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가슴 뭉클한 감동
이별의 아픔을 간직한 스튜어디스 ‘미리’와 머나먼 타국에서 엄마와 생이별을 하게 된 ‘누들’의 아주 특별한 만남을 다룬 <누들>은 2007년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며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영화는 이별의 아픔을 겪은 두 주인공들이 언어를 초월한 교감을 나누며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과정을 때로는 유머러스 하게 때로는 긴장감 있게 다루는 최고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누들의 갑작스런 출연으로 미리는 물론 미리의 가족들과 친구들 사이에도 변화의 바람이 인다. 서로 티격태격하는 미리와 그녀의 언니 길라. 이혼의 고비를 겪고 있는 체육교사인 길라는 미리가 남편을 더 믿고 따르고 남편도 미리에게 더 살갑게 대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지만 작은 이방인 누들을 위해 미리와 함께 힘을 합친다. 소원했던 길라의 남편 이지, 그녀의 딸, 미리의 친구들 모두 까만 눈동자에, 프로급 젓가락질 실력을 발휘하며 누들을 후루룩 후루룩 해치우는 귀여운 ‘누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나선다. 냉기류가 흘렀던 그들의 관계는 어느새 따스한 누들처럼 온기류가 흐르고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심은 그들을 끈끈한 공동체로 엮어준다.
이처럼 <누들>은 다양한 인간 소통과 그 안에 흐르는 따스한 사랑과 신뢰, 인간 본연의 감성을 스크린에 옮겨놓는데 성공한다. <누들>을 보고 난 후 입가에는 미소를, 가슴에는 뜨거운 감동을 안고 극장을 나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중국여행 – 커뮤니케이션 부재를 통해 체험한 소외감
아일레트 메나헤미 감독은 30살이 되던 해 아시아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중국으로, 네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녀는 샹하이부터 실크로드까지 수백km에 이르는 길을 기차로, 버스로, 때로는 도보로 여행을 이어갔다. 이제껏 살아온 곳과는 너무나 다른 공간과 환경, 이색적인 문화, 그리고 다른 외모의 사람들… 발 딛는 곳마다 놀라움으로 가득 찬 여정에서 그녀는 가슴 깊은 곳에서 하나의 감정이 샘솟는 걸을 느꼈다. 그것은 바로 ‘소외감’이었다. 중국을 여행하는 동안 중국인들이 하는 말들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 쌓인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는 그녀로 하여금 잊을 수 없는 소외감을 느끼게 했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소외감은 내게 잊을 수 없는, 대단한 기억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 아일레트 메나헤미
어느 날 걸려온 한통의 전화 - ‘에티’와의 만남
다큐멘터리 <Doing Time, Doing Vipassana>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아일레트 메나헤미 감독에게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의 이름은 ‘에티’였으며 며칠 전 TV 토크쇼에 출연해 ‘비파사나 명상법’과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바꿨는지 이야기하는 감독을 보고 꼭 통화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전화했다고 상기된 목소리로 고백했다. 비파사나 명상법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일레트 감독과 에티는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됐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아일레트 감독은 에티의 놀라운 인생 이야기를 접하게 됐다. 그녀는 항공사 승무원이자 전쟁으로 남편을 둘씩이나 잃은 비운의 미망인이었다. 그녀를 짓누르는 이별의 아픔, 그녀의 인생에 드리워진 정의하기 힘든 어떤 것을 아일레트 감독은 감지했다. 삶 전체가 숨바꼭질을 하는 듯한, 명백하다기 보다 은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깊은 슬픔이 에티에게 짙게 깔려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낙천주의자였다. 특유의 감수성으로 슬기롭게 아픔을 달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태도는 아일레트 감독에게 큰 울림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비파사나 명상법에 대해 더 알고 싶어했으며 우리는 그런 상담 단계를 넘어 친구가 됐다. 얼마 후 그녀의 삶에 대해 알게 된 나는 큰 감명을 받았다.” - 아일레트 메나헤미
이스라엘을 들썩이게 한 외국인 노동자 문제, 그리고 명상 여행
2000년대 초반 이스라엘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수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마침내 불거져 나오게 되면서 극렬한 공방이 일었다. 당시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이 불법 체류자들이었고 2002년 이민국이 설립된 이후 당선된 아리엘 샤론 수상은 불법 체류자들을 모두 강제 추방할 것을 선포했다. TV, 신문 등 각종 언론매체들은 연일 이 사건을 다뤘고 이스라엘은 우울한 이야기로 가득 찼다. 평소에 시사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아일레트 메나헤미 감독도 이 사건만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녀는 외국인 노동자 보조 기구 단체의 수장이자 외국인 노동자들의 실태와 부당한 처우를 고발해 온 ‘시갈 레존’을 만났고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 중 그의 어머니가 강제 출국 명령을 받아 아들을 남겨놓고 고국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일레트 메나헤미 감독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시 몇 년 후 아일레트 감독은 한달 동안의 명상여행을 떠났다. 여행 도중 그녀의 머리 속에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캐릭터, 대사, 제목, 줄거리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녀가 겪고 들었던 인생의 풍부한 경험과 잠재의식 속에 숨어있던 원숙한 감명이 어우러진 스토리가 마치 하나의 덩어리처럼 불쑥 솟아올랐다. 그것이 바로 <누들>이었다. 여행 말미에 이르러 가상 캐스팅부터 테마송, 포스터까지 완벽한 구상을 마친 아일레트 감독은 이스라엘로 돌아와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제작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기나긴 시간 동안 아일레트 감독 안에 축적되었던 다양한 경험과 기억들이 집약된 <누들>은 이스라엘에 이어 마침내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인 어린이와 이스라엘 승무원의 아주 특별한 만남은 언어를 초월한 따뜻한 교감과 인간 본연의 정서를 자극하며 평단으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심사위원 대상 수상으로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누들>의 가치를 세계에 알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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