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멀리건을 중심으로 굵직한 영국 배우들(단, 피터 사스가드는 미국 배우)이 펼치는 연기 또한 완벽한 짜임새를 자랑한다. 매력적인 성인남 데이빗 역의 피터 사스가드는 '키다리 아저씨' 이미지의 안과 밖을 교묘히 넘나드는, 도발과 젠틀함을 동시에 보여주며 로맨틱한 분위기와 동시에 긴장감 또한 훌륭히 형성한다. 제니의 아버지 잭 역의 알프레드 몰리나는 전형적인 고리타분형 아버지일 수 있었던 잭의 캐릭터에 능숙하게 코믹함과 인간미를 불어넣으며 무게감을 더한다. 데이빗의 절친인 대니와 헬렌 역의 도미닉 쿠퍼와 로자먼드 파이크는 시종일관 잃지 않는 활기로 영화를 더욱 발랄하게 한다. 여기에 내색하진 않지만 자신의 처지에 대해 컴플렉스가 있는 스텁스 선생 역의 올리비아 윌리엄스의 절제된 연기와 매너 있는 듯 하지만 은근 무서운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교장 역의 엠마 톰슨까지, 비교적 짧은 시간동안 영국 배우들의 담백하면서도 힘있는 연기를 감상하는 재미가 충만하다.
빤하게 도발적인 로맨스나 감상적인 성장드라마가 될 수 있었을 영화를 구한 또 다른 요인은 의외로 탄력 넘치는 시나리오에 있다. 이 시나리오를 만들어낸 이는 다름 아닌 닉 혼비다. <어바웃 어 보이>, <하이 피델리티>, <피버 피치> 등을 통해 남자들의 통상적인 애어른적 심리를 유머러스하면서도 예리하게 꿰뚫어 본 그는 이번에는 '여성의 성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 줄거리만 본다면 뭔가 도발적인 이미지이지만, 닉 혼비의 재치 넘치는 각본 덕분에 영화는 생각보다 부드럽고 감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엄한 시대 속에서 엄한 체제 아래 살아가던 소녀의 일탈에 대한 이야기를 인상쓰고 풀어가려 하기보다 10대의 싱숭생숭한 그 마음에 어느 정도 가깝게 다가가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제니 주변의 일상에 수학 공식과 도형에 덧씌워 풀어놓은 오프닝 크레딧에서부터 앞으로의 비교적 밝은 태도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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