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아톤>은 범상치 않은 주인공을 내세운 탓에 잠깐 호기심의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보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으로 흐를수록 우리의 닫혀있던 마음은 스르륵 열리게 된다. 자폐아는 아니어도 우리가 탐욕에, 허영에, 교만에 눈을 멀어 추하게 행동한다면 지능은 멀쩡해도 위선의 가면을 쓴 정신기형이 아니고 무엇인가? <말아톤>은 혹독한 시련을 이겨내는 희망의 이야기이며, 불가능에 도전하려는 집념의 이야기다. 처음엔 힘들어했지만 차츰 이해해가며 진정한 동반자가 돼주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깊은 감동을 준다.
이 인상적인 데뷔작에서 정윤철 감독은 사려 깊은 극적 장치를 보여준다. 자폐증 아들에 대한 주위의 경멸적인 시선, 자꾸만 비뚤어지는 둘째 아들, 독하고 극성스러운 여자라는 따가운 눈길 등이 그것이다. 이런 극적 반경 안에서 정윤철은 섬세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흠잡을 데 없는 내러티브의 힘을 보여준다. 근래에 나온 한국영화 수작이 모두 그렇듯 <말아톤>은 명료하고 정확한 묘사가 자아내는 냉정한 사실감과 섬세하고 치밀한 캐릭터 연출을 함께 보여준다. 정윤철 감독은 순간순간 예리한 관찰을 통해 주인공들을 냉정하면서도 환히 드러내 보여준다.
정윤철보다 못한 감독이 찍었다면 초원(조승우)은 동정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며, 경숙(김미숙)은 모든 문제의 원흉으로 지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윤철은 모든 인물이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지게 하면서도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심지어 좋아하게 만든다. 영화는 상실과 비탄, 슬픔을 통렬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재치 있게 낙관적이다. 모성애란 보편적 주제를 사려 깊게 풀어나가는 <말아톤>은 섬세한 통찰력을 바닥에 깔고 잊을 수 없는 깊은 여운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