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쿠블라이칸은 도원경에 웅대한 아방궁을 지으라고 명했다.
그곳엔 인간이 알 수 없는 끝없는 동굴을 통해,
성스런 알프강이 태양도 미치지 못하는 바다로 흘러간다."
In Xanadu did Kubla Khan
A stately pleasure-dome decree.
Where Alph, the sacred river, ran
Through caverns measureless to man
Down to a sunless sea.
영화의 제목'Sanctum'(성스런 장소 또는 이상적인 장소)와 연관하여, 영화의 도입부와 중간, 그리고 결말부분에 걸쳐 3회 이상 반복되는 내레이션으로, 영국 낭만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의 미완성 시‘쿠빌라이 칸’(1816)의 일부인데, 영화가 추구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자 원전을 적어 보았다.
여기서 칭기즈 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Khubilai Khan, 忽必烈, Kublai Khan, Kubla Khan,1215~1294)은 13C인물이고, '아방궁'은 진 시황제(秦始皇帝, BC 259~BC 210)가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는 것이니 영화 번역자의 용인될 만 한 착오가 아닌가 싶다.
"쿠블라이칸은 도원경(현 몽골고원남부)에 웅대한 별장을 지으라 명했다"정도면 나쁘지 않을 것이다.
백만년동안 스며든 빗물이 암석을 용해시켜 바다로 이어지는 미로를 형성한, 남태평양의‘에사 알라'라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거대동굴 탐험대를 다룬 조난영화로 각본가 앤드류 와이트의 실제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다고 한다.
1988년 그는 14명의 탐험대를 이끌고 호주 남부 널라버 평원의 지하동굴 탐사중 발생한 돌발 폭우로 동굴의 입구가 폐쇄되면서, 목숨을 걸고 출구를 찾아 2일만에 기적적으로 살아 나왔다.
그런 실화에서 발생한 힘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영화를 꽉 채워 살아 숨쉬게 한다.
<내용 요약>
깊이를 가늠키 어려운 어둡고 거대한 동굴 성소(聖所)는 그 경이로운 매력으로 탐험대를 유인하여 가두어 버린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밀려 내려오는 열대폭풍우의 물길에 오로지 지상으로 통할 길은, 밑도 끝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미로(迷路)의 지하 물길을 더듬어 바다로 연결된 통로를 찾는 방법 뿐이다.
줄어가는 비상식량과 부족한 산소, 수명을 다 한 건전지로 인해 꺼져가는 조명, 그리고 극단적인 위기 속에서 생명줄을 한 명 씩 놓아 버리는 대원들의 참혹한 시신들은 부유(浮遊)하며 썩어간다.
영화는 지상의 이성적 도덕률로 인식되어 오던 의리와 정의 그리고 예의범절이, 생사의 기로에서 서면 어디까지 변질 될 수 있는가를 탐험대를 통해 보여주면서, 어둡고 폐쇄(閉鎖)된 지하 동굴 해저로부터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무모한 탈출에, 관객의 심장은 널뛰기를 시작하고 때론 등장인물들과 함께 호흡을 참는다.
탐사 다큐 제작자이자 후원자인 칼(이안 그루퍼드 분) 그리고 약혼녀 빅토리아(앨리스 파킨스 분)는 맞닥뜨린 극한의 공포앞에 한없이 나약할 수 밖에 없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어리석은 인간의 snobbish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너무도 남성중심 시각의 영화에 여성관객들의 반응은 우호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극중에서 여성은 거칠고 이성적이며 냉철해야 할 탐험행위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탐험대장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감정에 치우치며, 비 이성적인 트러블 메이커 로 여러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장면이 몇 컷 나온다.
예를 들면, 전문 스쿠버라면 당연히 착용해야할 보조 산소통을 지니지 않아 어이없이 생명을 잃고 마는 여성, 생존을 위해 잠수복을 권하는 탐험대장의 말에 냉소적 반응을 보이다가 저체온증으로 죽을 뻔한 여성은 결국, 로프에 매달린 채 대장의 말을 무시하고 손 칼을 사용하다 추락사를 자초하기도 한다.
늘 마음이 따뜻하고 희생적인 대원 조지(댄 와일리 분)의 중재에도 불구하고,다수의 생존을 위해 냉혈한이 되기를 자처하는 탐험대장 프랭크(리차드 록스버그 분)와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반항하는 젋은 혈기의 아들 조쉬(라이스 웨이크필드 분)는, 언제 생명을 잃을 지 모를 치명적 위험과 처절한 사투속에 생명의 최종 시한이 근접해 지면서, 퇴적된 오해와 갈등은 결국 이해와 희생의 모습으로 그 진실의 실체를 들어낸다.
이 대목에서 뒷좌석에 앉은 몇 분들의 흐느낌을 들었다. 그중엔 남성도 있었다.
<에필로그>
간접체험을 직접체험에 근사하게 전달하기 위한 3D기술의 채택은, 관객 전체를 심연에 함몰시키고 호흡곤란을 유발시키는 데에 부족함이 없어, 등장인물과 함께 갇혀 있던 두 시간 이후 우리 모두는 심장을 회복시키기 위해, 이름조차 생소한 자동 제세동기(AED, Automated External Defibrillator)를 서둘러 찾아야 했다.
가족의 소중함, 생명의 존귀함을 체험코자 하거나 보다 인간답기를 갈망하는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좋은 영화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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