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린 작가의 소설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읽고 난 뒤,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한 가정 주부가 남편의 바람을 목격한 뒤 망가져만 가다가 다른 남자와의 불륜을 통해 자신을 깨달아 가는 모습이 섬세하게 그려진 작품이었고, 이 소설을 정신 없이 읽은 뒤 아무 부담 없이 난 전경린 작가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로 잘 알려진 변영주 감독의 상업 영화 데뷔작이 이 소설을 영화화한 <밀애>라는 작품이라고 알려졌을 때 상당한 반감을 느꼈다. 길긴 했지만 인상깊었던 소설의 제목이 '밀애'라는 어딘지 3류 불륜 영화다운 제목으로 바뀌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나 문어체적인 대사들과 섬세한 소설속의 묘사를 과연 영화로 잘 살릴지에 대한 불안해했다.
그러나 영화는 예상보다 소설에 충실했다. 대부분의 스토리와 소설 속 설정, 인상깊은 대사까지도 영화는 제대로 포착해낸다. 원작에 충실하면서 <밀애>는 근래에 보기 드물게 조용히 가슴속에 파고드는 영화가 된다. <밀애>는 낯선 이들간의 정사장면에 상당히 신경을 쓴다. 미흔(김윤진)과 인규(이종원)가 처음 관계를 가지는 장면에서 잡아내는 카메라의 시선은 상당히 매끄럽다. 소설 속에서 너무나 세세해 에로티시즘을 넘어 아름답게 조차 느껴지는 그 장면에서 카메라는 인규의 시선을 따라 미흔의 몸을 훑으며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겨놓는다.
<밀애>는 오랜만에 보는 여성적인 영화다. 내용 자체도 여성이 주부라는 사회적인 매장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내용이고, 아무래도 계속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속 정사장면들은 남성위주의 피스톤 운동이 아니라 애무를 통한 전희를 길게 잡아준다. 남성의 일방적인 만족이 아닌 여성의 오르가즘을 중요시한 관계. 아무래도 변영주 감독이 여자이기에 또, <낮은 목소리>를 통해 소외된 여성을 다룬 감독이기에, 그런 부분에 더 많이 공감하였을 것이다. 비슷하게 여성의 외로움을 논하면서도 자학적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는 김기덕 감독의 <섬>과 비교할 때, <밀애>의 여성성은 좀 더 확실히 드러난다.
너무 섣부른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밀애>는 매우 중요한 여성영화가 될 것 같다. 글을 쓰는 내가 남성의 입장이기도 하지만 여성의 입장까지 고려해 공정하게 본다고 하더라도 원작 소설을 통해 충분히 내용을 이해하지 않고는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스토리는 남성에게 쉽게 어필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피해를 본다는 인식이 가슴속에 남아있는 여성들에게는 미흔의 작은 반란이 <델마와 루이스>의 통쾌한 절벽 다이빙 장면처럼 깊게 기억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