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앤더슨을 내세워 1편의 영광을 노린 4편 그래서인지 전편보다 강해진 액션과 놀라운 입체감으로 돌아왔다.
"예외없는 속편의 한계 그리고 처절한 선택"
1996년 캡콤의 비디오 게임 '바이오 하자드'를 영화로 옮긴 <레지던트 이블>은 게임을 영화로 옮긴 작품들 중에서도 완성도나 액션의 강도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 성공의 이유는 게임의 핵심인 끊임없이 몰려나와 공격하는 무시무시한 좀비와의 혈투를 긴장감 넘치게 잘 살렸고 엄브렐러 제약회사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부대원과 밀라 요요비치의 투쟁이 과하지 않은 적절한 선을 유지하며 스토리의 짜임새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성공으로 2편이 제작되었으나 1편을 맡았던 폴 엔더슨은 제작과 각본을 맡으며 다른 감독으로 교체되어 1편이 하지 못한 비밀 이야기를 풀어간다. 좀 더 많은 좀비가 등장하고 앨리스는 앨리스를 죽여 비밀을 덮으려는 엄브렐러 제약회사의 음모와 1편보다 더욱 강력한 여전사의 이미지로 등장해 얼아 남지 않은 생존자들과 힘을 합쳐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막대한 투자 비용과 물량 공세에도 불구하고 1편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만다.
이를 만회하고자 제작된 3편은 감독 교체라는 처방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갔지만 2편보다도 못한 평가를 받고 속편의 한계를 절감하며 쓸쓸히 퇴장한다. 공포 영화처럼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좀비나 그들에 물려 좀비로 변하기 전 동료를 죽여야하는 애틋함이 끝없이 밀려오는 좀비들과의 사투 속에 펼쳐지며 싸움터를 더 큰 무대로 넓혔지만 왠지 빈약해진 스토리라인과 식상해 진 좀비와의 대결은 점점 흥미를 잃어갈 뿐이었다. 애초 원작이 스토리보다는 액션에 비중을 둔 게임이라는 한계가 아무리 액션영화라해도 지나친 스토리의 빈약이 강도 높아진 자극적인 영상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한 속편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다보니 다시금 그때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처절한 선택 즉, 1편의 감독인 폴 앤더슨을 감독에 복귀 시켰고 최근 영화계에 불어온 3D를 이용해 강도 높은 액션과 영상의 자극성을 높여 관객들의 선택을 기대하고 있다.
"작품을 살리고 죽인 밀라 요요비치의 스타성"
속편의 흥행 부진에도 감독을 교체할지언정 주인공의 교체는 없었다. 그 정도로 밀라 요요비치는 앨리스와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이며 빈약한 스토리를 매꿔주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점은 오히려 <레지던트 이블>이 갖는 한계이기도 하다. 분명 밀라 요요비치는 완벽하게 앨리스로 투영된다. <제 5원소>에서 시작된 늘씬한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전사의 이미지는 또 다른 치명적인 모습을 내포했고 <레지던트 이블>은 이런 그녀의 매력을 잘 살려냈다. 그런 그녀의 매력을 살려내려다 오히려 지나쳤다는 평가를 받은 <울트라 바이올렛>이 있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치명적인 살인 기계인 앨리스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런 앨리스를 지나치게 과장된 살인 기계로 설정한 <레지던트 이블>의 속편들은 관객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T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갖게 된 능력이지만 상식을 넘어선 그녀의 막강한 능력으로 이미 결정된 승패는 그들의 싸움에 흥미를 갖지 못하게 만든 것이 큰 이유이다. 하지만 스토리를 억지로 만들어 이어가야 하는 마이너스를 상쇄할 자극적인 영상을 위해 앨리스의 막강한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속편의 부진이 계속될 수록 그녀의 힘은 더욱 더 필요했기에 무리한 상황 설정은 오히려 독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레지던트 이블>의 속편에 대한 기대감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이런 상황에서 제작된 4편에서는 어쩌면 주인공의 교체도 검토했을 지 모르지만 이번 작품에선 다른 선택을 했다.
