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그곳... ★★★☆
제작을 허우 샤오시엔이 맡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화면이라든가 전체적인 느낌에서 허우 샤오시엔의 느낌이 묻어 나오는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는 한국 제목 그대로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자매 두얼(계륜미)과 창얼(임진희)이 운영하는 카페 안에서 만들어지고 이어져 나간다.
오랫동안 카페 운영이 소망이었던 두얼은 이모의 가게 자리를 이어 받아 동생 창얼과 함께 카페를 개업하게 된다. 그러나 나름 자신만만한 메뉴에도 불구하고 장사가 되지 않고, 하루 하루 돈만 까먹던 어느 날, 창얼은 개업식에서 두얼의 친구들이 가지고 온 별로 필요할 것 같지 않은 잡동사니 물건들의 물물교환을 제안한다. 어느덧 카페는 타이페이의 명물이 되어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등 손님으로 붐비게 된다. 그럼에도 자신이 생각하던 카페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우울해 하던 두얼은 자신이 만든 브라우니를 맛있다고 칭찬해 주는 군청(장한)을 알게 되고, 군청은 세계여행을 하며 각각의 사연이 담긴 35개의 비누를 물물교환 장터에 내 놓게 된다. 군청의 이야기를 들으며 두얼은 점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새삼 느끼게 된다.
최근 어떤 책을 읽다가 그 책에 나온 문장 하나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 문장이란 바로 “잡초란 엉뚱한 곳에서 자란 식물이다” 엉뚱한 곳에서 자라 잡초이지 그 식물이 있을 만한 적당한 곳에서 자랐다면 그건 잡초가 아니라 약초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 영화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라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태국어로 된 낡은 책이라든가 일본어 노래 가사집, 싸구려 티가 나는 마릴린 먼로의 플라스틱 인형과 같은 잡동사니 물건도 누군가에게는 정말 소중한 추억의 물건이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물론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에서의 물물교환은 단지 형태가 있는 물건과 물건의 교환만을 일컫는 건 아니다. 교환의 대상은 노래가 될 수도 있고, 추억이 될 수도 있으며, 누군가가 살아온 인생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즉, 사람 많고 북적대는 도시에서 사람들이 외로운 것은 내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더 가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으며, 중요한 건 마음과 마음이 오고 가는 것이라고 속삭인다.
영화는 어쩌면 다양한 선택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래서 영화는 세 가지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던진다. 첫째, 돈을 택할 것인가? 카라꽃을 택할 것인가? 둘째, 공부를 할 것인가? 세계여행을 할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 마음 속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 영화는 타이페이 시민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잘은 모르겠지만)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를 화면에 담아 보여준다. 사람들마다의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대답들과 그 이유들이 나열되지만 정답은 있을 수 없다. 스스로가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정답이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가 이야기하는 바가 새로운 것도 아니고 일반인의 모습을 담은 화면이 처음 있는 새로운 시도도 아니다. 그럼에도 차분한 화면과 조용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관객에게 인생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 준다. 물론 반대로 얘기하자면 이러한 차분함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물물교환 과정에서의 에피소드가 부재함을 의미하는 것이고, 따라서 전반적으로 심심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이야기의 구성도 치밀하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한편으론 주름 하나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과 넉넉함은 자칫 치열함의 부재로, 나이브하다고 비판받을 소지도 분명 있다. 인생이 다들 이처럼 쉽게 술술 풀려나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럼에도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카페에 모인 사람들이 보여주는 마음의 여유로움과 넉넉함이며, 두 여주인공의 매력 때문이다. 특히 처음부터 이 영화를 보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인 계륜미의 화사한 미소는 단연 이 영화의 이미지이며 매력을 대표한다.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 단 번에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은 계륜미의 매력은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에서 한 걸음 더 전진한다. 사실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의 계륜미는 어떻게 보면 청순한 인형과 같은 캐릭터였던데 비해, 이번 영화에서의 계륜미는 인형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매력이 듬뿍 묻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창얼로 출연한 임진희는 계륜미의 청순함, 여성미와는 정 반대의 매력-미소년, 보이시한 매력으로 눈길을 끈다. 아마 남자라면 둘 중 하나엔 필연코 마음을 뺏기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것이다.
※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청순하고 여성미가 넘치는 첫째 딸과 보이시한 둘째 딸의 구성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이야기를 재밌게 하려는 전형적인 구성인지 아니면 실제로 현실을 반영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 영화 속 카페의 디저트
- 월 : 부드러운 카페라테와 치즈케이크
- 화 : 깔끔한 아메리카노와 티라미수
- 수 : 담백한 카페마키아토와 에클레어
- 목 : 진한 에스프레소와 부라우니
- 금 : 향긋한 카푸치노와 크렘블레
- 토 : 달콤한 카페모카와 쉬폰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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