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신뢰가 당신을 살리리니.... ★★★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너는 오스왈드가 될꺼야”라는 얘기를 들은 평범한 택배기사 아오야기(사카이 마사토)는 곧 암살된 신임 총리의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유도 원인도 모른 채 아오야기는 거대한 국가권력으로부터 범인으로 지목되고 세상엔 그가 범인이라는 조작된 증거들이 난무한다. 이제 그는 국가권력의 추적을 피해 살아남아야 한다. 그가 가진 무기라고는 ‘습관과 신뢰’ 뿐이다.
<골든 슬럼버>를 관람함으로서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이 연출한 장편 3편을 모두 관람하게 되었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피쉬 스토리> 그리고 <골든 슬럼버>. 재밌는 건 세 작품 모두 이시카 고타로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며, 세 작품 모두 하나의 노래를 모티브로 한 영화라는 점이다. 이를 테면,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에는 Bob Dylan의 <Blowing In The Wind>, <피쉬 스토리>에는 가상의 펑크 밴드 게키린이 부른 <피쉬 스토리>, <골든 슬럼버>에는 The Beatles의 <Golden Slumber>가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골든 슬럼버>는 결코 스릴러 장르가 아니다. 왜 신임 총리가 암살되었으며, 그 범인으로 아오야기를 지목했는지 추정만 가능할 뿐, 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뒤에 숨은 거대한 악의 실체도 본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골든 슬럼버>는 친구들과의 애틋한 우정과 추억을 그리는 영화이며, 인간에 대한 신뢰가 중요함을 강조하는 드라마에 가깝다. 거기에 <골든 슬럼버>와 감독의 전작은 단지 동일한 작가의 원작소설과 노래 한 곡으로 풀어나가는 스토리 라인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세 작품의 장점과 단점은 거의 동일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그의 작품관의 전형적 특징일지도 모르고 일본 영화 내지는 일본 문학의 특징에서 기인하는 지도 모른다.
일단 <골든 슬럼버>는 (이전의 두 작품과 동일하게) 퍼즐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그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마지막 순간에 와서야 관객들이 가슴 저릿한 애틋함을 맛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반대로 해석하면 마지막 순간에 이르는 과정까지 어느 정도 혼란스러우며 늘어지는 측면이 존재한다. 방대한 스토리의 <피쉬 스토리>가 가장 혼란스러웠던 반면,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가 상대적으로 깔끔하다. 그러니깐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은 이야기의 영역이 확대될수록 혼란과 늘어짐의 과정이 길어진다는 것인데, 고작 세 작품 밖에 안 한 상태에서 시급한 결론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은 작은 이야기의 연출에 좀 더 강점이 있다고 보인다.
<골든 슬럼버>의 가장 큰 단점이라면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 우연적 요소가 남발하고 작위적인 흐름을 보인다는 점이다. 연쇄 살인마(하마다 가쿠 -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의 세 작품에 모두 출연)라든가 전직 야쿠자의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 보면 분명 흥미로운 부분이 존재하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너무 장난스럽고 등장인물들이 모두 주인공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듯한 억지 설정이 난무한다. 그 외에도 주인공을 추격하는 경찰을 제외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주인공의 결백을 믿어주고 도피를 도와준다는 설정은 아무리 인간에 대한 신뢰가 중요함을 역설하기 위한 장치라고 해도 현실감이 너무 떨어지며, 그 과정에서 보이는 과장된 일본 코미디의 느낌도 분명 영화에 몰입하기 힘든 조건으로 기능한다.
그럼에도 퍼즐의 맞춤이 스릴러 장르적 쾌감 대신에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정서적 측면에 무게를 둔다는 점, 별 것 아닌 듯 보였던 사소한 설정이나 물건 등이 퍼즐의 한 조각을 이루면서 소홀히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 등은 가슴 따뜻한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하며, 영화적 단점을 가려준다. 특히 1분 30초의 짧은 노래인 비틀즈의 <Golden Slumber>가 불러오는 애틋함은 기대 이상이다.
※ 비틀즈의 공식적인 마지막 앨범은 1970년 5월 8일 발매된 [Let It Be]지만, 1969년 9월 26일 발매된 [Abbey Road]가 스튜디오 녹음 시간이 늦은 사실상의 마지막 앨범임은 딱히 비틀즈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영화에서도 언급되지만, 비틀즈는 마지막 순간에도 명곡들을 만들어 냈으며, 특히 1분 31초짜리 짧은 곡 <Golden Slumber>는 멤버들이 하나로 다시 모였으면 하는 절절함을 담아내고 있어 더욱 애처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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