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프랜차이즈의 성공적인 계승... ★★★☆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는 단적으로 말해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중 가장 성공한 시리즈물이라 할 수 있다. 2002년도에 일본 게임 <바이오하자드>를 원작으로 탄생한 이 시리즈는 엄브렐러사와 T-바이러스, 그리고 무엇보다 밀라 요보비치의 영화로 각인되어졌으며, 화려한 액션과 함께 마치 게임 속을 누비는 듯한 스토리, 거기에 상당히 잔혹한 영상미까지 합쳐져 가장 현대적인 좀비물로서의 지위를 누려왔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 중 최고는 <사일런트 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일런트 힐>은 아직 시리즈가 아니다)
물론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원작이 던져준 충격은 밋밋해졌으며, 이야기가 점점 산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새로운 시리즈 <레지던트 이블 4 : 끝나지 않은 전쟁 3D>가 삼은 전략은 두 가지 방향으로의 모색인 것 같다. 첫째는 초심으로의 회귀. 3편에서 광활한 사막으로 확대되었던 영화의 배경은 게임에서처럼 다시 촘촘한 빌딩 내로의 스테이지로 변화되었다.(나는 <바이오하자드> 게임을 해 본 적은 없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가장 상징적인 건 첫 편을 연출했던 폴 앤더슨이 다시 감독으로 복귀했다는 것이다. 폴 앤더슨은 밀라 요보비치의 남편이니 아내를 최소한 구렁텅이에 빠트리지는 않을 거라는 건 확실하다.
두 번째 방향은 영화계의 새로운 조류에 편승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3D로의 제작. 사실 3D로 개봉한 영화들이 많기는 하지만 3D 효과를 만끽할 수 있는 영화는 거의 없었으며, 2D로 제작해 3D 효과를 입히는 말로만 3D 영화도 많았다. 관객 입장에선 관람료를 올리기 위한 꼼수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법도 한 상황인데, 특히 <토이스토리>의 경우엔 도대체 왜 3D로 제작했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대표적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레지던트 이블 4>의 3D는 꽤 즐길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지나친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특히 액션 시퀀스에서 그 효과는 뚜렷하다.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장소는 일본 도쿄의 가장 번화가인 시부야. 조용히 서 있던 한 여성(나카시마 미카)이 지나던 행인을 갑자기 물어뜯으며 어둠이 일본을 잠식해 나가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다.(영화의 처음을 일본에서 시작하고, 프리미어 행사를 일본에서 한 것은 원작 게임에 대한 일종의 존중일 것이다) 어둠이 일본을 삼킨 직후 앨리스(밀라 요보비치)가 그의 클론과 함께 도쿄 지하에 있는 엄브렐러 본사를 습격하는 액션 시퀀스는 정확하게 <매트릭스>이며, 언뜻 <이퀼리브리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3D 효과를 이용해 표창이 객석으로 날아온다든가 특히 앨리스가 수직 낙하하면서 사격하는 장면은 오금이 저릴 정도로 화끈하고 매끈하며 드라마틱하다.
무엇보다 <레지던트 이블>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게임이 한 스테이지를 돌파해야 다음 스테이지로 진행하듯 영화 역시 게임의 느낌처럼 진행된다는 것이다. 다음 미션으로 갈수록 어려워지기도 하며 복잡해지기도 하고 더욱 강하거나 모호한 상대가 끊임없이 출몰해 주인공들을 괴롭힌다. 앨리스는 이제 초인적인 능력을 잃고 인간으로 되돌아가 아슬아슬한 위기들을 육체의 힘으로 돌파해내야 한다.
이번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좀비의 진화다. 전통적 좀비부터 입에서 촉수를 내뿜는 좀비(마치 영화 <에이리언>의 괴물처럼), 그리고 거대한 도끼를 들고 다니는 지옥에서 나온 듯한 거대 괴물(이 괴물은 <사일런트 힐>의 피라미드 크리처를 연상시킨다)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이런 다양하고 빠른 좀비의 등장이 영화적 재미를 높이는 데 반드시 기여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름 기여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레지던트 이블>이 어쨌건 좀비영화라고 한다면 관객들이 좀비 영화를 관람할 때 어떤 걸 기대하고 보러 왔느냐의 시각 차이가 존재하는 듯 하다. 상당히 주관적 견해이긴 하지만, 좀비 영화를 보러오는 관객으로선 아무리 총을 쏘고 장갑차로 죽여도 느리지만 끊임없이 두 손을 들고 밀려오는 좀비떼(말 그대로!)와 맞설 때 가장 아드레날린 수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나름의 예상을 살짝 뒤트는 재치는 나름 평가해줄만하다. 그러니깐 생존자들이 거대한 장갑차로 좀비들을 싹쓸이하면서 감옥을 탈출하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감옥을 둘러싼 엄청난 좀비떼를 고려해본다면 이는 대단히 고어적이고 화끈한 장면이 연출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장갑차로 좀비떼를 밀어버리는 장면은 <레지던트 이블>의 전 시리즈라든가 <새벽의 저주>와 같은 다른 좀비 영화들에서 수 없이 등장했던 장면이라는 점에서 식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대신에 영화는 좁은 굴속으로 생존자들을 밀어 넣어 일종의 폐소공포증에 의한 긴장을 부여했는데, 별다른 사건 없이 굴을 무난히 통과했던 건 못내 아쉽다.
사실 <레지던트 이블>이 4편까지 이어져 내려오고는 있지만, 딱히 스토리가 촘촘하다거나 중요한 영화는 아니다. 아마 대부분의 관객도 스토리를 기대하고 영화를 보러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라면 <레지던트 이블 4>는 충분히 자기 몫을 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밀라 요보비치의 화끈한 액션이 주는 매력이야말로 아무리 4편째 우려내고는 있지만 여전히 눈길이 머물게 하는 지점이다. 반면 한국에서 인기가 높은 웬트워스 밀러(석호필)는 그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를 차용해 등장시킨 건 흥미롭지만 그다지 비중은 높지 않다. 어쨌거나 살아남았으므로 다음 시리즈에서의 활약은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 개인적으로 시리즈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1편에서 레이저에 의해 사람이 깍두기 썰 듯이 잘려지는 장면이었다.
※ 도대체 이 시리즈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걱정되면서도 너무 궁금하다. 밀라 요보비치가 더 이상 늙기 전에 마무리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