혼하러 오는 커플들을 보면서 자신들을 되돌아 보게 되고 상대방의 단점을 눈감아주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아침에 입냄새 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인터뷰이들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는 깜찍한 인형극을 통해 재현된다. 재현을 통해서 보여지는 사람들의 일화들은 이 다큐멘터리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기존의 인터뷰 중심이었던 다큐멘터리적인 딱딱한 화면을 생동감 있고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영화는 전문적인 직업의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사랑에 대한 감정에 객관적으로 접근해 보기도 한다. 공대 교수 생물학 교수를 만나서 사랑에 대해 과학적으로 분석한 의견도 들어보고, 라스베가스에서 결혼식을 진행해주는 목사나 예식장 주인에게서는 결혼식을 진행하면서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어본다. 로맨스 소설가로부터는 관객들에게 사랑이야기가 어떻게 어필하는지에 대하여, 심령술사를 만나서는 샬린의 사랑에 대한 점을 쳐보기도 한다.
또한 영화에서는 샬린의 오랜 친구들이 나와 그녀의 애정관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 이들 또한 헐리우드에서 유명한 배우들로서 영화에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샬린에게 “너의 사랑의 잔은 반이나 차있어. 네가 아티스트라는 것은 그만큼 네가 열정적이라는 뜻이야”라고 말하는 세스 로건은 <퍼니피플>, <사고친후에>등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고, <쿵푸팬더>, <슈렉3>, <호튼> 등 수많은 애니메이션에서 목소리를 담당하였다.
샬린에게 “너는 사랑 받아야 할 아이야”라고 조언하는 디미트리 마틴은 <테이킹 우드스탁>에서 주연인 ‘엘리엇 타이버’역으로 그 연기력을 인정받고 헐리우드에서 촉망받는 배우이다.
50%의 다큐멘터리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제작된 하이브리드 다큐멘터리이다. 극중에 나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는 실제 전미를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인터뷰한 것이지만, 샬린과 마이클 세라의 만남은 사실 시나리오에서 계획된 것이었고 마이클 세라 또한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사전에 캐스팅 된 것이다.
또 극중 감독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감독 본인이 아니라, 배우 제이크 존슨이 감독 역할을 연기한 것이다. 감독인 닉 자세노벡은 자신이 카메라 앞에 서면 어색해 보여서 오히려 영화의 흐름을 망칠 수 있을 것이라 걱정했고, 이 영화가 “진짜”처럼 보여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작진은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야 관객들이 더욱 내용에 몰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기획자인 샬린이 직접 연기를 해야 더욱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들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시나리오를 썼고, 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적인 부분과 극영화적인 부분을 나누어 촬영을 시작했다. 촬영 또한 최대한 리얼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실제로는 HD로 촬영하였지만 슈퍼16미리의 느낌이 나도록 했으며 대부분 핸드헬드 촬영을 하여 사실감을 더했다.
“페이퍼 하트”는 2009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수상을 하였는데, 수상부문이 ‘각본상’ 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 하다. 영화는 이렇게 다큐멘터리적인 사실과 극적인 시나리오를 절묘하게 조합하여 보는 재미를 한층 더하고 있으며, 단순히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벗어나 진실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다큐멘터리+극영화라는 새로운 형태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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