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시골의 평범한 17살 여고생 노리코(후키이시 가즈에)는 서로 무관심한 가족들에게 상처받고 권위적인 아버지의 태도에 반발하여 어느 날 가출을 감행한다. 집을 나온 그녀는 ‘폐허닷컴’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자신의 우상 쿠미코(쓰구미)를 만나기 위해 도쿄로 간다. 강보에 싸인 채 우에노역 사물함 54번 안에 버려졌던 쿠미코는 자신의 출생지는 우에노역 사물함 54번이라고 주장하면서 혈연에 의한 가족을 부정한다. 노리코는 쿠미코가 하고 있는 ‘렌털가족’ 사업에 합류하게 되고 ‘미츠코’로 새로 태어난다. 한편, 노리코의 여동생과 아버지는 그녀의 흔적을 찾아나서고 엄마는 상실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가족은 해체되어간다.
<노리코의 식탁>은 소노 시온 감독의 2002년 화제작 <자살클럽>과 동궤에 있다. 54명의 여고생이 신주쿠역에서 집단 투신하는 장면은 이번 영화에 다시 등장하여 매우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로 고정된다. 집단 자살을 위해 모인 54명의 여고생들이 어떤 사연을 갖고 거기에 모이게 되었는지 이번 영화가 하나의 실례를 보여주는 셈이다. 가족 해체에 대한 극단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영화에서 신인류는 모체의 탯줄을 자르고 탄생되지 않는다. 노리코가 코트 소매 끝자락에 삐져나온 실밥을 떼어내며 이것은 미츠코로 다시 태어난 자신의 탯줄이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이들은 자신의 생물학적 기원대신 사회학적 발생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런 새로운 감각에도 불구하고 가족에 대한 미련과 엄살 같은 걸 말끔히 떨쳐내진 못했다는 미진함을 남긴다.
2006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관객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노리코의 식탁>은 잔혹한 판타지이다. 이 영화는 이제 아무도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없으며 세상은 나와 내가 관계하는 장소일 뿐이라는 명제를 증명하려 한다. 나는 나와 관계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개인은 자신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을 순환하는 존재로 끝없는 미분(微分) 작용을 하게 된다. 하지만 소노 시온 감독은 남과 관계하지 않는 삶은 수식으로만 존재하는 절대 관념일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두 가지 모순되어 보이는 생각은 영화 전편에 걸쳐 나타나는 그로테스크한 시각적 연출의 배경이 된다. 영화 끝부분, 해체된 가족이 식탁 앞에 모여 앉아 식사하는 장면은 특히 압권인데, 회복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어렴풋한 갈망과 새로운 세상을 여는 고단함 같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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