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이렇게 마무리될 시리즈를 위해 내 10대와 20대 초반을 바쳤단 말이야?'
대학생 신분이던 몇 해전,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내가 제일 먼저 한 생각이었다.
내 유소년 시절을 통째로 바쳐 목격한 것이 훌륭한 고전의 탄생이 아니라
잠시 반짝인 한 소설의 거대한 인기이고 말았음을 깨닫고 내뱉은 한숨이었다.
허나, 시리즈에 대한 나의 개인적 감상과 상관없이,
'해리포터'시리즈는 어린 시절 나의 기억들과 밀접히 맞닿아 있는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그러니 소설이 완결되기도 전에 시작된 영화화 프로젝트가 어떤 결과물을 내놓는지
난 매년 극장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확인하곤 했다.
하지만 매해 반복되는 실망감.
자신의 색을 불어넣느라 정작 팬들이 영상으로 보고 싶어했던 장면들은
각색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잘라내던 감독들,
그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배경과 호그와트의 외형들,
시리즈의 충실한 재연과 새로운 재해석 사이에서 갈팡징팡하는 스토리는
실망스럽게 끝났을지언정 제법 행복했던 원작 소설과 내가 나누었던 추억마저 모욕하는듯 했다.
그렇게 영화화 된 시리즈는 흥행 신화를 써 내려갔지만,
평단은 언제나 냉담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고, 벌어들이 수익과는 별개로 관객들의 평 또한 높지 않았다.
그렇게 10년 동안 전세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시리즈가 드디어 완결편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 완결편은 놀라울만큼 훌륭하다.
(*이후로 소량의 스포있음)
이 영화가 정년 앞서서 선보인 세 편의 지루한 해리포터 시리즈의 감독이 맞나 싶을 정도로
데이빗 예이츠 감독은 '해리포터 영화화'에 대한 감을 확실히 잡은 듯하다.
*훌륭한 연출
과하지도, 너무 소심하지도 않은 CG와 훌륭한 음악, 적절한 사운드와 멋진 연출의 조합은
그간 장난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마법사들의 지팡이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관객의 눈앞에 펼쳐지는 사건들이 마법사들의 전투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죽음먹는 자들이 호그와트를 향해 일제히 주문을 발사하는 공성씬이나
그에 앞서 호그와트 교수들이 학교 주위에 방어진을 치는 장면은 사뭇 장엄하기까지 하다.
*대담한 전개
스토리적 설명은 앞선 시리즈에서 모두 했으니 더이상 앞선 얘기는 묻지 말라고 소리치는 듯
영화는 스피디하게 흘러가며, 원작과는 조금 다르게, 하지만 오히려 더 영화다운 모습으로 사건을 종결짓는다.
어떤 관점에서는 10년 전 해리포터와 경쟁하듯 개봉하여 평단과 관객의 호응을 동시에 끌어내었던
<반지의 제왕>시리즈 같이 '원작의 재연을 뛰어넘은 훌륭한 영화'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모습이다.
*폭발하는 연기력
그간의 시리즈에서는 사실 훌륭한 연기력이 필요한 장면이 연출되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시리즈에 깊음을 더해주기 위해 캐스팅된 대배우들에게 제작자들이 원했던 것은
연기력이 아니라 그 네임밸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만큼은 연기 또한 그간 쩌리 취급해온
영국의 명배우들에게 넓은 멍석을 깔아주며 흠잡을 데 없는 장면들을 연출한다.
10년간 시리즈에서 받아온 멸시에 대한 항의라도 하듯이, 영국의 훌륭한 베테랑 연기자들은
"다시 보니 반갑구나 포터(맥고나걸 교수)"
"언제나..(스테이프 교수)"
등의 짧은 대사를 통해서도 관객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게 만드는가 하면,
"언제나 이 주문을 써보고 싶었어요(맥고나걸 교수)"
등의 대사에 어울리는 코믹한 대사 처리를 통해 자신들의 능력을 아낌없이 발휘한다.
10년간의 훈련을 거쳐 해리, 론, 헤르미온느로 빙의한 주연 배우들의 연기 또한 훌륭하다.
*당연히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물론, 마냥 찬사를 늘어놓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간 해리를 이용해온 것이 사실이며, 그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덤블도어의 모습은
원작과는 달리 영화에서 아예 그려지지 않는 바람에 영화속 덤블도어는
'10살 아이를 성인이 될때까지 이용해먹고 끝까지 그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영감'
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감정적인 대사처리와 연출과는 상관 없이 말이다.
또, 앞서 적었듯이 친절한 설명없이 오직 완결만을 향해 달려가는 전개는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 이해할 수 없는 세계관을 두 시간 안에 알아서 이해할 것과 즐길것까지 강요하게 되고 말았다.
(이는 영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시리즈물이니..)
*해리를 보내며...
기타 몇몇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자꾸자꾸 칭찬만 해주고 싶은 영화이며, 그간 나를 괴롭힌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를
용서해주고 싶게 만드는 영화이다.
그것이 그간 제작된 시리즈가 너무 실망이었기 때문에,
혹은 원작의 마지막 권을 개인적으로 재미없기 읽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는 이 영화에 내가 과도하게 흥분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렴 어쩌랴?
나는 이 영화가 너무 좋았는데 말이다.
10년 동안 다투던 친구가 어느날 난데없이 철이 들더니 화해하자고 하면
그 자체만으로 우리는 감동을 받지 않느냔 말이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7편의 실패를 통해 드디어 한 편의 훌륭한 영화를 선보였다.
이 포텐이 좀 더 빨리 터졌으면 하는 욕심이 없는건 아니지만,
한 편이라도 이렇게 완성되어줘서 고맙다.
이런 영화라면 이젠 해리와 정말로 안녕을 해도 후련할 수 있을것 같다.
해리포터, 론 위즐리, 그리고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안녕!
그간 정말 고마웠어! 이제 정말 안녕이야!
마지막을 훌륭하게 장식해 주어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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