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에 들어와 처음으로 극장에서 보게 된 영화가 이탈리아 모더니즘의 거장이라 불리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자브리스키 포인트>다. 최근 제작해 개봉한 영화중에 딱히 끌리는 영화가 없기도 했지만, 트위터를 통해 <반두비>를 연출한 신동일 감독의 강력한 추천을 받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한 영화 소개 사이트에 게재된 간략한 시놉시스(마크는 비행기를 훔쳐 타고 사막으로 날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다리아라는 젊은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기본적으로 단순하고 깔끔하며, 느리게 흘러간다. 영화는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토론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화가 제작될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에 관한 토론일지도 모르고, 학생들의 발언을 고려하면 흑인 민권 운동 차원의 얘기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 모든 걸 포함하는 68혁명. 조직적 관점을 주요하게 생각하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주인공 마크(폴 픽스)는 조직보다는 개인, 치밀한 준비보다는 즉각적인 행동을 우선하는 입장을 보임으로써 다른 학생들과 대립한다.
그러나 경찰에게 자신의 이름을 칼 마르크스라고 얘기(경찰은 Carl Marx라고 적는다)하는 마크의 장난기를 고려해볼 때, 감독은 조직적 관점에 대한 학생들 사이의 대립에서 딱히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다만, 그것은 당시 현실의 반영일 뿐이다. 그러니깐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와 레닌, 모택동, 호찌민 등의 저서를 읽으며 혁명의 열병을 앓는 조직가로서의 젊음과 또 한편으로는 머리에 꽃을 꽂고, 대마초를 피며(또는 LSD를 하며) 평화를 이야기하는 히피 같은 자유분방한 삶을 살고자 하는 개인으로서의 젊음이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며, 심지어 대립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현실이다.
시위 현장에서 총으로 경찰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게 된 마크는 경비행기를 훔쳐 사막(자브리스키 포인트)으로 도주하게 되고, 이곳에서 거대 자본가의 비서로 일을 하고 있는 다리아(다리아 할프린)를 만나 짧은 사랑을 하게 된다. 스포일에 가까운 이후 결말부를 얘기하자면, 마크는 경비행기를 돌려주기 위해 돌아갔다가 경찰의 발포로 사망하게 되고, 라디오로 이를 듣게 된 다리아는 자본가들이 모여 있는 건물을 폭파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자브리스키 포인트>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듯 히피 또는 사이키델리적 느낌으로 가득하며, 기성세대와 자본에 대한 반문화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영화의 첫 번째 인상적인 이미지는 광고판이다. 사막에서의 장면을 제외하고 화면은 계속해서 거리의 광고판을 꼼꼼히 기록하듯 화면 가득 채워나간다. 아마도 그런 광고야 말로 인간이 자유를 상실하고 자본에 얽매여 사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 가장 상징적 기호일 것이다. 영화는 마치 ‘너희들의 삶은 바로 이 광고로 인해 존재하는 대상물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두 번째로 프리 섹스 이미지다. 마크와 다리아는 지명으로서의 ‘자브리스키 포인트’의 사막에서 섹스를 하게 되고, 카메라는 마크와 다리아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다른 커플들의 집단 섹스 장면을 보여준다. 이는 일종의 환상이다. 군중 섹스임에도 야하다기보다 아름답게 채색된 이 장면은 히피의 이미지이며, 마크와 또는 당시의 젊은이들이 금기를 벗어난 인간의 원초적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마지막 이미지는 이 영화를 얘기함에 있어 빠지지 않는 결말부의 폭발 장면이다. 누군가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본가들은 자기들만의 공간에 모여서 사막 개발권에 대한 협의를 하고, 다리아는 이들이 모여 있는 별장(자본주의의 심장부)을 박살내는 (상상을) 한다. 건물이 폭파되고 (이 장면을 몇 차례나 다른 각도로 보여준다) 온갖 상품(옷과 음식들, 자본주의 탐욕의 상징들)들이 춤을 추듯 너울대며 하늘로 솟구쳤다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느리게 꼼꼼히 보여주는 폭발 장면은 이미지적으로나 의미적으로 매우 인상적이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물론 이는 다리아의 상상이다. 상상이라는 것은 혁명의 현실적 불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으로도 보이지만, 다리아가 태양을 향해 나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혁명에 대한 염원과 희망이 여전히 의미 있는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 왜 굳이 현재 시점에 <자브리스키 포인트>가 상영되고 있을까? 또는 왜 이 작품을 선정했을까? 영화 속 1970년대 미국과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의 동일성에 주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1970년 미국에서 유구한 역사가 서린 자연이 만든 사막을 개발하기 위해 자본가들이 협의 중이었다면, 현재 한국에선 수천 년간 흐르던 4대강을 납득하기 힘든 여러 이유를 대가며 파헤치고 있다. 무언가의 개발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사막의 개발이 자본가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처럼, 4대강 개발 역시 자본가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이다.
※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는 허리우드 극장은 오래 전 몇 개 안 되는 개봉관 중의 하나였음에도 왠지 기피되던 곳이었다. 왜냐면 허리우드 극장은 주로 동성애자들이 오는 곳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바로 인근의 파고다 극장과 함께-한 때 한국 락 그룹들이 공연을 하던) 오래 전 이곳에서 봤던 영화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터미네이터>였으며, 가장 최근에 허리우드 극장에서 봤던 영화는 이송희일 감독의 <후회하지 않아>와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굿모닝, 나잇>이었다. 특히 <굿모닝, 나잇>은 그 넓은 상영관에 혼자서 앉아 관람한 기억이 있다.
※ 영화 제목이기도 한 <자브리스키 포인트>는 데스 밸리 국립공원(캘리포니아 중남부와 네바다주가 인접한 곳에 위치) 지역에 있는 아름다운 침식 지형으로 약 1천만 년 전에 호수에 침전된 진흙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자브리스키 포인트라는 이름은 와이오밍 지역의 사업가인 크리스챤 브레보트 자브리스키(Christian Brevoort Zabriskie)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자막이 스크린 오른쪽에 세로로 나온다는 사실이다. 예전엔 다 그랬는데 오랜만이라 그런지 적응하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