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난후 멋진 풍경사진같은 화면, 배우들의 매력, 따뜻한 정서 등등 수많은 느낌들이 다가왔지만, 자꾸만 드는 생각은 왜 제목이 인어공주일까였다. 극중 ‘연순’의 전직은 해녀였고, 해녀의 외형적 이미지는 인어공주의 그것과 결부된다?
이런 단순한 해석만으로는 무언가 찜찜할뿐더러, 왠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와는 어떤 연관성이 없을까라는 싱겁지만 집요한 궁금증이 파고들었다. 왕자와 지내기 위해 자신의 예쁜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 그럼에도 물거품이 돼 사랑하는 왕자 곁을 떠나는 무척이나 희생적인 타입의 여자, 인어공주(어렸을 적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연민을 품었던 인어공주지만, 지금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캐릭터).
이러한 스토리를 근간으로, 영화 <인어공주>를 이리저리 꿰맞추니 ‘연순’의 캐릭터가 걸려들었다. 고두심이 분한 ‘지금’의 ‘연순’은 한마디로 억척 아줌마의 전형이다. 우리가 ‘아줌마’라는 통칭으로 희화화시키고 있는 그런 타입의 여자말이다. 침을 퉤퉤 묻혀가며 한장한장 서툴게 돈세기, 누가 쓰다버린 가구 집으로 가져와 수선하기, 음식점에서 종업원 눈치 안보고 반찬 더 달래기, 무능한 남편 잔소리로 박박 끍어대기 등등 어찌보면 평범하고, 어찌보면 남루한 우리네 일상속의 어머니.
이런 어머니 ‘연순’을 바라보는 딸 ‘나영(전도연)’의 태도는 혐오에 가깝다. 남자친구가 앨범을 보다가 젊었을 적 어머니와 자신의 모습이 닮다 못해 아예 똑같다는 얘기, 게다가 너도 늙었을 때 어머니처럼 되는 거 아니냐는 말에 발끈하거나, 연순이 무슨 말만 해도 인상부터 잔뜩 찌푸리게 되는 나영은 사실 ‘딸’로서의 우리의 모습을 언뜻언뜻 비추는 거울같은 존재다.
또, 그런 나영의 모습은 모성성에 대한 다분히 이중적인 딸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딸은 가족에 대한 어머니의 희생과 인내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지니면서, 어머니 역할수행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고. 하지만 실제 삶에 있어선 어머니의 무한 희생을 요구하며, 당신의 가사 노동과 자녀에 대한 무한한 사랑, 양육 행위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딸들은 어머니에게 분노한다?
더욱이 대부분의 딸들은 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느끼며 성장하는데, 그 이유는 어머니의 희생이 딸에게 있어 단순히 모욕적인 기분을 맛보게 하기도 하거니와, 어머니를 통해 딸은 장차 여성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얻게 되기 때문이라나. 그 이론이 맞는 지 틀린 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극중 나영이 연순에게 보이는 짜증스런 행동은 그녀의 아버지에게 보이는 행동에 비해, 훨씬 더 날카로운 것이 사실이다.
말하자면 착하지만 어수룩한 행동으로, 집안의 가세를 몇 번이나 휘청거리게 만든 장본인은 아버지 ‘진국’이지만, 나영의 분노는 오히려 억척스럽게 살림을 꾸려나가는(꾸려나갔을) 연순에게 기울어져있는 것. 전도연과 박해일이 펼치는 맑고 아름다운 멜로인 줄만 알았더니, 뚜껑을 열고 본 <인어공주>는 그러한 장면들을 통해, 오히려 고두심과 전도연이 그려내는 모녀의 은근한 갈등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사실 모녀의 애증과 갈등에 초점을 맞춘 영화로는, 동명 소설을 각색한 윤인호 감독의 <마요네즈>도 있었지만, <인어공주>의 모녀 관계는 그 어머니 상에 비추어 볼때, 관객들의 공감을 더욱 더 많이 잡아챈다. 그 해결 방식 또한, 보다 자연스러운 것도 매력적. 어찌어찌해 연순의 스무살 한때를 탐방하게 된 나영은 결국, 나이든 엄마의 어딘가 상스럽고 속물적인 면들이 그놈의 황량한 현실 탓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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