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만큼 강력한 공포는 없다."
영화 [스터 오브 에코]는 리차드 매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데이비드 코엡 감독은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순간 바로 영화화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바로 각색작업에 들어갔다.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이미 35년 전에 판권을 사놓은 상태였지만 각색하여 영화화하는 작업은 아티잔에서 이루어졌다.
영화 [스터 오브 에코]가 주는 괴기스러움은 일련의 공포 영화들이 조장하는 피묻은 비명이 아니다. 너무도 평범한 등장인물이 최면의 단계를 거치며 거침없이 밀려드는 정신적인 불안감을 맛보게 된다. 그래서 [스터 오브 에코]는 끊임없이 관객들을 불안정하게 괴롭힌다. 따라서 관객들이 맛보게 되는 것은 물리적인 공포가 아니라 심리적인 공포이다. 보는 순간 다가오는 심리적인 충격이 서서히 약효를 발휘하며 지속적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그 공포를 떠올리게 하는 것. 그러한 지속적인 '연상'작용을 감독은 [스터 오브 에코]의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일부러 지나치게 괴기스런 장면은 편집과정에서 과감히 삭제해버렸다. 그것은 단순한 눈속임이 아니라 평범한 등장인물들의 불안함과 공포를 본, 마찬가지로 평범한 관객들이 집에 돌아가서도 마치 당신에게도 이런 공포가 닥쳐올 것을 예고라도 하듯이... [스터 오브 에코]의 공포는 보다 집요하고 끈질기다.
최면술 : 당신이 공포에 눈뜰 때...
최면은 주로 정신과 치료 방법의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최면은 의식의 저항을 줄이고 무의식의 힘을 활성화함으로써 환자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불안 원인을 빠르고 쉽게 찾게 한다. 영화 [스터 오브 에코]의 주인공인 톰 위츠키는 처제인 리사에게 장난 삼아 최면을 요구한다. 그리고 마침내 의식 저편에 닫혀있던 초자연적인 세계의 문을 열게 된다. 감독과 극 중 리사역을 맡은 일리나 더글라스는 영화를 위해 실제 최면을 경험하기로 했다.일반적으로 TV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우스꽝스러운 최면이 아닌 정확하고 사실적인 최면에 관한 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시카고에 있는 한 최면술사는 극중에서 최면을 거는 장면이 - 감독이 이미 각색작업을 하면서 생각해낸 아이디어 - 매우 고전적인 최면 수법중 하나라는 사실과 전체 인구의 8%만이 최면에 잘 걸릴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영화 [스터 오브 에코]의 중요한 주제 -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는 초자연적인 실체가 사실 우리의 의식 저면에서 숨쉬고 있다 - 를 깨닫게 된 관객들은 자연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세계의 경험이 최면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은 한 번쯤 최면에 걸리고픈 유혹과 호기심을 가진 대다수 사람들에게 공포의 전이를 더욱 활성화시킨다.
유령 만들기 : 서서히 움직이는 영혼의 그림자
영화 [스터 오브 에코]는 물리적인 공포가 아닌 심리적인 공포를 핵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코엡 감독은 피로 범벅된 유령이 아닌 뇌리에 사무치는 유령을 원했다. 특수 분장으로 꾸며진 시각적 충격요법보다는 유령인 것처럼 보일 듯 말 듯한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졌고, 감독은 초당 여섯 프레임이라는 느린 촬영 기법으로 유령이 등장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이런 촬영 방법은 자칫 어색한 움직임으로 역효과가 날 수 있었기 때문에 감독은 실제로 발레를 전공한 배우를 캐스팅하여 일반인들이 움직이는 것보다 4배나 느린 연기를 요구했다. 사실 관객들은 그녀의 이런 움직임을 의식적으로 느끼진 못한다. 그러나 뭔가 불안정한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괴이한 분위기는 시각적인 충격이상의 것을 전해준다. 이것이 바로 감독이 원하는 불안함과 초조함이며 그러한 이유로 실제로 더 괴기한 장면을 과감히 삭제했다. 영화 [스터 오브 에코]의 주제는 평범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잠겨진 공포다. 억눌린 공포가 새어나오려 할 때, 인간은 무의식에서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이는 실체는 불분명하지만 정신을 괴롭히기에 충분한 것이다. 사방에 피를 바르고 무섭게 덤벼드는 식의 전형적인 유령과 동떨어진 [스터 오브 에코]의 유령은 그래서 더욱 절실히 관객들에게 말초적 공포를 자극한다.
시카고 : 유령의 도시
미국 중부에 위치한 '시카고'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가족 단위의 공동체를 구성하며 사는 곳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이 일상적이고 평온한 도시. 그러나 사실 시카고는 유령관광으로도 유명한 거대한 '유령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스터 오브 에코]의 등장인물들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휩싸일 만한 요소가 충분히 있는 곳이다.
시카고는 사실 유령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수도 없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오멘(1978)], [캔디맨(1992)] 등의 무거운 내용의 공포 영화가 시카고를 배경으로 했고, 로만 폴란스키의 고전 공포물 [로즈마리의 아기(1968)]의 원전도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다. 항상 초자연적인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곳. 언제 어디서 그 에너지가 분출되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침투할 수 있는 불안한 도시. [스터 오브 에코]를 관통하는 심리적 불안감을 가장 설득력있게 조성해 주는 곳이 아닐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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