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영어교사 이유림(박해일)은 교생 최홍(강혜정)이 첫눈에 맘에 들어 시쳇말로 ‘작업을 건다’. 그는 아주 노골적으로 “같이 자고 싶어요”라고 하고, 홍은 “사랑하지 않으니 같이 잘 수 없다”며 버틴다. 끈질긴 유림의 노력은 마침내 빛을 본다. 유림과 홍은 각자 “자식 같고 부모 같은” 6년 된 여자친구와 “안정적이라서 좋다”는 의사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간헐적으로 섹스를 나눈다. 그러다 유림이 홍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연애는 사랑이 되고, 둘이 연애하는 사실이 보수적인 학교 안에 퍼지면서 사랑은 위기를 맞는다.
유림이 6년 된 여자친구와의 관계도 파기하지 않으면서 자기 욕망을 실현시키고 싶어하는 설정은 나름대로 현실적이다. 영화 안에서 유림으로 대표되는 남자의 욕망은 (그것이 얼마나 보편적인가와 별개로) 생생하게 꿈틀거리고 움직인다. 홍의 캐릭터도 그런 유림의 캐릭터와 어떤 면에선 조화롭다. 유림과 첫 섹스를 할 때의 홍은 유림만큼 정열적이며 “너 되게 맛있다”라는 유림의 말에 “너도 맛있어”라고 대꾸할 정도다. “즐긴 걸로 됐어요. 서로 애인도 있으니 이쯤에서 그만두죠”라는 태도도 합리적이며 현실적이다. 많은 영화가 종종 판타지로 포장하는 연애의 현실적인 틈새를 <연애의 목적>은 담아보려고 노력한다. <처녀들의 저녁식사>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보다 적나라한 대사와 아찔한 상황도 있다.
그러나 연애하는 심리 이면의 욕망을 논할 수 있는 모던한 명제는 자극적인 양념들을 그냥 뿌려놓기만 한다고 자동 완성되는 게 아니다. 양념은 주재료와 어울려야 요리가 된다. <연애의 목적>의 주재료인 홍이 갖고있는 과거의 상처는 어떻게든 극적으로 사랑을 완성시켜보려는 드라마들의 단골 메뉴다. 뻔하다면 뻔할 수 있는 설정. 유림의 캐릭터 또한 마냥 귀엽게 보기는 힘들다. 성폭행과 다를바 없는 유림의 행동을 영화는 너무 쉽게 용서하고 있다. 박해일, 강혜정의 뛰어난 연기와 이와이 순지 스타일의 감각적인 촬영만으로 극복될 수 없는 한계인 셈이다.
“지금 젖었죠?”라는 대사로 시작하는 오프닝 시퀀스만 놓고 보면 <연애의 목적>은 욕망의 지도 위에서 연애를 현실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영화 같다. 마치 실제 연애가 대부분 이런 남녀 관계로 이뤄지지 않는가라고 반문하는 것처럼. 그러나 만취해서 여관만 들어갔다오면 연애가 시작되고 그것이 쿨하며 솔직한 것이라는, 혹은 그런 설정만 있으면 영화가 쿨하고 솔직해 보일 것이라는 믿음이 만인의 공감을 얻긴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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