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부드러우며 날카롭다...★★★☆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는 여학생들의 고립된 기숙사에는 풍경만으로도 기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아름답기도 하고 몽롱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 기괴하기도 하고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전조가 느껴지기도 한다. 바로 <행잉록에서의 피크닉>은 별다른 사건 없이 그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스산한 호러 영화가 탄생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영화였다.
거장 리들리 스콧의 딸 조던 스콧의 장편 데뷔작인 <크랙>은 1930년대 영국의 여학생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다이빙 교사 미스 G(에바 그린)와 그녀를 추종하는 6명의 학생들은 기숙학교 내에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집단을 이루며 생활하고 있다. 이 공고한 공동체에 균열(크랙)이 발생하는 건 스페인 귀족 출신의 피아마(마리아 벨바르드)가 전학 오면서부터. 피아마는 외모로도 아름답지만, 여러 국가를 돌아다닌 다양한 경험들과 뛰어난 다이빙 실력으로 단번에 화제의 인물로 부상한다. 소녀들의 우상이었던 미스 G의 관심은 피아마에게 집중되기 시작하고, 디(주노 템플)를 중심으로 한 소녀들은 우상을 빼앗아간 피아마에게 응징을 다짐한다.
분위기로 승부한다는 점에서 <크랙>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서도 영화의 결론 부분을 제외하면 딱히 중요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피아마의 전학이며, 그로 인해 공고했던 미스 G와 여섯 소녀들의 관계 균열과 파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소녀들의 심리 변화의 포착이 바로 이 영화가 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러나 <크랙>은 여러 면에서 아쉬운 지점들이 있다. 특히 균열의 발생에 따른 긴장의 고조와 그 긴장의 유지가 쉽지 않다는 건 미스테리 영화에서 점수가 많이 깎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이러한 아쉬움은 이 영화가 어디를 지향했느냐의 문제라고 보인다. 그러니깐 긴장의 고조에 따른 스산한 위기의 분위기보다는 소녀들의 표정과 불안한 심리들, 그리고 전반적으로 아름답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먼저 추구함에 따른 결과물이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소녀들이 미스 G를 따라 새벽에 알몸으로 수영하는 장면이라든가 소녀들에 의해 기숙학교에서 쫓겨나가기 직전의 피아마가 마구간에서 책을 읽는 장면은 매우 아름답지만, 이러한 아름다움이 긴장의 고조와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연기, 특히 불안과 갈구의 심리를 잘 묘사해낸 에바 그린의 팜프 파탈 연기는 대단히 인상적이며, 전체적으로 아름답고 몽롱한 영화적 분위기도 충분히 음미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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