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북한 체제의 모든 것, 매스게임
북한의 매스게임은 지구상 존재하는 가장 현란한 스펙타클 중 하나이다. 북한정부와 온 국민이 발벗고 나서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심각한 식량난 속에서도 이런 대규모의 인원을 동원한 매스게임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거대한 볼거리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매스게임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산물이며 집단의 필요가 개인의 욕구에 언제나 우선한다는 북한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완벽히 재현하는 사례다. “집단 체조에 참가하는 인민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과 뛰어난 실력을 겸비해야 한다.” 라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힌 바와 같이 1948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창설 이래 북한은 전 인민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사상체계를 구축해 왔는데 그 속에서 탄생한 집단체조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한 번에 수 천명에서 수 만명이 동원되는 집단체조와 전체 약 200만명 까지도 참여하는 퍼레이드는 한 사람의 작은 실수라도 전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이들은 그룹에 헌신하게 되며 이런 과정을 거쳐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매스게임의 각 단위들은 동일한 목적 아래 훈련에 임하면서 집단의식을 고취하고 지도자에 대한 경의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즉 북한 사람들에게 있어 집단체조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인생을 얼마나 충만하게 살아가느냐와 맥락이 닿는다.
행동을 통제하면 메시지를 통제하게 된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라고 볼 때 북한은 메시지를 통제해야 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구 소련과 동유럽이 무너지고 소련의 원조가 끊긴 쿠바가 큰 혼란에 빠진 뒤에도 모두의 예측을 뒤로 하고 북한만은 철저한 통제를 고수하며 살아남았다. 북한을 버티게 하는 것은 공장도 식량도 경제도 아닌 매스게임 같은 대규모 쇼와 군대이다. 인터넷도 라디오도 방송도 차단되어 북한 밖의 세상은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이들은 스스로가 관중이고 타겟인 거대 쇼를 오늘도 준비하고 있다.
북한 사람들이 꿈꾸는 ‘당신들의 천국” : 어떤 검열이나 제재 없이 북한 사람 스스로 그들의 나라에 대해 발언한 최초의 영화
북한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영화 <어떤 나라>는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사름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도 어떤 식으로든 특별한 공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편견과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나라인 북한에 대해 어떤 판단의 잣대도 들이대지 않은 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대신 북한 정부의 어떤 제재나 검열 없이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북한은 이제까지 보던 자료화면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생생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인터뷰들은 북한에 대해 가해졌던 증명되지 않은 편견에 대해 새로운 균형을 찾게 해주는 미덕이 있다.
학교 수업과 각 가정에 흐르는 선전방송, 그리고 단 하나밖에 없는 국영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심어지는 반미정서는 영화 속 인터뷰에도 쉼 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정서가 서방세계의 막대한 권력에 대항하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이었음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또한 강압에 못 이겨 북한을 찬양하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가족들은 조국이 자신들에게 허락한 만큼만 보고 듣고 먹고 입으며 이 꿈 많은 소녀들은 가슴 깊이 공화국을 사랑하고 지지하며 그들의 지도자를 가슴 떨리게 경애한다. 북한을 제외한 모든 나라의 아이들이 이상형과 우상을 하나씩 가져 들뜬 마음을 가질 법한 한창의 사춘기에 현순이와 송연이는 그들의 지도자를 아이돌로 삼는다. 대회에 나가기 직전 지도자를 생각해 마음이 설레어 잠도 잘 못 잔다는 고백을 듣노라면 단지 이질감이나 놀라움을 지나 마음 한 구석이 찡해져 옴을 지울 수 없다.
한편 송연이의 엄마는 북한 주민 최초로 외국의 카메라 앞에서 ‘굶주린 3월’로 명명되었던 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불어 닥친 식량 부족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이런 어려웠던 상황에 대해서도 이들은 숨기려는 기색이 추호도 없다. 딸의 생일에 강냉이 죽을 쑤어서 생일인 아이만 한 그릇을 주고 나머지는 반 그릇씩 먹었다는 고백을 하면서도 그는 부끄러워 하거나 당을 의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고난의 시기를 ‘고난의 행군’으로 받아들이며 제국주의의 경제 봉쇄에 더욱 증오를 키우며 안으로 더욱 결속력을 다지고자 했기 때문이다. 물론 평양에 사는 이 가족들은 상당히 선택된 계층에 속하기 때문에 더 좋은 혜택을 받고 당성도 훌륭하겠지만 그런 배고픔의 시기를 겪으면서도 흔들릴 간지조차 없는 그들의 닫힌 정서와 현실이 더 막막한 무게로 다가옴은 어쩔 수가 없다.
