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datura
|
2002-08-09 오후 11:17:13 |
1246 |
[7] |
|
|
결혼정보회사에서 일하는 효진은 커플 성사확률 100%를 자랑하며 명성을 날리고있는 커플매니저.
잘생긴 남자친구의 사진을 가지고 다니지만 사실은 1년 전에 실연당하고 '주말의 명화'를 남자친구 삼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 앞에 외모, 재산, 학벌 등 완벽한 남자 현수가 등장한다.
어머니 등쌀에 떠밀려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했지만 정작 현수 본인은 결혼에는 관심이 없는 '불량회원'이다.
미팅 시간에 늦는 것은 보통이고 상대의 이름도 모른 채미팅을 끝내버리기가 일쑤다.
덤벙대고 실수투성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효진과 성격, 외모, 학벌, 재산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남자 현수.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자주 마주치는 사이 둘의 관계는 점점 가까워진다.
모지은 감독의 데뷔작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는 스물 여섯이라는 감독의 나이만큼 파릇파릇하다.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은 이 로맨스 영화는 곳곳에 이 젊은 여성감독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숨어 있다.
영화는 극장에서 로맨스 영화를 본 주인공 효진(신은경)의 친구들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관객들이 거울을 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순간 맹랑한 대사가 들려온다.
"내가 로맨틱 코미디 안 본다고 그랬지. 로맨틱 코미디는 똑같아. 둘이 만나 티격태격하고, 그러다 키스하는 것으로 해피엔딩."
그들의 말에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는 그렇지 않다는 역설이 담겨있다.
그러나 결혼정보회사의 커플 매니저인 효진과 컴퓨터 전문가인 그의 고객 현수(정준호)가 만나 서로 좋은 사람임을 느끼게 되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그게 얼마나 가능할까.
신은경의 직업은 '웨딩 플래너' 제니퍼 로페즈와 비슷하고, 덤벙대고 실수 투성이인 성격은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의 들러리 줄리아 로버츠를 닮았다.
이성적 감정이라고는 없는 효진의 남자친구 정준(공형진)도 이런 영화에는 코미디를 위해 약방의 감초처럼 익숙한 캐릭터다.
'좋은 사람…'은 로맨틱 코미디가 구태의연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한편 그에 빠져드는 심리를 십분 활용한다.
이 덕에 작품은 비교적 정직하고 밉지 않아 보인다.
특히 여성들의 심리나 인물들의 작은 행동을 그리는 데 섬세한 재주를 발휘한다.
효진을 멕 라이언처럼 실수투성이 귀여운 여자로 설정한 것은 좀 진부하지만, 괜찮은 여성용(여성에게 환상을 심어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인 셈이다.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등의 영화에서 봤던 관객에게 직접 얘기하는 형식의 변형이나 문자메시지 형식으로 보여지는 속마음은 새롭게 느껴진다.
또 '힘들때친다'는 탬버린이나 지루함을 달랠 때 쓰는 캡슐 알약, 유리창에 입김으로 그리는 그림 등의 소품들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주연배우들보다 오히려 돋보이는 몇몇 조연들의 연기도 인상적.
시트콤 '연인들'에 출연 중인 공형진은 효진의 둘도 없는 친구 정준역을 맡아 리얼한 연기를보여준다.
말많은 대머리 노총각으로 나오는 최세훈의 연기도 재미있다.
이밖에도 다양한 캐릭터의 개성있는 커플들을 만나보는 것도 영화의 또 다른 즐거움.
하지만,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에피소드들은 감정의 흐름을 따라잡는데 방해가되고 오히려 난삽한 느낌만 준다.
효진과 현수 사이에 계속 등장하는 우연도 관객들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좋은 사람…'는 두 가지 전략을 택했다.
첫째, 로맨틱 코미디의 관례를 전복하려고 했다.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여자 친구들(실제로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온다)이 흔히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꼬집는다.
"오뎅 열네개 값(7천원)을 지불하며 이런 영화를 볼 수 있겠느냐"라며 수다를 떤다.
유사한 형태의 다른 작품과 분명 다른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감독의 의지로 이해된다.
둘째, 지난해 흥행 코드였던 '조폭' 이미지를 뒤엎되, 그 명성을 이어가자는 이중 작전을 폈다.
'조폭 마누라'의 무시무시한 아내 신은경과 '두사부일체'의 개과천선한 깡패 정준호를 커플로 맺어줬다.
TV 드라마에 비해 영화에선 그다지 빛을 보지 못하다가 지난해 이후 충무로의 손짓이 활발해진 두 배우의 조우가 흥미롭다.
첫눈에 온통 정신을 잃어버리는 '왕자와 공주'식의 극적인 과장을 던져버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에게 차츰차츰 물들어가는 그런 일상의 남녀에 앵글을 맞춘다.