" 좀비라는 한계를 벗어나고 근원적인 적과의 대결 거기에 인간적 갈등"
우선 눈에 띄는 점이 앨리스의 인간적인 고뇌이다. 초반 부 일본 지하에 숨어있던 엄브렐러 본사에 잠입한 앨리스와 복제 엘리스. 우여곡절 끝에 회장과 대면해 최후의 결전을 벌일 때 회장이 그녀의 목에 투여한 약물은 T바이러스를 없애는 해독제다. 그 약물로 막강한 힘이 없어져 인간으로 돌아가 죽기 직전 그녀는 인간으로 돌아가게 되어 기쁘다는 말을 남긴다. 절대 죽지 않을 것 같았던 그녀도 사실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하고 갈등하다 인간으로 되돌아가 인간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는 사실이 이제 죽는다는 사실보다 기뻤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에게 또 다시 무한 파워를 준 상황 설정은 역시 아쉬운 스토리의 한계를 절감하게 하게 되지만 적어도 그녀의 고민을 비췄다는 점에서 다음 속편에는 그녀의 힘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란 예상을 조심스레 해 본다.
그리고 이번 속편은 좀비들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생존자들이 있는 빌딩에 주위를 둘러싼 좀비들이 많기는 하지만 4편에서 앨리스와 무리들이 싸우는 궁극적인 대상은 좀비가 아니라 엄브렐러 회장이다. 지난 속편들에서도 비슷한 상황으로 전개는 되었지만 좀비의 출현은 극히 자제하고 그들의 위협은 긴장감만을 고조시키는 선에서 적절하게 유지하면서도 명장면인 '옥상 추격장면'을 보여준다 . 그리고 많은 좀비와의 대결 대신 복면을 쓰고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는 '언데드'의 출현은 또 다른 명장면인 '도끼맨과의 샤워장 대결'을 선보인다. 이 두장면으로 대표되는 강렬한 영상은 불필요한 좀비와의 대결 대신 3D의 입체감을 통해 극한의 긴장감을 적절하게 주는 속편과의 영상 차별화인 것이다.
" 또 다른 긴장감, 탈출 그러나 여전히 빈약한 스토리"
눈 앞으로 날아오는 총알이나 도끼의 입체 영상미도 멋지지만 좀비로 둘러쌓인 건물을 빠져나가 아카디아라는 생존지역으로 필사의 탈출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건물 지하로 파고 든 좀비와 거대 도끼맨이 철문을 부셔 더이상 건물에 머물 수 없는 그들은 과연 어떤 탈출을 선택할 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지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런 이야기 구조는 많은 영화에서 사용하는 뻔한 스토리이지만 한명씩 희생자를 남기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배신자로 인한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은 좀비와의 사투라는 이야기와 잘 조화를 이루며 전개된다. 그리고 지금껏 앨리스 혼자의 고군분투로 전개되었던 <레지던트 이블>시리즈가 기억상실증인 클레어와 클레어의 오빠인 크리스의 활약은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잃어버린 기억은 무엇이고 왜 기억을 잃었을까라는 또 다른 질문을 통해 다음 이야기에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이런 재미와 긴장감은 가장 중요한 회장과의 대결에선 오히려 싱겁게 마무리되며 아쉬움을 남긴다. 총알도 피해가던 회장이 앨리스와 클레어 그리고 크리스와의 대결은 지금까지 좋았던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하며 다소 싱겁게 정리된다. 거기에 중요한 비밀을 갖을 것이라 생각한 클레어의 기억은 별다른 내용없이 지나가고 마지막 대결 이후 끝없이 밀려오던 좀비만큼이나 몰려오는 또 다른 악의 무리는 이해할 수 없는 등장으로 마무리된다. 엄브렐러의 비밀스런 실험이 갖는 이유는 알겠지만 대체 엄브렐러의 실체는 무엇이고 그 결말은 대체 언제쯤이나 보여질 지 실체없는 늘림은 왠지 석연치 않은 마음만 남긴다.
"에필로그"
1편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폴 앤더슨의 투입은 일단 성공으로 보인다. 그것이 3D 액션으로 인한 것이든 감독 교체로 인한 것이든 전편에 비해 짜임새있는 스토리나 완성도 높은 액션 장면은 긴장감을 유지 혹은 고조시키며 오락 영화로서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단순히 좀비를 죽이는 차원이 아니고 막강한 앨리스와 상대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악당을 출현시키는 무리수보다 인간적이고 오락적인 재미를 살리는 연출은 분명 이전 속편들보다 뛰어나다. <레지던트 이블> 5편은 이미 예고되었다. 다음 편에선 막강한 앨리스보다 클레어처럼 인간으로 돌아온 앨리스가 엄브렐러의 비밀을 밝히고 그들을 물리치는 완결편이 나오면 더 재미있을 것이란 기대를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