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면서도 괜히 퉁명스럽게 대했던 이들은 우리내 어린 시절을 닮았다! | 누군가 내게, ‘네가 행복했던 시간, 네가 미치도록 다시 살고 싶은 시간이 몇 살이야?’라고 묻는다면, 우선 나는 ‘없다’라고 대답한다. ‘에이, 그래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봐’라고 묻는다면, 할수없이 ‘어린 시절’이라고 대답한다.
시큰둥하게 반응하게 되는 이유는 우선 돌아가봤자 다시 어른이 될텐데, 구태여 어린 시절로 돌아갈 필요가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첫째요, 사실 추억이 유발하는 희한한 환각 작용일뿐 누구나의 어린 시절이란게 그다지 밝고 명랑한 것들로만 채워지지 않았음을 뚜렷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즐거웠던 추억에 관한 한, 적어도 지금보다는 어린 시절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주마등처럼 스치게 한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무릎팍이 깨지게 돼도, 흙만 쓱쓱 털어내고는 밤늦도록 놀았던 추억, 시큼털털한 때국물이 온몸에 흘러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 따윈 아랑곳없이 얼마든지 신날 수 있었던 그때.
물론 그런 기억들의 한켠에는, 각종 시험이나 성적에 대한 공포, 나보다 예쁘고 좋은 물건들을 소유했던 친구에 대한 질투, 속물 선생들의 얄미운 작태들에 때때로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느꼈던 추억 등이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그게 또 어디 나만의 것이겠는가. 디테일한 것이야 다를지라도, 그건 누구나가 공유하는 기억이요, 추억이다. 영화 <아홉살 인생>이 관객들에게 환기시키는 지점도, 바로 이 지점이다. 순수하기 그지없는 어린 아이들, 바른 교육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한 천사표 교사, 자식들에게 헌신하는 따뜻한 부모 등 온통 눈부신 긍정으로만 가득찬 시선이 스크린으로 압박해왔다면 아마도 구토가 났을거다.
그렇다고 프랑소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같은 끔찍한 우울과 절망이 밀어닥치지도 않는 적당한 선에서, <아홉살 인생>은 자신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유쾌하게 펼쳐나간다. 1970년대, 어느 산동네에 초등학교 3학년인 사내 아이 ‘여민(김석)’이 있다. 요 아인 잉크 공장에서 눈을 다쳐 한쪽 눈에 백태가 낀 어머니와 무척이나 근면하게 식구들을 먹여살리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의 눈을 커버해줄 근사한 색안경을 사기 위해 아이스케기 장사, 똥푸는 인부 보조, 피아노 학원 청소부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효심지극한 여민. 게다가 5학년짜리 선배를 가볍게 제압할 정도로 싸움도 짱이지만, 결코 친구들 위에 군림하며 으스대지도 않는 담백한 아이다.
이런 일상이 평탄하게 지속되었겠는가. 당연히 그의 일상을 서서히 변화시키게 되는 인물이 나타나니, 서울에서 전학온 새침떼기 소녀 ‘우림(이세영)’이다. 이 소녀는 예쁜 용모 덕에 남자 아이들의 인기를 끌고, 산동네 아이들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소비력으로 여자 아이들의 환심도 얻지만, 사실 어두운 가정사에 대한 아픔을 비뚤어진 자기 과시로 치유하는 멍든 자아의 소유자다.
<아홉살 인생>은 그런 ‘여민’과 ‘우림’의 귀여운 풋사랑을 전면에 내세우며, 주변 인물들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배치시켰다. 알려진 대로 위기철의 동명 베스트 셀러 『아홉살 인생』을 영화화한 것이지만, 원작의 줄거리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원작 소설이 어린 아이의 눈을 통해 본 쓸쓸한 어른의 세계였다면, 이 영화는 아홉 살들의 로맨스를 앙증맞게 부각시키며 순수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하는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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