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하기 짝이 없는 관객인 저조차도 스크린 속의 캐릭터에 감정이입 될 때가 있습니다. 그게 밝고 유쾌한 역할이면 그나마 나은데~ 다크포스가 콸콸 넘쳐나는 역할에 동화되고 나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한참을 후유증에 시달릴 때가 있죠. 그저 지켜볼 뿐인 제가 이럴 정도인데 그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스트레스가 어떨지는 상상불가에요. = - =;;; 이번에 만난 [맨발의 꿈]은 드물게 밝은 쪽으로 영화와 합체해버린 배우들과 관객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꽤 재능 넘쳤던 축구선수 시절이 끝장나고는 주구장창 인생을 말아먹고만 있는 원광은 흘러~ 흘러~ 동티모르까지 왔습니다. 오랜 세월을 다른 나라에 지배만 받다가 겨우 독립은 해냈지만~ 내전으로 혼란의 소용돌이인 동티모르를 기회로 삼아 인생을 다시 잘 펴보겠다는 야망을 품고 왔으나~ 이곳에서도 또 사기를 당하고 마는군요. 대사관 직원인 인기의 강력한 권유를 받아 귀국하려던 그는 축구에 열광하는 현지인을 보고 스포츠용품점을 야심차게 열죠. 하지만... 오라는 손님은 안 오고 파리만 들끓습니다.
이렇게 또 인생을 말아먹을 위기에 처한 원광이 동티모르 아이들과 만들어내는 희망을 만나게 되죠. 동티모르에서 유소년축구를 가르치고 있는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얼핏 봤던 기억이 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맨발의 꿈]은 유려한 영상으로 매끈하게 잘 빠진 스포츠영화는 아니에요. 하지만... 그런 소박함이 가난하다고 꿈마저 가난할 수 없다는 영화의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희순, 고창석, 조진웅이라는 완소배우들이 출연해서 보러갔는데~ 동티모르 아이들에게 반해서 영화에 빠져들었어요. 배우들이 호연을 펼칠 때는 다른 연기자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데~ 저 배우들의 조화는 걱정도 안 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배우들이 아이들에게 말려들어가서 진심 1000%가 되어버린 모습이 너무 재밌더군요. 연기는커녕 영화관에도 가본 적 없다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현실을 어찌나 열정적으로 그려내던지~ 스크린 너머에 앉아있는 저마저도 진심이 되어버렸습니다.
세상이 월드컵 열기로 불타오르는 요즘~ 프랑스는 축구로 인해 점화된 사회, 정치적 논란으로 엄청 시끄럽다고 하죠? 그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네요. 어른들의 증오와 싸움에 전염되었던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공감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보면서 평화를 향한 작은 희망의 불씨가 아이들로부터 커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세상살이가 그리 녹록하진 않다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요. >.< 누구랑 보더라도 즐거운 시간이 될 [맨발의 꿈]을 통해 많은 관객이 따뜻한 미소를 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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