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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의 절망의 날개짓.... 검은 땅의 소녀와
ldk209 2009-04-23 오후 3:11:21 1120   [0]
 

한 소녀의 절망의 날개짓.... ★★★☆


탄광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내용을 떠나 대체로 화면이 흑백톤인 경우가 많다. 아오이 유우 주연의 <훌라 걸스>의 오프닝 장면을 보면 마치 흑백 사진을 그냥 늘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보고 있는 건 분명 총천연색 컬러 화면이다. 흑백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탄광촌의 현실(리얼)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과 관련해 오래 전 보았던 한 탄광마을 초등학생의 그림 - 강물을 검게 그린 - 은 여전히 시각적, 정서적으로 강렬하게 남아 있다.


대략 10여 년 전, 석탄 산업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탄광 지역의 개발과 관련한 논의가 한창 진행되다가 카지노가 대안의 하나로 떠오르자, 다른 대안은 수면 밑으로 가라 앉아 버린 일이 있었다. 여당, 야당, 지역 시민단체를 불문하고 오로지 카지노만이 지역을 살릴 수 있는 유일 대안이라며 모두들 한 목소리로 ‘카지노! 카지노!’를 외쳐댔더랬다. 카지노를 반대하는 것은 마치 지역 개발을 반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거의 죽일 놈 취급을 당하곤 했었다. 아무튼 정선 등 탄광지역에 카지노가 들어섰다. 당연히 카지노라는 거대 산업이 들어선 만큼 변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러한 변화가 과연 발전과 동일한 의미인가? 카지노 외의 대안이 가져왔을 또 다른 기회를 몽땅 저버리고서라도 카지노가 지역과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는가? 아니 기여한다고 하더라도 개발이 꼭 누군가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가는 방향으로 되어야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60~70년대 독일의 라인강 기적을 이끌었던 루트 공업 지대에 위치한 탄광마을 겔젠키르헨은 석탄 산업이 사양화되면서 도시의 규모가 계속 축소되어가자 거대한 생태형 주거 단지로 탈바꿈을 시도하였고, 세계가 주목하는 환경, 생태, 문화 단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곳은 세계적인 대체 에너지 모델 도시가 되어 독일의 어느 곳보다 좋은 환경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곳이 되었다. 왜 독일은 되는 데 한국은 안 되는 것일까?


난 <검은 땅의 소녀와>가 과거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지금 서울에 사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라. 누가 지금도 사북에서 석탄을 캐며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있다고 해도 그건 외국 노동자들의 몫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미 카지노가 거대한 부를 빨아들이고 있는 현실의 대한민국 강원도 한 탄광마을의 이야기다. 영화를 보면서 일단 이들을 잊고 살아 왔다는 것 자체가 미안했다.


거울에 비친 한 소녀의 모습으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소녀 영림(유연미)은 꿈을 꾸는 중이다. 그런데 꿈에서조차 행복한 삶은 아니다. 아버지 해곤(조영진)은 진폐증에 걸려 회사에서 보상금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난다. 의사는 추궁하듯 말한다. “합병증이 아니면 입원할 수 없다는 거 아시죠?” 그러니깐 합병증에 걸려야 입원하고 보상금도 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진폐증에 걸린 환자를 회사는 거리로 내친다. 알아서 죽으라는 얘기인가. 해곤에게는 9살 영림말고도 열 세 살인 첫째아들 정신지체아 동구(박현우)가 있다. 집은 곧 철거될 것이다. 철거 보조금으로 보험도 들어있지 않은 트럭을 몰고 장사를 하다 사고를 낸 해곤은 절망 속에 술로 연명한다.


여러 계기에 의해 아이는 빨리 성장한다. 그런데 그런 계기들은 좋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가난, 전쟁, 고통, 외로움 등등등. 가난으로 인해 빨리 성장한 영림은 9살 소녀답지 않게 집안을 꾸리고 오빠를 돌본다. 그런 어린 소녀의 가녀린 어깨 위에 한 가정의 미래가 책임 지워진다. 가족의 미래를 위해 과연 영림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해 과연 우리는 도덕적인 책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영화의 초반부 유령 같은 표정의 광부들이 탄을 캐고, 갱도에서 올라와 걷는다. 싸이렌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실려 간다. 그리고 남은 동료들은 술집에 모여 ‘광부 아리랑’을 구슬프게 부른다. 이게 바로 현실이라는 듯 담담하게 거리를 유지하고 카메라는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자기 역할을 다했다는 듯 무표정하다. 처음 영화의 제목을 보고는 이 영화가 한 소녀의 눈에 비친 풍경을 그린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철저하게 타자의 눈으로 지켜본다. 영화 속 타자는 술집 창문을 통해 동료를 들여다보는 광부일 수도 있고, 거리와 버스에서 어린 남매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인(강수연)일 수도 있지만, 공간을 조금 더 확장하면 바로 그 타자는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 바로 내 자신이 된다. 나는 끝내 가족을 위해 뭔가 결심을 하고 선택에 옮긴 소녀의 눈망울을 바라본다. 그 소녀는 정류장에서 흔들림 없이 정물화 속 풍경처럼 선채 타자인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 소녀에게 답을 해야 한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가.


이와 관련해 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동구가 철탑에 올라가 종을 치는 장면이다. 종소리가 들리자마자 영림은 동구라고 직감하고 아버지와 함께 그 곳으로 간다. 여러 차례 종을 울려대지만 가족 외에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고, 찾아오지도 않는다. 혹시 우리도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려대고 있는데 애써 귀를 닫고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도 정선에서 그리고 용산에서, 그리고 또 다른 많은 곳에서 종소리는 계속 울린다.

 

※ 소녀의 아빠, 해곤 역을 맡은 조영진. 어디선가 눈에 많이 익었다. 아, 바로 <밀양>에서 소년을 납치해 살해한 그 범인. 그리고 <우생순>의 핸드볼 감독. 그런데 <검은 땅의 소녀와>가 제일 먼저 출연한 작품이다.

 


(총 1명 참여)
zoophi
저도 보고싶네요   
2010-02-02 21:30
prettyaid
잘읽었어요^^   
2009-06-23 11:09
powerkwd
기회되면 볼께용~   
2009-05-2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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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땅의 소녀와(2007, With a Girl of Black Soil)
제작사 : (주)동녘필름 / 배급사 : 스폰지
공식홈페이지 : http://cafe.naver.com/spongehouse.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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