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난히 2009년도에는 정말 좋은 영화가 많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미국 영화도 그렇고 한국 영화도 그렇고 미국 말고 다른 해외 영화도 정말 좋은 게 많았던 것 같아요.(많이 봤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방문 못 한 게 있어요. 미국 영화 쪽으로는 <시리어스 맨>하구 유럽 쪽으로는 <테트로>나 <시크릿 인 데어 아이즈>, <경찰, 형용사> 같은 영화요.) 그리고 그 중에서 정말 의미있고 삶을 살면서 생각해 볼 문제들이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 소중한 이야기를 해 주고 힘들 때 힘이 될 만한 영화들이 많았어요. 눈물 콧물 쏙 뺀 애니메이션 <업>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는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인 디 에어>하고... 이 정도 만으로도 충분한데 이 범주 안에 들어갈 영화가 하나 더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영화, <프레셔스> 입니다. 극단적으로 어렵고 힘들고 억압받는 상황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정말 소중하고 힘을 주는 영화입니다...(그와 동시에 고통스럽기도 하죠.)
2. 우리 주위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모든 차별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 이 영화의 주인공인 프레셔스는 정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차별적이고 어두운 상황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흑인이고, 심각할 수준으로 뚱뚱하고, 정말 못 생겼고, 학교에서도 문제아로 통하고 왕따 당하고, 글을 읽고 쓰고를 못하는 문맹이고, 가난한 집에서 살고 있는데 그 집에서 술 취한 아버지한테 엄청난 성적인 학대(!)를 받아 그것 때문에 임신을 하게 되고(그것도 무려 2번째로), 그런 딸을 오히려 학대하고 폭력으로 대하는 엄마. 이런 상황을 모르는 학교에서는 임신을 또 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대안 학교를 가게 됩니다. 거기에서 그녀는 절망 속에서 변화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3. 이 영화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연기를 빼먹는다는 건 그야말로 맛이 간 거나 다름 없습니다. 연기 자체가 이 영화는 하나의 엄청난 성취물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 캐스팅은 정말 탁월합니다. 가보리 가비 시디베는 정말 어떻게 이걸 해냈는지 모르겠다만, 극단적인 상황 속에 있는 캐릭터를 가지고 완벽히 소화해낸 수준을 넘어서서, 우리를 심란하게 하고, 우리가 거의 외면하고 싶을 정도의 캐릭터에 대해 엄청난 관심과 공감을 가지고 하고, 임신하고 출산이라는, 10대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그녀를 응원하게끔 합니다. 그것도 그녀가 출연하는 모든 장면에서. 정말 어떻게 이게 가능했던건지 여전히 미스터리이며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산드라 블록이 이보다 더 대단한 연기를 보여줬을까요? 단연컨데 아닐 겁니다.)
4. 모니크의 연기는 이보다 더 합니다. 이건 도저히 말로 표현하기가 힘듭니다. 그야말로 미국에 존재하는 모든 영화 시상식의 여우조연상을 죄다 휩쓸었는데, 분명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아니, 그 가치를 넘어갑니다. 시디베와 계속해서 충돌하는 장면에서는 실로 엄청난 힘을 보여주고, 정말이지 얼얼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만들어냅니다. 딸에 대한 증오감으로 가득차서 학대를 하는 모습을 피 떨리게 보여주는데, 결국 그녀도 희생자라고 울분을 토하는 장면은 정말 소름이 절로 돋습니다. 도저히 용서 할 수 없는 캐릭터인데, 마지막에 가서는 그녀를 불쌍하게 여길 수 밖에 없게 만듭니다.
5. 영화가 이야기하는 건 희망과 낙관주의입니다. 그러나 결코 편하거나 쉽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가 긍정적인 메시지를 지향하지만 모두에게 먹힐만한 영화는 결코 아닙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 얼마 되지도 않아 아버지한테 강간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말 토 나올 정도로 불편한 장면으로 국내로의 수입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심을 품게 합니다. 또한 얼핏 보기에는 희망을 품을 만한 요소를 철저히 차단한 듯한 느낌이 듭니다. 희망이라는 것이 보일려고만 하면 절망으로 가려버리는 식이죠. 가령 그녀는 항상 성공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삶 속에서는 왕따와 강간, 학대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아기를 출산하는 장면은 경쾌하게 그려져 있지만, 출산 후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간 그녀에게는 다시 어두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6. 이런 상황속에서 영화는 정말 우리의 심장을 쥐락펴락합니다. 최근에 나온 영화 중 이렇게까지 감성적으로 사로잡히게 하는 작품이 있었던가요? 이 영화에서 우리는 무기력하고 분노를 느끼게 하고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일말의 희망의 가능성을 품으며 마무리하죠. 가장 좋았던 장면 중 하나에서 프레셔스는 “아버지는 날 강간하고 어머니는 날 학대하는데 누가 날 사랑하냐.”고 울부짖습니다. 그 말을 듣고 거기 있는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죠. “우리 모두가 널 사랑한단다.” 우리가 여기에서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는게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에게는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런 그녀에게 따뜻한 손길로 다가서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통해 그녀는 자신도 사랑받을 수 있고 그걸 느끼고 나서 비로소 희망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영화는 결코 그녀의 고통만을 이야기하려고 하는게 아닙니다.(그랬으면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레퀴엠>보다 몇 배는 더 울적한 영화가 나왔을 겁니다.) 삶 속에서 주어진 온갖 난관들을 희망으로서 견디고 이겨내는 과정, 그리고 절망 속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이걸 보여줍니다. 절망 속에서 빛을 비추는 영화죠. 그러기에 이 영화는 한도 끝도 없는 우울증 증세 유발용 영화에서 벗어납니다. 영화는 진행 되는 동안 우리의 힘을 다 빼놓지만, 결국 소중한 교훈을 줍니다. 영화의 첫 대사처럼 모든 생명체와 사람은 소중하다는 진리를요. 이 보편적인 진리인데, 이 영화는 누구나 다 아는 진리를 정말이지 가슴 속 깊숙한 곳에 새겨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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