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식도 없고 처벌도 할 수 없는 범죄에 대한 가장 가혹한 복수극... ★★★★
일본에서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된 미나토 가나에의 원작소설 <고백>은 성직자, 순교자, 자애자, 구도자, 신봉자, 전도자의 총 6부로, 성직자는 어린 딸이 살해당한 교사 유코(마츠 다카코), 순교자는 학급의 반장 미즈키(아이 하시모토), 자애자는 소년 B 나오키(후지와라 카오루)의 누나, 구도자는 소년 B인 나오키, 신봉자는 소년 A 슈야(니시 유키토), 전도자는 다시 교사 유코의 마지막 고백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처음 들은 생각은 1부인 성직자만으로 완결구조라는 것이었다. 1부만 있어도 틀이 짜이고 완벽한 스릴러. 그런데 다른 인물들의 고백, 특히 범행 당사자인 슈야와 나오키의 고백은 어린아이다운 유치함과 변명, 칭얼거림으로 일관되어 있어 전반적으로 늘어지고 지루해지는 감이 있다. 장편을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늘렸다는 느낌도 있고.
어쨌거나 영화 <고백>은 소설의 1부인 성직자와 6부인 전도자는 거의 그대로 살린 채, 중간에 나오는 사건 관련자의 고백을 날줄과 씨줄처럼 교차해가며 영상이 줄 수 있는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다. 따라서 앞서 얘기했던 원작소설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 <고백>은 원작소설을 뛰어넘는, 최소한 훼손하지 않는 희귀한 예에 속할 것이다. 거기에 원작에는 없는 유코와 미즈키의 만남을 통해 유코와 베르테르와의 관계 등을 설명한 부분도 좋은 각색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이렇다. 한 중학교 1학년 B반의 종업식. 떠들고 장난치는 아이들 사이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여교사인 유코는 자신이 왜 선생이 되었는지부터 시작해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에이즈에 걸려 결혼하지 못하게 된 사연을 거쳐, 사고로 죽은 딸 마나미가 사실은 자기 반의 두 학생에게 살해당했다는 것과 청소년법에 의해 처벌할 수 없는 두 학생에게 생명의 무게를 느끼며 살라는 의미로 우유에 에이즈 보균자의 혈액을 주입했음을 이야기한다. 유코의 고백 이후 마나미를 살해한 슈야, 나오키, 그리고 그 가족들과 같은 반 학생들은 점점 광기에 사로잡히고 화면엔 한 편의 끔찍한 지옥도가 펼쳐진다.
10대 범죄, 에이즈, 유아살해, 존속살해 등 하나 만으로도 자극적인 소재들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고백>은 어쩌면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가장 유려하게,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소재일지도 모른다. 비극을 비극적이지 않게 그림으로써 오히려 비극을 돋보이게 만드는 그의 연출력은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분명 <고백>은 감독의 전작 <불량공주 모모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과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블루톤의 화면에 무겁고 비극적인 주제와는 이율배반적인 감각적인 영상과 경쾌한 음악의 조화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 숨쉬는, 생동하는 리듬감을 부여한다. 특히 이러한 생동감은 중학교 아이들의 표정과 행동을 통해 직접적으로 표출된다. 선생의 딸이 살해당한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웃고 떠드는 아이들, 핸드폰 문자로 정보를 교환하는 아이들, 종업식이 끝나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고인 물을 튀겨가며 한껏 푸르름을 뽐내는 아이들, 나오키에게 보내는 편지에 저주의 문자를 섞어 보내는 아이들의 밝은 표정은 <고백>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만 떼어 놓고 보자면 10대의 밝음을 상징하는 이런 이미지들이 뒤에 감춰진 어두운 진실과 대비되어 오히려 살 떨리는 섬뜩함과 끔찍함으로 각인되는 것이다.
영화는 몇 명의 고백을 동시 다발적으로 펼쳐 내다보니 종종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럼에도 시선의 교차는 반복에 따른 지루함을 전혀 동반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마도 여기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가 참고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실 복도를 고정시켜 놓고 오고 가는 학생들의 모습과 슈야와 미즈키가 복도에서 손을 맞대는 모습을 앞뒤로 보여주는 방식은 정확히 <엘리펀트>이며, 가끔 보여주는 하늘도 역시 그러하다. 물론 <엘리펀트>의 하늘이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라면, <고백>의 하늘은 짙은 먹구름이 낀 하늘이다. 그만큼 <고백>의 청춘은 더욱 암울하다.
영화는 관련자들의 고백을 통해 그날, 마나미가 죽던 날, 정확히 어떠한 일이 있었던 것인지, 왜 소년들은 그러한 범죄를 저질렀던 것인지, 그리고 그 진실을 알게 된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지를 하나씩 늘어놓는다. 맞춰지는 퍼즐들, 가볍게 던져지는 증오와 가볍게 여겨지는 생명들, 죄의식 없이 저질러지는 끔찍한 범죄들, 그럼에도 처벌할 수 없는 모순. <엘 시크레토>에서의 복수가 무관심이라면, <고백>에서의 복수는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것을 스스로 파괴하도록 하는 것이며, 이것만이 죄의식 없이, 그리고 처벌할 수 없는 범죄에 대한 가장 가혹한 처벌이라고 말한다.
※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화려한 영상과 경쾌한 리듬으로 끝까지 달려 나간다. 그런데 이러한 리듬이 시종일관 이어지다보니 오히려 조금 루즈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리듬의 고저가 아쉽게 느껴지는 순간.
※ 원작소설과 영화의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영화는 마지막에 유코의 한 대사만(!)을 더 첨가하였다. 유코의 첨가된 대사는 슈야에겐 더 없이 날카로운 화살일 것이다.
※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도 OST가 발매되지 않았다. 사실상 뮤지컬 장르의 영화를 개봉했으면서도 영화음악을 발매하지 않는 것은 어쨌거나 그 영화를 관람하고 감동을 받은 관객에 대한 예의는 아니라고 본다. <고백> 역시 음악이 너무 좋다. 그런데 찾아보니 아직 OST가 발매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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