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나온 남녀는 각자의 입장에서 코멘트를 한다.
남자 왈, 남자는 원래 그래. 남자는 그것 밖에 생각하는 게 없어...
여자 왈, 정말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그래도 정말 아무한테나 그러는 건 아니지 않아? 다른 동료 교사도 많고 솔직히 어린 여학생들도 손대면 톡 하고 터질것만 같은 그대였지 않겠어? 그런데도 최홍에게만 매달렸잖아...
다시 남자 왈, 넌 아직도 남자를 모르는구나. 꿈 깨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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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판타지다. 너무 리얼한 현실은 보기도 전에 질려 도망가고 싶다.
현실은 구차하고 지저분하고 괴로운 것이므로... 홍상수 영화가 달갑지 않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미 애인이 있지만... 고맙게도 나름대로 조건도 좋고, 남녀 관계에서 절대 쉽사리 넘을 수 없는 산인 부모조차도 가뿐히 제껴버려
양가를 편안히 오가고 인정받은 상대가 있지만...
늘 그렇듯이 새로운 연인이 등장하였고 영화의 중심이 그 남녀관계에 있다 보니 그 둘은 이렇게 저렇게 엮이게 마련이고, 끌리고... 마침내 그 둘이 맺어지나니... . 비로소 관객들은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얼마나 불안한 해피엔딩인지... 무의식중에 상대를 닮아가는 모습으로 (머리를 볶은 박해일은 귀엽더만, 강혜정의 어설픈 생머리는 영...) 아니 상대화 되어가는 모습으로 다시 만난 남녀. 그 둘의 새로운 출발을 축복하는 듯한 첫눈은, 그 위에 새겨지는 발자국은 환상적이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므로 거기까지에서 생각을 멈춰야만 판타지로서의 영화의 임무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인데... 남루한 됫골목 여관거리도 아름답다 믿고 살 수 있을 텐데...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난 너무 잘 알고 있다. 그 짧은 새벽시간이 지나고 해가 중천에 떠 버리면 한순간도 못 버티고 사라져버릴 눈 따위....
수많은 발자국들에 짓밟혀 시커멓게 변한 채 천덕꾸러기가 될 그 눈을 잠시 낭만적으로 걷고 난 뒤 언제라도 또 다른 파트너들이 각각에게 나타나게 되면 따귀를 때리며 헤어질지도 모르며 술 먹여 억지로 강간했노라 오리발을 내밀게 될지도 모르는데...
결국 둘은 또 그렇고 그런 연인이 되어버렸다. 이제 부모라는 산을 넘고 친구들에게 인정받으면 공식적인 커플이 되는 수순을 따를 것이다.
음... 자, 그렇다면 ... 연애의 목적은 상대가 완벽하게 내 사람이 되고 그것을 만천하에 인정받고 공공연하게 같이 잠도 자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관계가 되는 어떤 도달점이 아니라 밀고 당기고 울고 소리지르고 그러다가 까무룩 상대의 어깨에 기대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는 지금의 만남 그 자체가 전부이리라.
수많은 연인들이여. 연애에 목적을 갖지 말지어다. 그저 그대들 앞에 내려주는 눈에도 감사하며 부딪치는 술잔에도 감격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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