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라 만사이는 교겐계의 대부 노무라 만사쿠(野村万作, 70)을 아버지로 두고 6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전통예술의 계승자로서 장래가 기대되었던 인물. 1994년 NHK대하드라마 <화의 란(花の亂)>으로 중요한 조연을 연기한 그는 3년 후 <아구리(あぐり)>를 통해 스타로 발돋움한다. 당시 그의 연기를 보고 일본의 20대 여성들 사이에서는 교겐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영화로 그 활동 영역을 넓혀 처음으로 <음양사>에서 주연을 맡았다. 그는 영화의 성격 상 와이어 액션에 도전 했는데 공중 회전이나 뒤로 넘기 등의 아크로바틱한 연기를 통해 평소 갈고 닦은 신체를 최대한 이용한다.
그는 세 살 때 첫 무대에 섰다. 대대로 이러져 내려온 교겐계 명문가의 자손으로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사사를 받는다. 온 몸에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훈련 과정은 어린 그에게는 고역이었다. 그의 훈련과정은 마치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했던 것과 같았다. 사춘기 때에는 당연히 그런 일방적인 가르침에 반발했다. 당시 그는 농구에 심취했고 록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자리로 돌아 왔다. 세계적인 예술 평론가들로부터 절찬을 받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업을 옆에서 지켜 보며 교겐 역시 가치 있는 예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부터 아버지의 엄격하고 혹독한 훈련 역시 그에게는 소중한 것이 되었다. 세계 최고로부터 받는 교정이었기 때문이다.
교겐사(狂言師)로서 일생을 살겠다고 결심한 그는 정력적으로 일에 몰두한다. 새로운 도전정신으로 그는 무대를 일반 극장과 콘서트홀로 옮겼다. 전광판을 소도구로 이용하는 새로운 연출법을 도입하기도 하고, TV드라마와 셰익스피어 연극의 요소를 끌어들이기도 했다. 당연히 전통 교겐계로부터 ‘이단아’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정작 그는 교겐의 기본을 지키려고 누구보다 애를 썼다. 다만 관객들의 상상력을 촉발시키기 위한 도전이었던 것이다.
그 자신 또한 마흔이 고비라는 교겐계에서 노익장을 발휘하는 그의 아버지처럼 70대까지의 활동을 염두에 두고 있다. 수많은 방황과 일탈을 경험하고 에둘러 온 그에게 있어서 교겐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도전과도 같은 것이다.
- 수상경력 - 1999년 제54회 예술제 신인상/1999년 제7회 요미우리연극대상 남우주연상2001년 제44회 블루리본상 주연남우상/2002년 문화청예술선장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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