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드>를 관람하고...
제작비 2백만불 이하의 저예산 모노드라마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러닝타임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아랍계 테러리스트의 갑작스런 습격으로 생매장된 한 남성 트럭 운전수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처절한 사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려나간 ‘로드리고 코르테스’감독의 일종의 스릴러 영화로서, 밀폐된 공간의 폐소공포가 극한에 이르는 느낌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도되어, 주변을 둘러보니 관람내내 식은땀을 흘리며 마음을 졸이지 않는 관객이 없었습니다.
이라크에서 군무원(?)으로 근무하던 미국인 청년 트럭운전수 ‘폴 콘로이’는 테러스트들의 갑작스런 공격으로 기절했다가 눈을 떠 보니 땅 밑 6피트(약 1.8m)에 묻힌 나무관속에 생매장된 채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에게 주어진 것이라고는 연필 하나, 나이프, 라이터, 그리고 동영상 송수신이 가능한 소유자 미상의 휴대폰과 약90분을 호흡할 수 있는 산소가 전부였습니다. 외부세계와 유일하게 연결해 주는 희망의 끈인 휴대폰으로 오로지 살기 위해서 그게 누구든지 아는 전화번호는 전부 전화해서 구조를 요청해 보지만, 모두들 씨니컬한 응대뿐, 누구하나 자신의 일인 것처럼 나서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헌신해 줄 아내마저 전화를 받지 않은 상황에서 몸담았던 회사, 미 국무성, 긴급구조대 등등 통화는 가능했지만 모두들 도와주기는 커녕 자신들이 책임을 모면할 궁리에 잡머리만 굴립니다.
암흑 속에서 오로지 한 배우의 모노드라마적인 혼신의 연기에 의해 영화는 그 무게를 잃지 않고 관람하는 모두를 흥분시키고, 실망시키고, 또 같이 신음하게 합니다.
지하에 매장된 관속의 암흑에서 시작해서 암흑으로 끝나는 영화라는 독특한 제한된 공간 속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은 어느덧 자신들도 모르게 주인공 청년에게 감정이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 지고, 아무도 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치달아 대단원에 도달할 때 쯤 삶에 대한 포기와 인생에 대한 회상과 후회, 기도하는 마음, 그리고 초절주의 즉 트랜센덴털리즘(transcendentalism)적 고뇌를 발생시키기 시작하게 됩니다.
영화가 끝난 후, 결코 직접 체험해서도 안되고 체험할 수도 없는 숨가쁜 밀폐공간의 악몽
을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안전하게도 간접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생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삶의 소중함, 나아가 한갓되이 지나치는 시간의 귀중함을 새삼 깨우치며 되새김하느라 차마 자리를 쉽게 뜰 수 없었습니다.
과연 내가 그런 입장에 처해졌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좋은 영화 <베리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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