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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 추억 속의 잊혀진 사랑을 찾아 떠나는 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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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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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나도 어느새 영화 속의 소루처럼 한 20년 쯤 지난 어느 날로 훌쩍 밀려와 버린 느낌이 듭니다.
20년 쯤 지난 시간의 어느 길목에서 싱그런 5월처럼 푸르던 어린 시절 사랑의 조각을 하나씩 주워나가는 소루와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심동은 애니메이션 '추억은 방울방울'처럼... 끊임없는 과거의 회상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떠난 여행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접하게 된 어린 내 모습이 아니라...
이제는 이미 중년이 되어버린 너무나 커버린 내가, 아직은 너무 작고 여린 소녀였던 시절의 그 가슴 저미게 애틋하던 사랑의 모습을 한 편의 영화에 담고자 다시 한 번 천천히 되짚어 가는 과정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등장인물은 영화 '연애소설'에서처럼... 너무나 친한 두 여고 동창 소루와 첸니가 나오고 그리고 어느날 그들 사이에 끼어든 한 남자 호군이 있습니다.
연애소설과는 조금 다르 사랑의 구도를 가지고 있지만, 심동에서도 이 세사람의 얽힌 사랑의 모습과 갈등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영화 심동은 여성 감독이 직접 각본과 감독을 맡은 탓인지 20년의 시간의 흐르면서 변하는 사랑의 모습을 담백하고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10대의 가슴 두근거리는 설레임과 숨 막힐 듯한 격정,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느낌
미래라던지, 경제력이라든지, 능력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재고 따지지 않아도 될 만큼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랑에 충실한 그 어린 시절의 모습들.
그리고 부모님의 반대와 현실적 상황으로 헤어지지만, 너무 사랑해서... 헤어지면 견디지 못할 거라 생각되던 그런 시간들도,
하루가 가고 한달이 가고 일년이 가고... 그렇게 시간 지나가면 또 그렇게 잊고 무덤덤히 살아갈 수 있다고. 때때로 그리워지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소루나 호군의 모습을 통해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대의 재회... 20대의 소루와 호군의 사랑은 10대와는 조금 더 다릅니다. 10대처럼 그저 가슴 터질 것 같은 열정이나 설레임은 아니더라도 늘 함께 있었던 것 같은 익숨함, 친근함, 그 편안함에 그만 가슴을 묻고 싶게 만드는 사랑. 그리고 사랑의 표현에도 10대 때 보다는 좀 더 대담할 수 있는, 조금은 더 서로가 서로에게 자유로운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20대에는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모든 것을 접고 와락 안겨버리기에는 역시 만만치 않은 현실을 체감하게 되는 그런 시기라는 것을 '장애가' 감독은 소루를 통해 나타내고 있습니다.
소루는 아직도 호군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그냥 호군을 따라가기에는 자신은 이미 10대의 소루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지만 속박하지 않는 사랑, 얽매이지 않는 사랑 소루는 호군의 반지를 받음으로서 그의 마음도 받아들이지만, 그의 청혼은 거절합니다.
어쩌면 소루는 그렇게 애틋하고 가슴 저민 사랑을 현실이라는 벽 속에서 무너트리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오래도록 친구라는 이름의 간격을 두고 지켜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주 아주 오랫동안 말입니다.
소루는 호군이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자신의 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30대의 중반은 되었음 직한... 어느 날에... 추억이란 앨범 속에 고이 간직했을 법한 빛바랜 사진같은 사랑을 영화로 만들어 볼 결심을 하게 됩니다.
영화 제작을 위한 기본 컨셉을 잡기 위해 작가와 함께 끝없는 시간으로의 역류를 되풀이 하면서... 소루는 그 때는 미처 몰랐던 호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결혼한 남자가... 옛연인과 사랑을 나누고... 결혼한 여인이... 옛 연인을 여전히 가슴에 묻고 있고... 어떻게 보면... 그것은 불륜이고, 동반자에 대한 배반입니다.
그러나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처럼... 마치 날 만나기 위해서, 저 길고 긴 우주의 시간 속을 서로 비껴가며 살다가... 겨우 이 시간, 이 세상 속에서 이렇게 함께 마주 볼 수 있게 되었다면... 그런 사랑이 자신의 눈 앞에 서 있다면... 누구도... 쉽게 거절할 수는 없을 겁니다.
물론 배우자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졌다는 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용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심동'에서는 그것이 옳으니 그르니에 촛점을 두지는 않습니다.
그저 그 두 연인이 얼마나 그리워했고, 사랑하고 있는가만을 묻고 있을 뿐입니다.
한 20년쯤 지나면... 그렇겠지요. 그럴 겁니다. 소루처럼... 자신의 사랑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이별 얘기도 만남의 얘기도 할 수 있게 될 테지요.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그 색이 바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엔딩 장면 쯤의 호군이 소루에게 준 사진들과, 그 사진들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소루를 보며... 진실한 사랑은 시간 지나 색이 바랠 수도, 그 형태가 바뀔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결코 사랑 그 자체가 사라져 버리지는 않음을 말해 줍니다.
소루와 호군은 이로써 정말 서로에게 자유로워진 것입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사랑하겠지만...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바라는 사랑이 아닌... 그가.. 그녀가 나와 같은 세상에, 나와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나처럼 숨쉬고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그 자체의 사랑으로 서로를 마주볼 수 있게 된 것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첸니의 얘기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첸니 역시 중요한 캐릭터인데 너무 언급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 주인공의 친구로 흔히들 그렇듯 친구의 남자친구를 사랑하게 되어, 그 두 사람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갈등을 일으키는 트러블 메이커입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사랑이겠지요. 비록 사랑받지 못하는 사랑이었다고 해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그 감정만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니까요.
그냥 생각해 보면 친구의 남자 친구를 뺏은 나쁜 여자겠지만, 첸니의 마지막 편지에서처럼 역시 그 때의 그들은 너무나 젊었고 그렇기에 사랑하는 남자를 뺏어오는 것... 적어도 첸니의 입장에서는 그것 역시 자신의 사랑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첸니가 불행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첸니는 처음부터 알았을 겁니다. 호군의 마음 속에는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자신은 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저 첸니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동안이 되겠지만 호군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소루와 다시 연락을 하게 된 호군에게 화를 내거나 하다못해 소루의 편지를 찢어 없애거나 하지 않은 것입니다.
첸니는 물러날 때를 아는 아름다운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이혼을 요구한 것은 첸니지만, 첸니는 그렇게 호군을 놓아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친구지?' 첸니의 이 말만큼 첸니의 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대사는 없습니다. 그녀는 단 한 번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의 아내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잡았을 뿐이고, 결별해야 할 그 때에 가장 그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방법으로 그에게 이별의 인사를 나눈 것입니다.
다시 그녀가 있어야 할 위치로 돌아가기 위해서.
'장애가' 감독이 그려낸 여기 이 사랑의 모습이, 결코 사랑의 모든 형태를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이런 사랑도 있다는... 또 하나의 나름의 사랑의 방식을 보여준 것이겠지요.
그 또 하나의 사랑이... 너무 애잔하고, 애틋합니다.
또 하나의 사랑이 가슴에 찾아온 느낌입니다.
세 사람의 각각 다른 사랑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슬픈 영화 심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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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1999, Tempting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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