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혼령이 자신에게만 출몰한다는 설정이나 원혼과 교감한 주인공이 대형 재난을 예방하려 애쓰지만 무위로 그친다는 결말은 아주 최근의 예를 보더라도 '식스 센스''모스맨'등의 할리우드 심령 스릴러물과 상당 부분 닮아 있음이 분명하다.
'디 아이'에 대한 평가는 이 지점에서 갈라진다.
영화를 좀 봤다 하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소재들의 짜깁기에 불과하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짬뽕'의 혐의를 능숙하게 피해나가는 것도 사실이다.
'본다'라는 행위가 비록 맹인에게라도 축복이 아닌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가치의 전복은 이 '어디서 많이 보고 들은 것 같은' 이야기에 신선한 피를 공급한다.
살풀이가 끝나면 평화로운 일상으로 복귀하는 공포영화의 전형적인 결말을 피하고 작은 충격을 준비한 점 역시 이 영화에 배어 있는 독특한 향취다.
안구 이식 후 귀신이 보인다는 아이디어에 구미가 당겨 영화를 택했던 사람이라도 혹 속도감 있는 전개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이 영화의 맛은 서서히 긴장감을 쌓아가는 공포의 축조술을 즐기는 데 있다.
'디 아이'는 혼(魂)과 저승사자 등 동양적인 세계관과 각막 수술이라는 소재를 결합시킨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디 아이'는 칼이 번쩍이고 선혈이 낭자한 전통적인 공포 영화는 아니다.
'디 아이'가 주는 공포는 눈보다는 귀에 의한 공포다.
무서움은 흐릿하게 보이는 시각과 함께 날카롭게 신경을 건드리는 청각에서 온다.
'디 아이'는 남들은 못보는 유령을 본다는 설정이 '식스 센스'와 비슷한 점이 있고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귀신이 관객에게 공포감을 준다는 데서 '여고괴담'이나 '링'류의 분위기도 나는 영화다.
그러나 인간을 지배하는 감각의 90%를 차지한다는 시각이 전해 주는 공포는 그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하다.
음식점, 엘리베이터 등 평이한 공간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귀신과 원혼, 동양적 내세관을 바탕으로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 '누군가 지켜보는 듯한 오싹함' 같은,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음직한 보편적 경험으로부터 출발하는 '디 아이'의 공포는 일상적이기에 더욱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처음 보는 세상의 모습에 설레어하는 주인공의 눈에 귀신의 모습이 보인다는 설정도 특이하지만, 시력이 불완전한 여성의 시점을 자주 취함으로써 흐릿한 윤곽에서 갑자기 뚜렷해지는 혼귀의 모습이 주는 공포감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청각적 긴장감은 영화 상영시간 내내 관객을 괴롭힌다.
칸 영화제 상영시 시사회장을 관객들의 비명으로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는 오프닝 장면도 충격적이다.
특히 엘리베이터라는 폐쇄 공간에서 노인의 혼령을 만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팽 브라더스는 거칠고 원시적인 효과음과 원색의 강렬한 빛을 활용해 공포의 효과를 높였다.
혼귀의 이동을 세심하게 처리한 스테레오 사운드로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오싹한 반전(反轉)을 기대하는 관객의 신경을 충분하게 자극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쉽게 예측이 가능할 정도로 구성도 평이하다.
그러나 '디 아이'는 미스터리 공포물의 장르한계를 잊지 않는다.
긴장의 완급조절이 다소 미숙, 문과 정신치료 의사 '와' 사이의 로맨스는 다소 싱거울 만큼 성급히 이뤄진다.
주연여배우 안젤리카 리의 연기는 건조하고, 영상 감각은 신선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인지 분별없이 사용되는 찢어질듯한 음향들은 귀를 따갑게만 한다.
그래서 '디 아이'는 색다른 소재에도 불구하고 극장문을 나서는 관객에게 피곤함을 안긴다.
한국 전래의 귀신 이야기와 겹치는 부분이 있고, 영화 후반부에서 밀어붙이는 힘이 떨어진다.
원래 '파이란'의 여배우 장바이츠(張柏芝)에게 주인공 문의 역할이 갔지만 대본을 읽은 그녀가 너무 무섭다며 출연을 포기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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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이(2002, The Eye)
제작사 : Applause Pictures / 배급사 : 코리아 픽쳐스 (주)
수입사 : 코리아 픽쳐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