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영화관에서 애니메이션을 보는걸 그리 즐기진 않는다. 아무래도 영화관의 메리트는 웅장한 사운드와 넓은 화면이기에 영화관에서는 이왕이면 스릴러물이나 액션물 등 좀 화려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블록버스터 물을 즐겨본다.
최초의 애니메이션이었다. 내가 영화관에서 본. 지브리 스튜디오 제작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 네임밸류만 따지면 역시 쟁쟁하다. 기대한 바도 없지않아 있었고 그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함' 이었다.
아리에티는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 키가 약 10cm 정도 되는 소인이다. 그들 종족은 이미 멸종에 다다르고 있는 상태. 하지만 아빠, 엄마, 아리에티 이렇게 셋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남아야 한다' 라고 되뇌이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 그리고 아리에티는 쇼우를 만난다. 심장에 이상이 있는, 그래서 조용한 교외로 요양을 온 소년 쇼우는 아리에티를 보고 할머니로부터 집에 소인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때 봤던 아리에티가 소인이라는걸 알아차린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지금까지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에 비해서는 스토리의 고저가 좀 덜한편이다. 물론 집의 가정부 로부터 생포(?)당할 뻔 하는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극적이라고 하기엔 좀 잔잔한 느낌이 없지않아 있다 ^^;;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은 내게 따뜻함을 줬는지도 모른다. 분초를 다투는 미디어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극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제는 그 자극에 익숙해져 쾌감을 위해 더욱 큰 자극을 요구한다. 우린 어느새 자극에 내성이 생겨버렸다. 하지만 사람이란게 참 희한하다. 그토록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잔잔한, 굴곡이 없는 애니메이션을 보고도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따뜻하다. 푸근하다. 그리고 괜시리 행복하다.
집의 가정부는 소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이들을 생포하기 위해 방역업체를 부르기에 이른다. 아리에티의 엄마는 도중 '납치'되기에 이르고 아리에티는 쇼우의 도움을 받아 엄마를 구해내 가족들은 이사를 간다. 그들은 인간과 공생할 수 없다. 인간의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렸을때 그들은 거처를 옮겨야 한다. 그렇게 쇼우는 아리에티와 작별을 한다...
소인은 인간과 공생할 수가 없단다. 무엇이 그들을 인간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을까. '빌려쓰는' 삶 때문에? 10cm 소인들이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는가. 3인 가족인 아리에티 가족은 각설탕 하나로 일주일 넘게 버틸 수 있다. 우리가 커피 한잔에 넣어먹는 각설탕 하나로 말이다. 어느샌가부터 타인에게, 혹은 다른 생물들에게 스스로의 자리를 내줄줄 모르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그들의 생명을 통해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자리를 내주지 않는 이기적인 생물체가 되어버린것 같다. 지금은 소인들이 떠나갔지만, 언젠가 쇼우의 창으로 돌진한 까마귀, 쇼우의 고양이, 더불어 쇼우가 요양을 하던 고요한 숲이 인간을 떠나갈지 모른다. 알량한 우리의 이기심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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