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명하게 평가가 엇갈리는 감독들 중 한분인 전수일 감독 그나마 전작에는 최민식이라는 대 배우가 출연했지만 이번엔 정말 아는 배우하나 없기에 분명해진 선택. 그의 작품 스타일을 좋아해서 보거나 아니거나.
"사회 속 인간에 대한 고찰"
전수일 감독 작품에는 사회를 살고 있는 인간 내면에 대한 여러가지를 드러내고 그것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인간에 대해 다루면서도 사회와 함께 바라보기에 우리는 사회와 인간을 동시에 보게 됩니다. 그 때문에 우리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거나 애써 외면했던 치부를 적나라히 드러내고 있기에 때로는 불편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실들은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로 인해 우리들의 삶은 어떤식으로든 영향을 받고 변해가기에 이런 문제의식을 통해 다시금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전작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에서 전수일 감독은 직업을 잃고 동생의 공장에서 생을 마친 해외 노동자의 시신을 고향으로 가지고 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사회 문제로 대두된 실업과 해외 노동자의 열악한 삶 그리고 역경을 딛고 새로운 희망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면 2년이 지난 뒤 감독의 시선은 좀 더 우리에 가까이로 옮겨져 청년들의 삶과 방황에 대해 말하고 그 속에서 또 다른 희망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불편한 진실 속에서 찾아야 하는 파랑새는 답답하고 불안한 여정을 계속하고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은 무기력하거나 지극히 권위적이고 폭력적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영도다리"
멀고 먼 희말라야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았던 감독은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보기 위해 영도다리를 택했습니다. 타 지역 사람들이 부산하면 대표적으로 떠올리는 광한리나 해운대와는 달리 실제 부산 시민들에게 엄마의 품처럼 삶의 터전이자 한국전쟁 때 피난민의 집합처로 민족의 애환의 상징이었던 영도다리는 그런 이유로 가장 부산다운 곳으로 꼽히지만 실제로 새로운 변화의 바람으로 인해 머지않아 우리 곁에서 영영 이별을 하게 될 그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영도 다리는 여주인공 인화의 거주지이자 자신이 출산한 아이와 이별한 공간이고 그녀의 유일한 절친과도 헤어지는 삶에 터전입니다. 그리고 주변 인물들에게서도 이별의 모습은 다르지 않습니다. 철부지 아이는 아버지와 영영 이별을 하고 할아버지 두분은 술잔을 기울이며 한국전쟁 때 이별했던 가족을 떠올립니다. 그렇게 영도 다리는 자신처럼 모두에게 삶의 터전이자 각기 다른 이별하는 공간이고 그로 인해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는 공간인 것입니다.
"화려해야 할 청춘이지만 힘겨운 삶의 굴레"
19세. 찬란한 인생의 황금기이자 밝은 미래를 위해 고민과 노력으로 시간을 보내야 할 청춘의 시기. 그러나 한 소녀는 홀로 사는 빈 방에서 출산의 고통을 겪고 아이를 키울 의도가 없어 눈물없는 이별을 택합니다. 아이와의 연결 고리였던 '탯줄'도 거리낌없이 화장실에 버리고 입양 서류에 망설임없이 인장을 찍는 그녀에게 아이는 자신의 삶과 별개의 존재일 뿐입니다. 돈을 위해 원조교제를 하는 친구를 대신한 원치않은 임신으로 생긴 아이는 지우고 싶은 과거의 기억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투신한 사체를 찾는 어수선한 부근에 놓여진 신발 한켤레를 보자 지난날 자신도 누군가에 손에 버려지면서 신발이 벗겨지던 그때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아이도 자신처럼 고아로 버려져 힘겨운 삶의 굴레가 또 다시 시작된 상황을 막기위해 인화는 아이를 찾으려는 노력을 시작합니다.
그런 노력을 하기 전까지 그녀의 우울한 상황만큼 모든 상황도 암울합니다. 용돈이나 미용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는 평범한 학생들과는 달리 고아이기에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하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웁니다. 게다가 그녀의 주변에는 폭력으로 성처받는 이들이 빈번히 그려지고 인화도 그런 광경을 보고 그저 말없이 돌아서버립니다. 어쩌면 우리가 다른 이의 상처나 무참한 폭력에 대해서 방관자의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표정에서조차 차가움이 느껴집니다. 이런 모습들은 그녀의 힘겨운 인생의 굴레가 반복되듯 되풀이되는 사회문제는 우리 무관심이나 방치에서 시작하고 그로 인해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는 점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비춰가고 있습니다.
"의미를 이해하기에 난해한 영상"
하지만 그런 영화의 메세지를 이애하기엔 쉽지많은 않고 감독 특유의 영상은 무척이나 독특합니다. 우선 <히말라야...>에서 산을 오르는 한 장면을 수분간 이어가는 긴 흐름은 이번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가령 영화 첫 장면에서 만삭으로 부푼 배를 움켜 쥔 소녀의 고통은 무척이나 길고 그녀가 고통속에 영도 다리를 건너면서 주저 앉기까지 오랜 시간을 카메라에 담아 냅니다. 그런 영화의 긴 흐름과 달리 이야기 전개는 모호하게 분리되어 연결고리를 이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장면들에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나 대사도 인색합니다. 가령 이번 작품에서 자신이 버렸던 아이를 다시 찾으러 향하는 과정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아이를 임신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아라서 혼자 살다보니 불장난 같은 사랑으로 애를 갖게 된건 아닌지 추측해 보지만 실제로 그 이유는 직접적인 설명이 아닌 친구와 대화나 상황을 통해 알게 됩니다. 마법에 걸린(?) 날이라서 자기 대신 원조교제를 부탁한 친구를 경멸에 찬 눈으로 보며 나가버린 장면과 친구의 진심으로 자기때문에 생긱 아기에 대해 사과하는 장면으로 유추하는 것처럼 다른 상황들도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집니다.
<영도 다리>의 스토리 전개는 거의 이런 흐름을 갖습니다. 이같은 점은 전수일 감독만의 독특한 점으로 많은 부분을 추리하고 유추하며 상황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고민해야 하게 만듭니다. 그런 점은 감독의 영화에 극명한 평가를 두는 부분으로 편안하고 부드럽게 작품에 변화를 주어 팬을 늘리기 보다는 자신만의 색깔을 분명하게 함으로 감독의 그런 면을 좋아하는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영화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고 보는 관점에 따라 비극과 희극이 공존합니다. 이번 결말에서도 아이가 우는 모습은 엄마가 왔다는 걸 아는 아이의 행복한 울음으로 행복한 결말로 해석하는 결말과 멀고 먼 프랑스까지 찾아 간 엄마에 노력에도 입양한 프랑스 엄마를 찾는 울음으로 생각하는 비극적 결말로 해석할 수 있어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유도합니다.
매끄럽고 깔끔한 스타일로 웃음과 눈물이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우리 주변의 문제나 현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전수일 감독의 작품은 분명히 관람하기에 편하지 않고 우울한 마음도 들지만 관람을 마친 느낌은 어딘지 마음을 정화시키는 느낌이 들게하는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맛으로 말하면 삼합같은 맛이랄까요... 특유의 냄새와 향으로 먹기는 힘들지만 그 맛을 사랑하는 사람에겐 더 없이 맛있는 요리인 것처럼 이번 작품은 가난은 가난으로 되풀이되는 힘겨운 우리네 삶의 굴레 속에서 희망이라는 기막힌 맛을 주는 그런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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