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도박판에서 최고수의 히든카드는 의외로 ‘정직’이다. 허영만의 도박만화 <48+1>을 보면, 야차 같은 구라꾼과 기술자들을 모조리 제압하는 ‘타짜’ 인효삼은 아무 기술도 부리지 않고 ‘실화’(패가 나온 대로만 도박을 하는 행위)로만 화투를 친다. 도박 최고수의 존재 증명이 실화라면, 하이스트무비의 성공전략은 정교함이다. 그러나 6천억원을 강탈하는 사기극 <모노폴리>는 이야기의 바느질 솜씨가 턱없이 부족하다. <모노폴리>의 플롯과 캐릭터는 ‘럭셔리함’에 대한 집착 때문에 붕괴한다. 이는 한국형 사기영화의 모범으로 여겨지는 <범죄의 재구성>의 방법론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범죄의 재구성>은 밑바닥을 살아가는 인간 군상이 ‘개폼’을 잡으며 낄낄거리다가 서로를 배신하고 공멸하는 순간을 통해 리얼리티와 공감대를 획득한다. <모노폴리>에서도 헤네시를 기울이거나 액션 피규어에 혼잣말을 걸기보다는 삶에 관해 분노하거나 욕망을 올곧이 드러내는 인간의 땀내가 필요했다.
카이스트 출신 프로그래머 경호(양동근)는 대한민국 은행의 전산관리자로 일한다. 경호는 액션 피규어 숍에서 우연히 마주친 존(김성수)에게 호감을 느낀다. 존과 어울리며 그가 꾸미는 계획에 말려드는 경호를 보며 존의 애인 앨리(윤지민)는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존은 경호에게 은행 전산망을 이용해 1억개가 넘는 신용카드에서 소액을 인출하는 사기극을 제안한다. 범죄는 성공하지만 존은 무기명채권을 들고 미국으로 사라지고 경호와 앨리는 정보원에 체포된다.
<모노폴리>의 경호와 앨리는 시종일관 존의 지시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로봇처럼 보인다. 둘은 내레이션을 통해 무조건 “그는 특별했다”라고만 되뇐다. 관객을 속여야 할 영화의 주인공들이 사건의 동기나 목적을 스스로 설명하지 못하는 <모노폴리>의 드라마 구조는 당혹스럽다. 두뇌게임의 주인공이라면 <범죄의 재구성>의 김 선생처럼 “청진기를 대면 딱 진단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유주얼 서스펙트>와 <범죄의 재구성>은 치열하고 생생한 캐릭터들이 정교한 준비과정으로 반전의 뇌관을 분수처럼 터뜨린다. 과정을 생략한 채 결과만 내미는 <모노폴리>의 거대한 반전은 그래서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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