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
영화는 검은 배경에 하얀색 글자로 시작한다. 내용은 누구나 알고 있을(!) 광주항쟁의 간단한 연혁. 전두환 일당과 신군부세력은 1980년 5월 17일 자정을 기해 전국에 비상계엄을 확대 실시하고 전국의 주요 대학에 계엄군을 주둔시켰다. 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어디론가 끌려갔고 그렇게 5월 18일 아침이 밝았다. 전국적으로 시위가 소강상태를 이룬 상황에서 광주의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고, 공수부대는 마치 양떼 사이에 풀어놓은 늑대들처럼 광주를 짓밟기 시작했다.
어느덧 31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위에 주저리 써놓은 것처럼 난 나름 광주를 안다고 생각했다. 친척들을 통해서 듣기도 했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수록한 글과 영상들 그리고 사진들. 그러나 <오월애>를 보며 내가 느낀 건, 어쩌면 내가 알고 있었던 광주는 대게는 정치적으로 성공한 명망가들의 시각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광주에 대해 실망했다는 사람들도 결국은 그 명망가들에게 실망했다는 의미이리라. 그러니깐 실망은 사람이 주는 것이지, 항쟁의 역사가 주는 것이 아니다.
지금껏 대부분의 518 관련 영상들이 명망가들의 증언에 비중을 두었다면, <오월애>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투에 참여했던, 그리고 현재도 어렵지만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이웃들의 증언을 모아놓았다. 전파상을 하고, 구두를 닦고, 행상을 하고, 조그만 중국집을 하고, 리어커에서 과일을 팔고, 거리에서 커피를 팔고, 노가다에 조그만 화원을 운영하며 사는 이들. 그리고 가해자로 광주에 들어왔다가 죄책감에 평생 업보를 지고 가는 사람까지.
왜 이들은 목숨을 걸고 총을 들었으며, 31년이 지난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영화는 감독의 아내이기도 한 주로미 조연출과 광주항쟁 당시 총을 들었던 양동남 씨 두 명의 나레이션이 이끌어가며, 항쟁의 발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80년 5월의 광주를 소환해 낸다. 연출이나 편집에서 다소 평이하게 느껴지는 점은 있지만, 진정성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거대하고 거창한 목적 따윈 없었다. 그저 이들은 자기 동네를 지키기 위해,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뛰어 들었고, 총을 들었으며, 주먹밥을 만들었고, 순찰을 돌았다.
가장 바닥에서 밥을 짓고 순찰을 돌았던 이들의 증언이라 숲은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무의 웅성거림에서 사람 냄새는 물씬 풍긴다. 당시 여고생으로 취사조에서 활동했던 중년의 여인은 자신을 살리고 도청으로 돌아갔던 남자의 죽음을 확인하고는 끝내 ‘살아 있음이 부끄럽다’며 눈물을 흘리고, 애써 참아 왔던 내 눈도 덩달아 흐려진다.
광주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오월애>는 보여준다. 특히 도청 별관을 둘러싼 격렬한 대립은 우려를 넘어 안타까움과 분노를 일깨운다. 중앙정부의 보조금과 광주의 발전(?)이라는 달콤한 사탕은 마치 연탄가스처럼 스며들어 분열과 대립을 낳고, 누군가는 이를 지켜보며 분열을 조장하고 비웃을 것이다. 광주의 진정한 주역들이 걱정하는 건 바로 자신들이 망각되는 것이다. 도청 별관 철거는 바로 망각으로 가는 상징이라는 것이 이들의 우려다. 또한 알고 보면 80년 광주는 아직도 누가 발표명령을 내렸는지? 당시 미국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등 핵심적인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광주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말해준다. 망각의 차원에서 보면 <오월애>는 바로 망월동 묘역에 묻혀 있는 무명전사들과 여전히 행방이 묘연한 실종자들을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아무도 기억하는 이 없는 이들이 또 한 번 망각되는 잔인한 역사에 맞서 <오월애>는 잊지 말라고, 광주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속삭인다.
※ 영화엔 작년 518 기념식에서 벌어졌던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수 없게 한 기념식. 항쟁의 주역들과 유가족들은 참석하지 않고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만 앉아 구경하는 기념식. 이게 바로 현실이다.
※ 80년 광주하면 내 머리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결혼해 광주에서 살고 있던 큰 누나 걱정으로 인해 며칠 밤을 꼬박 지새우시고는 갑자기 늙어버린 아버지의 한숨 소리와 담배연기.
※ 광주가 현재진행형임은 영화만이 아니라 최근 한 보수(라고 쓰고 수구꼴통이라 읽는다) 단체가 광주학살을 북한 특수부대가 자행한 것이라며 518 광주민중항쟁 기록물에 대한 유네스코 등재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에서 자명하게 알 수 있다. 이들 수구꼴통들은 그동안 광주는 북한 간첩들이나 빨갱이들이 시민들을 선동해 일어난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해 오더니 이제는 북한 특수부대가 죽인 것이란다. 그러니깐 북한이 남도 광주에서 ‘감놔라 배놔라’ 했다는 것이다. 이들 주장대로라면 북한 특수부대와 맞서 싸운 광주시민은 실로 구국의 영웅일 것이요, 더 나아가 600명이나 되는 북한 특수부대가 강원도도 아닌 광주에 들어와서 시민을 학살하고 북으로 되돌아갈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건 전두환 정권의 협조나 요청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터, 당연히 당시 신군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처벌받아야 하며, 미국이 알고 있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그러니깐 이들 수구꼴통들은 자신들에게 돌아올 화살을 날리고 있는 것이며, 도대체 지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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