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Wish >(이하 <바람>)은 주연배우인 정우의 학창 시절이 모티브가 된 영화다. 정우의 본명인 김정국과 별명인 ‘짱구’가 그대로 등장하고, 그가 살았던 옛집과 다녔던 학교에서 촬영했으며 심지어 그의 친구도 출연했다. 이성한 감독은 정우의 이야기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을 발견한 듯 보인다. 선생님에게 맞고, 친구와 어울리고, 몰려다니며 시비를 붙는 등 정우의 사연은 분명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남자의 표본적인 이야기가 될 법하다. 하지만 그 시절에 대한 추억으로만 100여분에 달하는 영화를 즐기게 만드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바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가는 향수의 정서는 영화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바람>의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전반부는 짱구의 학교 생활이고 후반부는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대하는 아들의 이야기다. 그 사이 짱구의 연애담이 살짝 끼어든다. 짱구의 학교 생활은 <말죽거리 잔혹사> 같은 지독한 성장담이나 <친구> 같은 전설의 무용담과 거리가 멀다. 감독의 전작인 <스페어>와 달리 <바람>은 액션에 대한 관심이 없다.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때리고, 욕과 담배로 무게를 잡던 불량소년들은 정작 큰 싸움은 벌이지 못한다. 영화가 그 시절의 거친 분위기를 어른처럼 보이고픈 아이들의 치기로 드러낸 부분은 비교대상인 다른 영화와의 차별점이자 사실적인 묘사다. 다음 이야기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 가능한 대목일 것이다. 하지만 에피소드들을 관통하거나 엮을 수 있는 사건을 구상하는 대신, 일기장을 넘기듯 연결한 <바람>은 개인적인 기억 이상의 감흥을 전하지는 못한다. 극중 짱구의 내레이션 또한 일기장을 그대로 옮긴 듯 설정됐다. 간만에 꺼내본 일기장이 개인에게는 큰 의미겠지만, 색다를 것 없는 남의 일기장도 그럴까. 추억을 담은 <바람>은 추측이 용이한 영화다. 영화가 아니라 친구와의 술자리 대화였다면 더 즐거운 이야기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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