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체코 뉴웨이브’의 주도적인 인물 중의 한 사람인 베라 히틸로바(1929~ )는 체코 여성 감독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 이어지는 작업을 통해서 독창적인 표현과 열정적인 창작욕을 보여주고 있는 감독이다. 지루한 평범함이나 일상적인 안온함을 거부하는 그녀의 영화 세계는 당대 현실에 대한 양식화된 이미지들 그리고 매우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도발적인 형식들을 통해서 항상 혁신적이면서도 논쟁적인 면모를 유지해왔다. 또한 체코에서 최초로 그리고 지금까지 유일하게 페미니즘을 공공연하게 내세운 감독이기도 한 히틸로바는 여성성과 젠더 관계를 둘러싼 날카로우면서도 풍자적인 통찰들을 전반적으로 상상력이 풍부하고 정치색이 짙은 영화들에 담아낸다. 그러나 페미니즘이라는 주제에 대한 그녀의 시각은 본질론의 함정에 빠지거나 선언적인 주장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남녀 각자가 보여주는 태도나 관계성을 더 커다란 사회적 맥락이나 좀 더 복잡한 심리적 지형도 속에 위치 짓고 또 묘사해나간다. 따라서 히틸로바의 영화들은 때로는 남성들의 무책임함과 자기중심성을 조롱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여성들의 무력감과 변덕스러움을 꼬집기도 한다. 반면에 그녀는 <무언가 다른 것>의 목표지향적인 체조선수나 <사랑 게임>의 해방적인 간호사 그리고 과감한 복수를 수행하는 <올가미>의 여자 수의사처럼, 정력적이고 단호하며 적극적인 여성들이 보여주는 카리스마를 즐겨 다루며 또한 그녀들이 발전적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애정을 갖고 지켜본다. 히틸로바는 타인을 탐욕스럽게 지배하고자 하거나 자신을 무책임하게 파괴하는 여성들을 탐구하기도 하는데, 이는 물론 한편으로는 여성성이 지닌 사악한 측면을 나타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과 여성 간에 존재하는 영원한 반목을 해결하는 과정이자 여성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는 과정의 결과물로 제시된다. 그래서 때로는 <데이지>의 경우처럼, 무감각하게 도발과 위반을 일삼는 두 여주인공의 모습이 그 파괴적이고 유희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에 비례해서 오히려 미묘한 매력을 발휘하는 아이러니를 낳기도 한다. 이번 베라 히틸로바 감독특별전은 히틸로바의 FAMU(프라하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인 <천장>과 히틸로바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 준 <데이지> 그리고 비교적 최근 작품인 <올가미>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대표작 다섯 편과, 히틸로바의 영화 세계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베라 히틸로바의 초상>을 상영한다.
- 주유신 프로그래머 *출처: 서울 여성 영화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