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계급, 종교, 남녀.. 그리고 도덕과 정의... ★★★★
※ 영화의 주요한 설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간략한 줄거리를 살펴보면, 14년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나데르(페이만 모아디)와 씨민(레일라 하타미) 부부. 아내 씨민은 11살된 딸 테메(사리나 파하디)의 교육을 위해 외국 이민을 주장하고, 남편 나데르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 때문에 갈 수 없다고 반대하며 대립하다 결국 별거에 이른다. 아내가 친정으로 가자 나데르는 집안일과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라지에(사레 바얏)라는 하층민 여성을 가정부로 고용하는 데 그녀는 임신한 상태에서 어린 딸을 데리고 일을 하러 온다. 어느 날, 라지에는 치매에 걸린 나데르의 아버지를 침대에 묶어 두고 어딘가 다녀오고 아버지는 침대에서 떨어져 자칫 죽을 뻔한 일이 발생한다. 화가 난 나데르는 라지에를 밀치며 집 밖으로 내 쫓고, 이 와중에 라지에가 유산을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라지에는 나데르를 살인 혐의로 고소하고 둘은 서로의 책임을 두고 법정 공방을 벌인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2011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동시에 거머쥔 이란 영화다. 최근 베를린 영화제가 주로 정치적 성향의 작품에 상을 안겨왔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 영화 역시 이란 문제를 민감하게 파헤친 사회파 영화라는 선입견이 먼저 작용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영화를 이란 정부가 이란을 대표하는 영화로 아카데미 외국영화상에 출품했다고 하면, 이란 정부와의 관계도 딱히 나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엔 이란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등장하지만, 이는 이란의 문제만으로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안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로 인식된다는 점이 아마 이란정부와 베를린 영화제가 동시에 품을 수 있는 영화로 선정된 이유일 것이다.
사실 언뜻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결별을 앞둔 부부와 아이 등 개인사를 다룬 애정 영화인 것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그렇게 본다고 해서 딱히 오독했다고 볼 이유는 없다. 왜냐면 ‘영화가 개봉되는 순간, 영화는 감독을 떠나 관객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상영 시간 거의 대부분 인물에 밀착한 카메라와 배우들의 리얼한 연기로 인해, 마치 실제 상황을 누군가(관객이)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사실적이다.
또한 이 영화는 촘촘하게 짜여진 드라마로서의 완성도가 높은 데다,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적 요소까지 담겨져 있어 시종일관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흥미롭다. 과연 나데르는 라지에의 임신을 알고 있었을까? 라지에가 환자를 묶어두고 몇 시간의 외출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라지에가 유산한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물론 이 영화가 이런 의문들을 스릴러 장르적으로 풀어낸 것은 아니지만, 하나씩 새로운 의문과 과제가 던져질 때마다 예상치 않았던 방향 전환은 화면에의 몰입도를 유지시켜 준다.
제목과 달리 영화는 두 부부의 별거가 아니라, 별거 이후 벌어지는 나데르와 라지에의 법정 투쟁에 초점이 맞춰지고, 영화가 제시하는 대부분의 주제가 법정 장면 안에 농축되어 있다. 아이를 제대로 교육시키기 위해선 이민이라도 가야하는 교육의 문제, 먹고 살기 위해 그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굴욕을 감내해야 하는 계급의 문제, 이란의 금기인 남녀 및 종교문제 등이 얽히고설키면서 이란 사회의 곳곳이 파헤쳐지고 드러내진다.
날줄과 씨줄처럼 교차하던 이야기의 최종 목적지는 정의와 도덕에 대한 문제다. 우리는 영화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이 모두 도덕적으로 완전하지 않은 인간임을 알고 있다. 또는 그러함을 증명해 나간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속의 인간들이 대체로 이러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선이고 자신이 정의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약간의 정의롭지 못한 행동도 가능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데르는 라지에의 임신사실을 듣고 알고 있었음에도 판사에게 몰랐다고 거짓말을 한다. 물론 화가 나서 라지에를 밀치는 그 순간엔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그의 말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인정하는 순간 1년에서 3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현실적 판단은 끝까지 그 사실을 부정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테메 역시 아버지가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확인하고서도 판사의 질문에 흔들리지 않고 거짓을 증언한다. 씨민 역시 마찬가지다.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이다. 반대편의 라지에와 그의 남편 역시 마찬가지다. 남편은 전통적인 가부장적 남성의 표상이며, 다혈질의 소유자로서 평소 라지에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혐의가 있다. 라지에는 시종일관 자신의 교통사고와 그로 인해 병원에 다녀온 사실을 숨김으로써 원만히 해결될 수도 있었던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이들이 평소 비도덕적이라거나 정의롭지 못한 인간이라고 비난받을만한 행동을 자주 범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오히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한 이웃들이다. 과연 이들에게 정의롭지 못하다고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비난할 수 있는가.
이처럼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주제로 봤을 때, <모래와 안개의 집>과 유사한 측면이 존재한다. 그런데 <모래와 안개의 집>이 결론이 모두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등 칼처럼 날카롭게 후비고 있다면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마치 스펀지에 스미는 물감처럼 서서히 스며든다는 차이가 있다. 아마 이렇기 때문에 이란 정부로서도 손을 들어 주었을 것이다.
※ 조금 엉뚱하게 딴지를 걸자면, 신실한 신자인 라지에의 경우를 봤을 때, 라지에가 꾸란에 손을 얹고 판사가 ‘당신이 주장하는 모든 게 사실임을 증명합니까?’라고 질문했다면 처음부터 진실을 말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 영화의 원제는 <Nader and Simin, A Separation>인데 한글 제목은 왜 <씨민과 나데르>로 사람의 순서를 바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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