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든 영화든 어떤 것을 즐길 때 그 즐거움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상반되는 두 가지가 바로 이전까지는 몰랐던 새로운 것을 볼 때의 즐거움과 전부터 즐겼고, 그렇기 때문에 미리 그 정도를 기대하고, 그 정도의 즐거움을 맛보는 익숙한 즐거움입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후자 쪽으로, 새로운 작품이 나오면 찾아보는 것이 제겐 이미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더구나 아리에티의 경우는 이미 원작도 읽었기에,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럴 만하고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대체로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지브리에게 기대하는 바는 우선 아기자기한 동화입니다. 저는 어른이 된 지금도 동화를 즐겨 읽으며, 동화의 이야기, 동화 특유의 낭만적 감수성 같은 것에 로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지브리의 친숙하면서도, 예쁜(때론 화려하게, 때론 아기자기하게) 배경들과 캐릭터들 그림입니다.
특히 이야기는 몰라도, 그림, 영상에 관해서라면 독특하거나, 새로운 것을 접하기보다는 우선 눈에 익으면서도, 예쁜 것들을 찾게 되곤 합니다.
지브리표 극장 애니메이션은 물론 그 이전의 TV명작극장 시리즈를 통해 지브리의 캐릭터와 배경 그림들은 제게 가장 무난하고, 안정감을 주면서도 '미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늘 만족을 주곤 하죠.
아리에티는 지브리에 대한 이런 저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습니다.
요정을 연상시키는 소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원작은 우선 동화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낭만적입니다. 지브리는 그런 원작을 지브리답게 충실하게 옮겼습니다.
큰 사건이나 스릴 없이(알고 보는 사람은 애초에 그런 기대를 가지고 이 애니메이션을 볼 것 같지도 않지만;) 전체적으로 잔잔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영 시간이 조금 짧게 느껴질 정도로 저는 꽤 집중해서 봤습니다.
배경이 크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습니다.
또 소재가 소인인 만큼, 소인들이 생활을 위해 인간의 물건들을 사용하고, 집을 꾸미는 방식을 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습니다.
소인들과 인간들 물건의 크기의 대비도 즐거웠습니다. 원래 이런 종류의 영화에는 그런 것들이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법이죠. 지브리의 아기자기함은 이런 소재를 다루기에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리에티를 보고 나서 저는 좀 쓸쓸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과 대사가 쓸쓸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장면은 바로 쇼우의 종의 멸망과 죽음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너무 넘겨짚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쇼우의 대사에서 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깊은 감정 이입을 느꼈습니다. 지브리와 미야자키 감독 자신의 쇠퇴라고 할까요? 역시 그것을 감독 자신도 인식하고 있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야자키 감독에 대한 저의 이미지는 자신의 세계관, 작품에 대한 확고함, 고집입니다. 그리고 이전의 작품들에서 제가 기대하는 바의 충족과 함께 변하지 않는 감독 자신의 고집 같은 것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리에티의 이 장면에서는 어쩐지 그런 고집, 확고함이 무뎌진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기억에 남고, 한편으로 쓸쓸했습니다.
마지막의 쇼우의 '심장 대사'에서 이런 부분들을 수습하려 한 것(한편으로 쌩뚱맞기도 했던;) 같지만 어쨌거나 그 장면의 느낌은 지울 수 없더군요.
추가로 음악이 괜찮더군요. 그런데 히사이시 조 음악 같지는 않았습니다.오히려 칸노 요코? 음악에 잼병이라 확실히 모르겠지만, 같이 본 친구의 말로는 히사이시 조는 확실히 아니라던데…
아무튼 괜찮았습니다. 잔잔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좋았어요.
솔직히 바로 전작의 포뇨가 제 기대보다 별로였던지라, 이번에 아리에티가 더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아기자기한 지브리표 애니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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