또 효진과 현수 주변의 다양한 커플을 통해 요즘 시대의 남녀 관계를 유쾌하게 풀어놓는다.
노처녀의 남자 친구 찾아나서기를 위트 있게 묘사한 '브리짓 존슨의 일기' 냄새도 약간 풍긴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은 남자 아닌 여자들이 받아들이는 로맨스가 어떤 것인지를 절제된, 그러면서도 섬세한 화면에 담았다.
이는 "서른살 먹은 여자가 좋은 남자를 만날 확률은 원자폭탄을 맞을 확률보다 낮아" 등의 시나리오를 쓴 31세 여성작가(인은아)의 재능이며, 감기약 콘택600 알맹이를 방바닥에 흩뜨려 놓고 하나하나 셀 때의 노처녀 표정을 끌어낸 27세 여성감독과 29세 여배우 신은경의 능력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은 정작 두 주인공의 오가는 갈등이나 심리를 그리는 데는 인색하다.
현수라는 인물은 물론, 결정적으로 두 주인공의 관계도 현실성이 없어 보이게 하는 점이라 아쉬움이 크다.
덕분에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영화 언저리를 맴돌며 장식적인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주인공 쪽에 확실히 무게를 둔 탓인지 효진의 캐릭터는 사랑스럽고 분명하지만 현수는 비중도 현격히 떨어지는 데다 캐릭터도 모호하다.
어떤 여자라도 한눈에 반할 만 하지만 꽃미남의 전형을 탈피하지 못하고, 밋밋함을 주는 주인공인 정준호조차, 마주앉아 차 마시다가 "지금 창문이 어느쪽에 있어요"류의 뜬금없는 질문이나 던지고, 영화 내내 사람좋은 미소만 지으며 여자들(영화 안팎 모두) 마음을 사로잡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결혼적령기 여성의 현실적인 눈에 비친 현수는 마마 보이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애인과 어머니 가운데 언제나 어머니가 우선이라는 멋없는 사내 현수는 효진의 잇따른 실수를 넉넉하게 끌어안는 포용심이 돋보이나 어쩐지 인조 인간, 혹은 로봇 같은 느낌을 준다.
'95점짜리 남자'인 현수가 '보수적이고 모순덩어리며 남에게 상처주기 쉽다'것은 현수의 대사에만 있지 인물묘사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여자들이 좋아할 만큼 완벽하지만, 개성없는 남자의 모습에 가깝다.
캐릭터로만 놓고 보면 효진에게 한결같은 우정을 보여주는 정준(공영진)이 더 호감을 얻을 듯 하다.
그러나 그마저도 '서프라이즈'에서 이요원 주변을 맴돌았던 그와 별로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좋은 사람…'은 '여성(감독)의, 여성(배우)에 의한, 여성(관객)을 위한' 영화다.
영화의 장점은 여기까지다.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 위주로 작품을 이끌어간 까닭에 살아 있는 캐릭터 제시는 미흡해 보인다.
특히 효진과 현수가 서로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지나치게 우발적이다.
자신의 외로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효진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나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실수만 연발하는 그의 행동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순간의 웃음은 있으나 작품을 꿰뚫는 공감대는 떨어지는 편이다.
둘 사이에 우연으로 이어지는 에피소드들도 "로맨틱 코미디가 다 그렇지"하는 김빠진 실망에 확신을 더해 줄 우려가 있다.
그러나 어떠랴. 원래 사랑이란 이렇듯 닭살돋고, 연속된 우연을 운명으로 착각하는 연인들의 해피엔딩인 것을.
결말도 뻔해 보인다.
절대로 고객을 남자로 보지 않는다는 효진과 어머니의 강요로 할 수 없이 선을 보는 현수는 서로 솔직한 감정 앞에 원칙이 무너지고 만다.
'좋은 사람…'은 애초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비틀거나 부술 생각이 없었다.
단지 사랑의 감정에만 매달리기 보다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런 사랑을 만들려 했다. 그래서 커플 매니저란 직업도 선택했다.
그 일상을 때론 너무 과장해 오히려 비일상으로 느끼게 하지만 섬세하고 재치있는 연출, 정준호와 신은경의 능청스런 연기가 영화의 리듬을 살리며 가볍고 유쾌한 사랑을 만들어간다.
이것조차 유치하다면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로맨틱 코미디에서 전혀 엉뚱한 이야기나 분위기로 빠질 수 없다.
무료함을 달래려 캡슐 감기약의 알맹이가 진짜 600개가 맞는지 세어보는 효진, 창문의 위치로 둘의 감정을 확인하는 효진과 현수. 이런 것들만으로도 얼마든지 색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
|
|
1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