가족들은 평화롭고 아이들은 정말로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전 세계 사회주의가 모두 무너진 지금, 이 이상한 행복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꿈꾸는 그들만의 유토피아는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그 어디서도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또 다른 북한 “.... 여기가 정말 북한 맞습네까? ”
▪ 북한에 밥 남기는 일이 어디 있어? 왜 없어!!
학교에서 배울 때 북한의 이상적인 생활이 이밥(쌀밥)에 고깃국 먹는 생활이라고 배우고 그 수많은 탈북자들, 식량난에 대해 누누이 들어온 것에 비추어 볼 때 북한에서 밥을 남긴 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따라서 송연이가 엄마의 재촉에 부스스 일어나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밥을 남기고 학교에 가려다가 엄마의 꾸중을 듣는 장면은 너무 자연스런 우리의 일상인 반면 북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는 놀랄만한 장면이다. 물론 선택 받은 이들이 사는 평양의 중산층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이를 북한 전체의 상황으로 확대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한편으론 우리가 그 동안 알아왔던 북한의 모습 또한 북한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라 할 수 있다.
▪ 북한에도 땡땡이가 있다?
국가 전체가 군대나 다름없는 나라, 규율에 조금이라도 어긋났다가는 혹독한 자아비판을 받거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북한에서는 아이들도 언제나 엄격한 규율 속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낼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하지만 북한에서도 바른 생활 소녀로 유명한 현순이에게도 땡땡이의 즐거움이 있었다. 고된 연습이 지겨워 엄마에게는 체조 연습하러 간다 하고 종일 다른 데서 놀다가 들어가는 전형적인 땡땡이를 감행하는 평양소녀의 고백과 늦잠을 자 아침 조회시간에 살금살금 눈치를 보며 들어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끝 줄에 서는 능청스런 모습을 보니 북한이 한결 친근해 보이는 건 왜일까? 학생시절 땡땡이 한 번 쳐보지 않는 사람은 남한이건 북한이건 없는 것 같아 왠지 모를 동질감에 웃음이 비어져 나오는 장면이다.
▪ 노래방 반주에 맞춰 아빠와 딸이 한 곡조 뽑습니다~!
5호 담당제로 서로서로의 집을 감시하고 가족간에도 함부로 말을 못한다고 생각한 북한의 가정에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휴일 대동강변 잔디밭에서 송연이 언니들은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고 막내 송연이는 춤을 춘다. 한가로운 저녁, 현순이는 아빠와 다정히 어깨동무를 하고 거실 노래방 기계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물론 “우리 당이 제일이고 사회주의 제일이요~” 라는 낯선 노랫말이 대부분이지만 역시 노래 좋아하는 민족성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마찬가지 인가보다.
▪ 미국 놈들 미워서 학교에서도 영어를 배우지 않는다?
밥을 먹다 갑자기 전기가 나가도 “웬수같은 미국놈들 때문에…”, 심각한 식량난으로 배급이 절반으로 줄어도 “미국 놈들이 얼른 다 죽어야지..”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는 북한 사람들은 그렇다면 미국인들이 사용하는 영어도 배우지 않지 않을까?
하지만 북한 교실에는 랩(lap)실까지 갖춘 영어 수업시간이 버젓이 존재한다. 내내 영어로만 진행되는 수업 시간은 오히려 남한보다 더 강도 높은 영어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선생님께 지목 당한 두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발음, 억양 무시하고 교과서 대화를 줄줄 외우는 모습은 우리 어릴 적 교실의 모습과 닮아서 정겹고 웃기지만 또 한편 교실 뒤쪽 칠판에 쓰인 “외국어는 생존을 위한 무기(Foreign Language is Weapon for the Life and Struggle)”라는 문구는 묘한 여운을 남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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