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요기 하나 나잖아? 그럼 이것까지 다 차지해, 이놈이 나중에 죽어.” 피를 뽑는 농부의 말을 감독은 쉽사리 이해하지 못한다. “이게(벼) 더 크잖아요. 큰데도 그렇게 죽어버리는 거예요?” 7살 난 손자처럼 묻는 감독에게 농부는 웃으며 말한다. “세니까 그래. 조금만 빌려달라 그래도 빌려주지 말아야 하는 건데.” <길>의 오프닝 장면은 의미심장한 비유다. 감독과 농부의 대화가 시작되기 전, 카메라는 슬쩍 괴이쩍고 수상한 풍경 하나를 잠깐 비춘다. 방패 든 전경들이 좁은 논길을 막고 있고, 저 멀리엔 군대의 방호막과 함께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다. ‘벼’가 무엇의 다른 이름이고, ‘피’가 무엇의 다른 이름인지 관객은 곧장 안다. <길>은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 확장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한데 담은 다큐멘터리다.
“왜 우리가 범법자여?” 방효태씨는 되묻는다. 법은 모름지기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하는데, 특별조치법이라는 건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것이니, 법이 아니라 폭력이라는 것이다. “에라이 처먹고 할 일이 없어서 길을 없애냐?” 카메라는 대추리 사람들과 마을 지킴이들의 분노를 아주 가까이서 생생하게 담아낸다. <길>이 그렇다고 ‘투쟁의 한길로’를 시종 외치는 건 아니다. 카메라가 대추리에 머무는 시간 또한 2006년 5월 정부의 강제철거가 시작된 뒤다. 실패한 싸움의 뒤안에서 왜 농부들은 마을을 떠나지 않고 대추리에 머무는 것일까. 화가 덜 풀려서인가, 아니면 보상 때문인가. 군살 하나없는 70대 노인의 육체가 땡볕 아래 철조망을 뚫고 기어이 길을 내는 장면에 이르면 “자식은(한테는) 못 가 봐도 논은(에는) 가봐야” 한다는 방효태씨의 ‘말’의 의미가 전해진다. 농부의 길은 방패에 막히고, 포클레인에 의해 다시 파헤쳐지지만, 농부의 ‘정신’은 오롯하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인 게 있다고. 오직 하나 정의거든.” 감독은 결국 카메라를 내려놓고, 피를 뽑는다. <길>의 마지막 장면은 대상에 대한 감독의 예의인 동시에 정의의 길을 함께하겠다는 감독의 약속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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